왜 그때는 모르는 걸까, 아니 미리 알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니어 때 실수는 대부분 몰라서 나타난다. 그중에 인지조차 못하는 영역이 있다. 바로 일에 대한 생각과 태도의 영역이다. 문제는 해당 영역에 대한 중요성은 알지만,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어떻게 하면 그 올바름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일을 잘못된 길로 빠져들게 하고, 허우적대면서 일로부터 스스로를 고통받게 만드는 우를 범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일도 마찬가지로, 처음에 어떤 직장에서 어떤 이와 함께 어떤 종류의 일을 하는가에 따라 그 ‘버릇 또는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이는 후에 나쁜 습성(習性)으로 남기도 한다. 쉽게 바꾸기 어려운 일에 대한 생각과 태도, 이를 통해 얻게 되는 기술과 지식(T.A.S.K)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주니어 때 확실히 일(Biz-Job)에 대하여 올바른 생각과 태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대부분 실수라고 볼 수 없는 실수로 자신의 일을 망가뜨린다. 예를 들어, 학생 때 버릇이 그대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이때 나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일 전체를 망가뜨리거나, 스스로가 조직 속의 병목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조직 전반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아래의 이야기를 대부분 ‘잔소리’라고 여기고 좀처럼 듣지 않는다. 그저 일을 잘하기만 하면, 주어진 영역에서 나 또는 그들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뭐든 된다고, 괜찮다고 착각한다. 그런데, 그 부분을 당사자가 착각이라고 깨닫는 순간, 늦었다. 박명수 님의 명언처럼, ‘늦었다고 할 때가 정말 늦게 된 것’이다.
그래서, 기초를 잘 닦아야 한다. 일에 대한 생각과 태도부터 나에게 어울리도록,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제대로 갖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부터 최대한 몸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진짜 늦지 않도록, 올바른 길로 스스로를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실수는 반복되고,
습관으로 만성이 되고,
쉽게 지울 수 없는 습성이 될 수 있다.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
무엇이 잘하는 것의 기준이 되는지, 어떻게 하면 잘하는 것인지, 얼마나 잘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한다. 그냥 마음만 앞선다. 오직 마음뿐이다. 딱히,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거의 없다.
일은 함께 하는 것인데, ‘나만 잘하면’, 이라는 생각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고 딱히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주변의 동료들과 밸런스를 따지지 않는 것이다. 회사 내의 1등이 시장의 1등이 아닌데 말이다.
일에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고, 그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야말로 기고만장이다. 그래서, 잘 미루게 된다. 나중에 해도 된다고 한다. 그러다가, 속도는 물론이고 방향까지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지만, 늦었다. 잘 고쳐지지 않는다.
일종의 마감의 신 또는 내림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두 번 미루다가 임박해서 한 일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미루었을 때 더욱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심지어 징크스까지 만들어, 몇몇의 일은 임박한 이후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어떤 일이든 ‘빨리’ 해야 한다고 하니, ‘빨리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일을 잘하는 것 중에 중요한 기준이라고 까지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빨리’ 하려는 태도가 몸에 밴다. 그것도 뭐든지 말이다.
모든 일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정답 찾기에 몰두한다. 문제는 한 번 찾아진 답(과정과 결과)이 앞으로도 쭉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과정을 찾기 위한 연구는 하지 않고, ‘하던 대로’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회사 내에서 사주경계는 필요 없다. 하지만, 최소한 함께 일하는 앞, 뒤, 양 옆의 동료가 어떤 일을 하고, 그들이 현재 하는 업무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런데, 딱히 관심이 없다. 늘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은 자세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늘 여유가 없다. (왜 여유가 없는지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업무에 임할 때, 꼭 한쪽 면만 본다. 그리고, 그쪽만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또는 그게 전부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문제는 누군가 ‘다른 곳을 보라고’ 가리켜도, 그쪽 방향이 아닌 그 사람의 손가락을 본다. 이런 경향이 반복되며 시야가 좁아지고, 닫히게 된다.
특히, 업무상 키(Key)를 쥐고 있는 이에게 ‘잘 보이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에게 최선을 다해 ‘충성심’을 드러낸다. 이 부분은 위에서 그렇게 ‘가르쳐서’ 그런 거다. 나를 그렇게 만든 상사를 원망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주목 또는 관심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을 더욱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회사 내에서 티 나는 일을 하려고 나서는 경우가 많다. 대신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거나, 주목을 덜 끄는 일에 소홀해서 큰 사고를 칠 가능성을 늘 내포하고 있다. (그걸 본인만 모른다.)
일을 잘하기 위해 그에 걸맞은 스킬과 테크닉이 필수라고 한다. 많이들 좋은 스킬이 퇴근을 앞당기고, 야근을 줄이는 핵심 역량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손과 발을 움직이는 것이 ‘머리(생각)’라는 생각을 못한다. 그렇게 스스로의 일을 ‘기능직(장인-Master)’처럼 하는 사무직이 된다.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시간 엄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외에는 딱히 무엇이 중요한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늘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지각만’ 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리만 지키려고 한다. 일 다운 일을 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두지 않기도 한다.
주어진 일, 시키는 일, 때마다 해야 하는 일, 해보지 않은 일, 갑자기 쳐들어오는 일 등등 여러 일을 모두 그때마다 ‘처리’하는 식으로 한다. 그렇게 ‘빠르게 처리식’으로 스치듯 지나가는 일은, 누군가에게 훗날 Big 똥으로 남기도 한다.
일에는 변동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로 인해 언제든 일의 순서, 관계에 대한 우선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 따라서, 변동성이 높은 이슈에 대해서는 수시로 체크하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못한다. 일단 ‘마이 웨이’로 앞으로만 직진한다. 관례 또는 절차상 문제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목적이 없다. 그리고, 그에 포함된 목표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심도 없다. 그래서, 어떤 일을 왜 하는지, 무엇 때문에 하는지, 그 이유가 없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도 없다. ‘딱 그만큼만’ 하려고 한다. 어디서든 ‘적당히’라는 말과 행동이 튀어나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제한된 목표를 통해 역량 발휘의 기회를 제한한다.
목적과 목표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없으니, 조직의 목표도 본체만 체다.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내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일단 발뺌부터 하려고 한다.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여럿이 힘든 상황을 겪는다.
조직 목표에 관심 자체가 없어, 굳이 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또는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부분만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 그렇게 조직 내 업무상 연결고리에 스스로 ‘역기능’이 되는 존재로 점차 자리 잡는다.
‘조직은 조직이고, 나는 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직장 내에서 하는 여러 일에 대해 ‘나만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다 보니, 늘 ‘딴 맘’만 잔뜩 품고 있다. 지금 하는 경험이 나의 미래와 연결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커리어는 무슨… 먹고살기도 바쁜데…”라는 편견 때문에, 미래를 위한 희망적 설계, 투자, 자발적 노력 등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일 관련 관심보다는 늘 잿밥에만 눈길이 간다. 재테크(주식, 부동산 등)를 포함하여, 본업과 관계없는 것으로 시간을 과도하게 허비한다.
“시스템..?(시스템은 자동화라는 이해도)” 이해의 한계로, 사람도 조직 시스템의 일부로 존재하고, 그 요소로서 제대로 자신의 일을 못하면 시스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조직 특유의 일하는 문화 또는 원리 원칙 등은 가볍게 무시하거나, 자기식대로 적용 및 차용한다.
조직 시스템은 일(직무, 업무 등)에 의해 짜임새를 갖는다. 이때 업무 관련 수직ㆍ수평적 관계가 설정되면서부터 일에 체계가 생긴다. 그런데, 자신이 맡은 업무상 차지하고 있는 영역과 비중에 대한 생각(관심)이 없다 보니, 일과 일 사이, 또는 그 일을 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몰라 엉뚱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뜻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좌절감에 사로잡힌다. 분명 처음 하는 일이고, 경험 많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실패가 아닌 ‘시행착오’라고 의미 부여할 수 있지만, 그렇게 못한다. 그러다 보니, 한번 해서 안 되는 일은 다시 해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과정을 바꿔 새롭게 도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면서, 물색없이 잘되기만을 바란다.
어떤 일이든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한다. 그런데, 그 수준을 단계별로 올리기보다는 단박에 ‘완전무결’의 단계에 이른다고, 이를 수 있다고 의지를 갖고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한다. 문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것’으로부터 나타난다. 너무 높은 수준의 목표를 내세우다 보니, 기대치 대비 실망의 크기가 클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잘 몰라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아둔하게도 다시 높은 목표를 향해 내달린다. 순차적, 단계적으로 목표 수준을 설정하고, 가장 접근하기 좋은 수준으로부터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려고 해야 하는데, 늘 ‘한 방’을 강조한다. 심지어, 첫 술에 배불러야 한다고도 한다.
애초에 일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킨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인지, 업무 시간 이외의 시간적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일을 잘하기 위한 노력은 ‘일할 때’ 뿐이다. 나름의 노력을 하는 것도 당연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발전도 더디게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재능 때문이 아니다. 의지와 관련 문제이다.
일에 대한 감은 있다. 하지만, 이를 ‘감’으로 그냥 두는 경우가 많다. 다음번에 더욱 잘하기 위해 별도로 기록하여 관리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남에게 그 일을 전수하거나, 지시, 명령, 리드 등을 할 때, ‘이해 불가능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그 결과, 함께 일하게 될 이들이 곤란함을 겪는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일에 대한 ‘디테일 부족’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25가지 중에 몇 가지에 해당되는가. 그리고, 해당이 되는 것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개수는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일 관련 생각과 태도의 실수가 무엇이고, 왜 이런 실수 또는 습관을 갖게 되었는지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진짜 노력을 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고치려고 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역사를 세울 수 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각자의 위치에서 가장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기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딱 하나, ‘잘 듣기’ 때문이다.
남의 이야기도, 내가 나에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도 모두 커뮤니케이션이다. 주니어 때부터 비즈니스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비즈니스에 적합한 ‘말하기, 듣기, 쓰기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을 15년 전 주니어 때부터 들어왔다. 그리고, 그동안 수많은 경험을 통해 대다수가 가장 못하는 것이 “남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잘 듣는 연습, 진짜로 집중해서 듣는 연습은 주니어 때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앞서 지적한 25가지가 모두 ‘잘 듣지 못해, 내 식대로 들어서’ 나타난 악습이라고 말하고 싶다. ‘잘 듣기’, 이것마저 못하면, 조직에서 ‘함께 일하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꼭 최선을 다해야 하는 영역이다.
경청을 소홀히 하면, 점차 주변에서 본인과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알고 난 이후에는 이미 늦었을지 모른다. 다른 이들과 어울려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주변에 소문이 났을 가능성이 높고, 쉽사리 그 소문은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좋지 못한 평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조심해야 한다. 아니, 잘 듣고, 잘 들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직스쿨 김영학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