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과 나쁜 일은 동시에 온다고 했던가. 작년 하반기 이직을 하면서 직무도 회사도 내게 큰 도전이었다. 좋은 점이라면 처음 접해본 비즈니스에서 새로운 업무를 배운다는 것이었고 나쁜 점보단, 우려되는 점이라면 내가 지원한 CRM 분야에 경력이 매우 부족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여차저차 업무를 배우는 시간이 흘렀다. 회사 경력은 5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3개월 전부터 CRM의 기초부터 실무까지 배우는 중이다. (잠깐 이전 경력을 설명하자면, 나는 원래 콘텐츠&퍼포먼스 마케터 이력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AARRR 중 Acquisition에 초점을 두었다면, CRM은 Retention에 집중하는 쪽에 가깝다)
CRM은 위키에 개념이 잘 정리되어 있는데 고객 관계 관리(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를 줄여서 CRM이라고 표현한다. 콘텐츠&퍼포먼스 마케팅이 우리 브랜드를 모르는 다수의 타깃을 위한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한다면, CRM은 인지를 통해 우리 브랜드의 회원이 된 고객이 장기적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리텐션을 유도하는 마케팅이다.
퍼포먼스 마케팅과 조금 더 차별점을 둔다면 CRM이 우리 서비스를 실제 사용하는 고객의 구매 행태,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더 크다. 또한 장기적으로 개별 고객에게 단순한 마케팅성 메시지가 아닌, 진짜 고객이 필요한 것을 찾아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어야 한다.
3개월 동안 CRM 마케팅 업무를 통해 배웠던 10가지 인사이트를 정리해보았다.
CRM은 기본적으로 관리하는 마케팅 채널이 많다. 물론 퍼포먼스 마케팅도 SNS 채널 별로 다양하지만, CRM은 한 고객이 여러 채널에서 받을 수 있는 마케팅 메시지 구좌가 여럿이다. 채널 별 특성과 소구할 수 있는 내용도 다르다.
앱푸시
플러스친구
알림톡/친구톡
인앱메시지
LMS
eDM
CRM은 크게 보면 7개의 채널을 관리하게 된다. CRM 마케팅을 할 때 '발송한다'는 동사로 말하는데, 마케팅 메시지를 발송할 때 메시지의 특성 별로 선택할 수 있는 채널이 결정된다. 만약 짧은 문구 기반이고 앱의 랜딩 페이지로 빠르게 넘어가야 하는 경우에는 주로 앱푸시를 쓰고 이미지가 중요한 CRM이라면 플러스친구, 친구톡 광고를 쓰는 형식이다.
일회성 이벤트/프로모션 내용인지, 주기적으로 발송해야 하는 자동화 CRM인지에 따라서 채널을 결정할 수 있다. 또한 마케팅의 중요도에 따라 비용적인 측면을 고려해 가장 효율적인 곳을 선택할 수도 있다. (ex: 플러스친구와 LMS는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고 앱푸시나 인앱메시지, eDM은 비용이 들지 않거나 거의 적은 편에 속한다)
퍼포먼스 마케팅도 광고 플랫폼 별로 문구 수 제약이나 콘텐츠 내용 등과 같은 규약이 있다. CRM도 마찬가지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정보통신망법 준수를 위한 광고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다. 알림톡, 친구톡, 플러스친구는 카카오톡 관리자 센터에 자세하게 표기되어 있다. 그보다 더 큰 범주인 앱푸시 정책에 대해서는 필수적으로 알고 가야 한다.
앱푸시는 광고성 정보가 시작되는 부분에 (광고)를 표시해야 하고, 광고성 정보가 끝나는 부분에 쉽게 수신 거부 또는 수신 동의를 철회할 수 있는 방식을 명시해야 한다. (광 고), (광/고), *광고 같은 표현은 사용할 수 없으며 오후 9시부터 익일 오전 8시까지 광고 푸시 전송을 제한한다. 이렇듯 세세한 정보통신망법을 준수해서 발송해야 나중에 큰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
야간 광고 전송이 제한되지만 만약 야간에 활용하는 유저가 많은 서비스라면 왼쪽의 카카오페이지 앱처럼 따로 야간 광고 전송에 대한 수신 동의를 받을 수 있다. 카카오페이지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야간 선물 받기라는 명칭을 사용해서 동의라는 표현을 선물 받는 행위로 우회해서 설정해두었다. 참으로 신박하다.
오른쪽의 멜론 앱의 경우에는 매너 모드 설정 시간이 따로 있다. 멜론은 따로 추측해보지는 않았지만, 멜론에서 자체적인 콘텐츠인 멜론 오리지널, 팟캐스트 같은 외부 프로그램 등을 구독할 때마다 “구독 중인 프로그램의 캐스트 등록 시 알림이 발송됩니다.”라는 메시지 팝업이 뜬다. 만약 프로그램이 야간에 등록될 때도 앱푸시를 받을 수 있도록 개별 구독으로 설정해둔 게 아닌가 싶다.
마케터는 글쓰기와 뗄 수 없는 직업임이 분명하다. 콘텐츠를 기획할 때도 퍼포먼스 광고 캡션 작성부터 고객을 획득하기 위해 어느 하나 글쓰기가 요구되지 않는 범위가 없다. CRM이야말로 수명이 짧은 마케팅이기 때문에 빠르게 고객의 흥미를 사고 클릭을 유도해야 한다.
앱푸시는 크게 일회성과 자동화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일회성은 이벤트, 프로모션 홍보로 보내는 영역이고 자동화는 회원의 라이프 사이클에 맞추거나 앱 안에서 개인의 행동에 따라 자동으로 발송되는 형태다.
자주 보고 배우는 인풋이 많아야 아웃풋도 쏟아져 나올 수 있듯이, 나는 평소에 다양한 비즈니스 앱을 다운받고 앱푸시를 유심히 본다. 앱의 특성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 서비스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자동화 앱푸시는 일회성이 아닌 행동 기반으로 발송되기 때문에 평소에 자주 쓰는 앱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보면 좋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마켓컬리, 쿠팡, 29cm, NRC, 카카오 계열사 앱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세상의 모든 앱을 다운 받고 아이디어를 수집하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평소에 친구들을 만나면 어떤 앱을 주로 사용하는지 기억에 남았던 앱푸시는 없었는지 꼭 물어보곤 한다.
크게 보면 발송되는 시점, 카피라이팅, 추천 상품&제안 방식, 앱 내의 콘텐츠를 보여주는 형태 등을 참고해보자. 같은 자동화도 한번 세팅해두면 좋지만 꾸준히 A/B 테스트할 수 있는 좋은 채널이다.
3번에서 말한 것처럼 카피라이팅도 중요하지만 결국 CRM의 핵심은 고객이 정말 필요한 제품&서비스를 파악하여 좋은 브랜드 경험을 전달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CRM이야말로 고객이 우리 서비스에서 회원 가입을 한 순간부터 구매까지 이르는 모든 과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개인화 CRM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유저의 모바일 사용 행태를 보는 것이다. 회원 가입부터 첫 구매까지의 여정, 첫 구매 이후 다음 구매까지의 리딩 타임 등 행동 기반의 유저 활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또한 개인화는 단지 메시지에 유저의 이름을 넣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메시지를 받을 유저가 자주 사용하는 언어는 무엇인지, 메시지를 받기 적절한 시간은 언제인지, 자주 구매하는 상품은 무엇이고 가장 최근에 구매한 상품은 어떤 것인지 등과 같은 유저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CRM이 이루어진다면 훨씬 효과적인 마케팅이 될 수 있다.
여러 가지 유저 데이터를 활용해서 하나의 메시지도 아래와 같은 예시로 더욱 고도화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2021년에는 SQL을 마스터하는 게 목표다!)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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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 캠페인 영상이나 퍼포먼스 마케팅의 경우 마케팅 실험 성과를 파악하기 위해 최소 하루 이상부터 길게는 한 달까지 기간이 걸리는 편이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타깃에게 도달돼, 서비스 인지까지 단계를 파악하는 여정이 짧지 않기 때문이다.
CRM에서 중요한 지표는 2가지로 뽑을 수 있는데 바로 Open Rate과 Conversion Rate이다. CRM은 성과를 파악하는 주기가 매우 짧은데 그 이유는 CRM이 접하는 영역이 모바일이며, 마케팅 메시지가 개인을 타겟팅해 발송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하면 인스타그램에 광고를 할 경우에는 유저가 광고를 볼 수도 있고 보지 않을 수도 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보는 경우라면 광고비를 정말 많이 쓴 경우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니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핸드폰을 하루에 1번 이상 오픈한다. 당연히 핸드폰의 메인 화면에 앱푸시가 노출되면 앱푸시 메시지를 볼 접점이 훨씬 더 명확하다. 그만큼 앱푸시를 바로 오픈하지 않았다면, 해당 메시지가 유저에게 clickable한 요소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Open Rate은 보통 3일 이내면 성과가 판단될 수 있는 수치다.
오픈했다 -> 유저에게 도움이 되는 메시지였다
오픈하지 않았다 -> 유저에게 도움 되지 않았거나, 상황에 의해 메시지를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Open Rate이 높으면 무조건 성과가 좋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이건 나도 업무 초반에 놓쳤던 부분인데, CRM 메시지의 정확한 성과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메시지를 받은 후 부정적인 반응도 함께 크로스 체크해야 한다. 메시지를 받고 불필요한 메시지라고 판단하여 알림을 끄거나 앱을 삭제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은 서비스에서 회원 탈퇴를 하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
부정적인 반응을 함께 고려하여 더욱 신중하게 타깃을 설정하고 실험해야 한다.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들의 반응을 민감하게 지켜보고, 꾸준히 인사이트를 쌓는 것이 필요하다. 신규 유저를 획득하는 비용보다 떠나간 유저를 다시 돌아오게 하는 마케팅 비용이 더욱 높기 때문이다.
홈페이지, 앱, 또는 특정 랜딩 페이지가 존재하지 않으면 퍼포먼스 마케팅 광고를 집행하기 어려운 것처럼 CRM 마케팅은 서비스의 프로덕트가 튼튼하고 정교하게 뒷받침되어야 CRM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마켓컬리를 예시로 들어보자면, 마켓컬리는 넷플릭스처럼 사용자의 잠까지 뺏어 가면서 하루 종일 앱 사용 시간을 확보하는 것보다 365일 자주 들어오게 하는 목적이 큰 커머스 서비스다. 자주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는 유저가 많은 상품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카테고리화 해서 잘 볼 수 있어야 하고, 장바구니에 최대한 많이 담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아쉽게 품절된 상품은 장바구니에 담지 못하게 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해당 상품이 입고되면 알림을 받을 수 있도록 설정한다거나 구매한 품목에 후기를 남겨 포인트를 쌓아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방식, 주문 내역에 따른 금액 별 쿠폰 증정 등과 같은 큰 단의 프로덕트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
입고된 상품을 앱푸시로 가장 빠르게 알림을 보내주고, 후기를 쌓으면 포인트를 지급해서 남은 포인트에 대한 안내 알림도 할 수 있고 금액 별 쿠폰을 사용하라는 LMS를 보낼 수도 있다. 프로덕트가 개선되고 탄탄해질 때마다 CRM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영역들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나도 다른 앱을 사용하면서 어떻게 하면 CRM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프로덕트 개선점의 시각에서 앱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8. 한순간의 실수가 아프고 치명적인 CRM
지금까지 정리된 내용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CRM은 성과를 빠르게 측정할 수 있고 개인화 마케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마케터의 입장에서 CRM을 이야기한다면 굉장히 살 떨리는 순간들이 많다.
퍼포먼스 광고는 집행 이후에도 이미지나 영상 콘텐츠를 수정하거나 텍스트, 랜딩 페이지를 변경할 수 있지만, CRM은 발송을 누르는 순간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너기 때문에 보내기 전 카피와 앱 딥링크, 웹 링크, 타깃, 발송 시점, 목표로 하는 전환 데이터 등을 2번, 3번 이상 체크해야 한다. 실수하게 되는 순간은 상상하기도 두렵고 무섭다. 어떻게 보면 심적 부담이 가장 큰 마케팅일지도 모른다. (CRM 마케터는 건강을 위해 심장을 보호하는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갈수록 퍼포먼스 마케팅에서 광고 관리자의 제약이나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이슈가 많이 제기되면서 유입된 회원을 지속해서 관리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마케팅 채널이 더욱 중요해졌다. (기사 참고)
CRM의 가장 큰 강점은 퍼포먼스 마케팅보다 저비용의 광고 집행으로 유저와 지속적인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정교한 타겟팅을 위해 브레이즈 같은 고비용의 마케팅 툴을 사용할 필요도 있지만, CRM은 퍼포먼스 마케팅보다 즉각적인 유저의 반응, 구매를 직결할 수 있는 소통의 창구다.
단 CRM을 단순한 광고 홍보성 메시지만 발송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유저가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유저의 pain point를 발견해 해결할 수 있는 지점까지 가야 한다. 또한 유저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콘텐츠에 집중하여 보내주는 eDM-뉴스레터 방식도 고민해볼 수 있다.
사람들이 제품&서비스를 소비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 브랜드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브랜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서비스가 그냥 필요해서, 검색에 걸려서 쓰는 단타성의 경험이 아니라 유입 이후에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CRM과도 연결된다.
아무리 앱푸시를 고도화하고 CRM 채널을 확장해도 유저는 브랜드가 자신을 존중해주고 가치 있는 소비자라는 지점을 계속 알려 주어야 팬심이 생기고 자연스러운 referral이 형성된다. 이 지점을 CRM을 통해 유저가 느낄 수 있도록 브랜딩 메시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3개월 간의 회고 겸 인사이트를 10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사실 쓰면서도 나조차도 업무로 적용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으며 배워야 할 영역이 산처럼 쌓여 있다. 그만큼 CRM이 앞으로도 마케팅 채널로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지점이기도 하다.
잘해도 내 업무, 못해도 내 업무라는 정신 승리로 이겨내고 있다. CRM에서 도전해보고 싶은 업무가 끊임없이 떠오르고 있으니, 지금의 성장 곡선은 더디지만 잘 올라가고 있다고 느끼는 하루하루다.
김이서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