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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 전 이야기입니다. 같이 일하던 친한 선배가, 키보드를 사주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아 열심히 일하라고 이런 선물도 주시는구나. 크흑 선배님 감사합니다’ 하고 감동하려 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키보드를 너무 세게 쳐서 시끄러워 집중을 못 하겠다는 이유가 있으셨죠.
그런데 그렇게 바로 말하면 제가 상처 받을까봐, 회사에서 준 키보드 말고 소음이 적은 거로 하나 사주실 생각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나무라셔도 찍소리 못했을 텐데 신경 써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키보드는 안 받고 이후로 타이핑을 살살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새 키보드를 얻진 않았지만 그때 제가 느낀 게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던 부분이었거든요.
학교, 군대, 회사.. 사람끼리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든 집단 안에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서로 도움이 되는 좋은 관계도 있지만 상처를 주고받는(요즘 말로 딜 교환) 관계도 많죠. 진짜로 싸우려고 덤비는 경우도 많지만,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말에 상처 받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별 의도 없이 한 말인데 받아 치자니 성격 나쁜 사람이 될까 봐 걱정되고, 그렇다고 속으로 담아 두자니 기분만 나쁜 경험, 다들 있으실 겁니다. 사실 이럴 때 가장 좋은 대응은 무시입니다. 어렵죠. 어려운데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똑같은 상황과 대화에 대해 받아들이는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사람마다 성격과 인생 경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회사 동료들끼리 이혼에 대해 이야기해도 이혼 경험이 있는 직원은 느끼는 바가 다르겠죠. 극단적인 예이지만 의외로 많이 벌어지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성격과 경험을 고칠 순 없습니다. 예민하고 소심한 사람일수록 혼자 고민하게 되는데요. 이럴 때 참고할 수 있는 팁을 공유합니다. 눈치 없어지고 멘털 강해지는 방법이랄까요.
단, 아래 3가지 방법은 임시방편임을 분명히 알려드립니다.
Cool & Dry 느낌이랄까요. 회사에서는 인간관계를 일로만 엮이도록 노력합시다.
이게 뭐가 어려워? 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잘 안됩니다. 같이 있다 보면 결혼은 했냐, 애는 몇이냐부터 호구조사가 시작되죠.
‘타인에 대한 오지랖 = 관심과 애정의 표현’으로 통용되는 게 우리 사회라서 그런데요. 빠져나가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다른 분들이 묻는 것에 대해 지나친 방어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옆자리 동료가 어디 사시느냐고 묻는데 모니터만 응시하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죠. 잘 응대해 주시되, 반대로 묻지 않으면 됩니다.
즉, ‘옆 사람이 어디 살고 애가 몇이고‘를 내가 궁금해하지 않으면 됩니다. 본인이 말하기 전에는요. 업무 외에는 동료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거죠. 관심을 갖지 않으면 모르게 되고, 모르면 동료에 대해 일 외에 말을 전달하지도 않게 됩니다. 뒷담화? 뭘 알아야 하죠. 아는 게 없으니 그런 자리에 끼지도 않게 되고, 본인 역시 그 대상이 되는 일이 적어집니다.
회사 안에서 당신의 이미지가 무엇일지 고민해 보세요. 본인 이미지를 잘 모르겠다면, 주변 사람들 생각을 해 봅시다. ‘남의 이야기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딱 떠오르는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일에만 집중하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저런 이미지를 줄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1번을 열심히 하면 2번이 자연스럽게 되는데요. 이른바 색깔이 빠집니다. A당을 지지하면 어떤 사람, B당을 지지하면 어떤 사람 이런 걸 정치색이라고 하고 C지역 출신이면 어떻고, D지역 출신이면 어떻고 이런 건 지역색이라고 하죠.
색으로 인해 자신의 캐릭터가 선명히 드러나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본인이 의도한 것이라면 모를까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의 캐릭터가 규정 지어지기도 하죠. 업무에 꼭 필요한 경우는 피할 수 없겠지만 그게 아니면 철저히 무색무취가 되는 게 좋습니다.
지역색은 숨길 수 없는 게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차라리 ‘여기저기 이사 다녔던 사람’이 되는 게 좋습니다.
이쯤 되면 “뭘 이렇게까지 하느냐”라고 하실 겁니다. 이유는, 프레임의 함정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봅니다.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표현과 일맥상통하네요. 항상 맞는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모두 그러고 있습니다. 혈액형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 특정 지역 출신들의 성향을 정의하는 것 등등이죠.
A형인데도 대범하고 강력한 추진력을 보유한 사람을 저는 많이 봤고, 충청도 출신인데도 의사 결정이 매우 빠르고 이메일 답장을 10분 안에 항상 주는 분들도 많이 봤습니다. 프레임은 이래서 무섭습니다.
여러분이 주변에 제공하는 정보가 여러분을 프레임에 가둡니다. 여러분의 의지와 무관하게요.
업무에 있어서는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그 외 부분은 공기와 같은 사람이 되길 권합니다. 그 시작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데서 출발합니다. 업무 외 분야에서는 무색무취한, 공기와 같은 사람이 되세요.
멘털이 강하고 눈치가 없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건 정말 진리입니다. 며칠 전 인상적인 문구를 보았습니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주신 교훈이라고 하는데요.
“젊었을 때는 최후에 웃는 놈이 승자인 줄 알았는데,
나이 들고 보니 많이 웃고 산 놈이 승자더라”
늘 웃으며 인생을 풍요롭게 산 사람이 나중에 성공하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매우 동의하는데요. 이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주 웃으려면 지금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예민해지고 고민하는 걸 줄이면 됩니다. 둔감해지세요.
회사에서 가끔 예전 문서를 열어봅니다. 업무 일지나, 관련 파일 등등이죠. 보고 있으면 그 당시에 했던 고민, 인간관계로 인한 괴로움 등이 생생히 생각납니다. 보고 있으면 또다시 괴로운 게 아니라, 웃음이 나옵니다. ^^;; 정말로 웃음이 나옵니다. 내가 왜 이런 거로 그땐 그렇게 괴로워했나. 이게 뭐라고, 왜 그땐 심각했던가.. 이런 느낌이죠.
싸이월드 다시 열어보며 그때의 흑역사를 추억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때의 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엄청 많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으세요?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 10년 후에도 유효한 고민일지,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아, 또 고민..?)
마치며 : 좋은 방법이지만 임시방편인 이유
1/2/3 단계를 모두 클리어하면 여러분은 눈치 없고 멘털 강한 사람 Lv1을 획득하신 겁니다. 축하드립니다!
쭉 Lv을 올리셔도 좋지만, 한 번쯤 지나온 길을 생각해 보세요. 웬만한 것에 흔들리지 않을 멘털을 가졌다면, 그리고 웬만큼 일을 하며 커리어를 만들어나가고 있다면 자연스레 색깔이 생기게 되니까요.
정치색, 지역색이 아니라 자신의 색 말입니다. 홍길동은 이런 사람이더라..라는 이미지. 그리고 여기서 이 색이 좋아서 따르는 사람도 생겨나게 되죠.
그래서 임시방편입니다. 예민하고 섬세한 마음을 추스르는 기간을 두고, 언젠가는 맞서기 위해서요.
먼저 고민했던 선배로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실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길진세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