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기차 회사들이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직접 만들겠다고 나서면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테슬라에 이어 폭스바겐, 현대차까지 다 직접 만들겠다는 배터리, 도대체 왜 이슈가 되는 걸까요?
2035년 세계 각국에서 내연기관차 판매가 금지될 예정인데요.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도 모두 2025년경 전기차를 본격적으로 내놓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이런 기대감에 전기차와 함께 ‘이차전지’도 큰 주목을 받았죠. 이차전지는 충전해서 쓸 수 있는 배터리로 전기차의 엔진 대신 사용되는데, 이 배터리 가격이 전기차 가격의 무려 20%를 차지합니다. 5,000만 원짜리 전기차 하나를 만드는 데 배터리값만 1,000만 원이 드는 셈이죠.
배터리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만큼 만들기도 쉽지 않습니다. 자동차 회사들은 비싸지만 직접 만들 수는 없으니 중국의 CATL이나 우리나라의 LG화학 같은 전문 업체에서 배터리를 사서 써왔죠. 오죽하면 자동차 업체들이 “내연기관 120년사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을(乙)”의 입장에 서 있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죠. 이런 대체 불가능한 관계 때문에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의 주가도 크게 올랐습니다.
배터리가 기능 면에서나 비용 면에서나 워낙 핵심 부품이다 보니, 전기차 업체들은 모두 배터리를 직접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BMW나 포드도 시도했다가 포기할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었죠. 그럼에도 테슬라나 폭스바겐은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공공연하게 밝혀왔는데요. 특히 폭스바겐은 최근 ‘파워데이’에서 이런 계획을 구체적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렇다면,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배터리를 어떻게 자체 생산하겠다는 걸까요?
일단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자사가 생산하는 전기차 80%에 표준화된 자체 생산 배터리를 탑재한다는 계획입니다. 물론 직접 공장을 짓고 생산까지 할 수 없으니 파트너사와 함께하는데요. 폭스바겐이 공장 건설에 투자한 스웨덴의 노스볼트, 직접 지분을 사들인 중국의 국헌과기, 그리고 중국 최대의 배터리 업체 CATL과 함께 생산할 것으로 보입니다. 빠르면 2023년부터 양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하죠. 특히 전기차 배터리는 이송 중에 탄소 배출이 발생하는 것을 고려해 현지에서 만든 배터리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인데요. 폭스바겐의 매출 40%가 중국에서 발생하는 만큼, 폭스바겐이 중국 업체를 택한 것이 당연하다는 평가도 많습니다.
폭스바겐이 이런 계획을 발표하자 우리나라 배터리 기업의 주가가 크게 내렸는데요. 폭스바겐이 우리 기업이 주력하는 파우치형 배터리가 아니라 각형 배터리를 표준으로 채택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폭스바겐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최대 고객사 중 하나였는데, 우리 기업들을 사실상 배제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이들 기업의 주가가 휘청이고 있죠. 그나마 각형 배터리를 만드는 삼성 SDI도 과거 폭스바겐의 물량 수주를 포기한 적이 있어 수주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사실 ‘배터리 내재화 선언’은 테슬라가 이미 작년 9월 ‘배터리데이’에서 했습니다. 파나소닉이나 LG화학 같은 기존 협력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배터리를 자체 생산해 전기차 가격을 3천만 원대까지 낮추겠다고 했죠. 원료가격을 낮추긴 어려우니 공정을 고도화해 생산원가를 낮추겠다는 계산인데요. 2025년에는 배터리팩 가격을 60달러 수준까지 낮추고, 10년 안에 지금의 60배에 달하는 용량의 배터리를 자체 생산한다는 원대한 계획도 밝혔습니다. 불가능하다고 보는 시각도 많지만, 테슬라도 배터리 독립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죠.
폭스바겐과 테슬라뿐만 아니라, 우리 자동차 기업인 현대차도 폭스바겐의 발표에 놀라 배터리 자체 생산을 검토하고 있다는데요. 폭스바겐이나 테슬라처럼 지금 당장 배터리 자체 생산에 나서는 것은 아니지만, 차세대 배터리로 알려진 ‘전고체 배터리’를 자체 개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대신 고체를 전해질로 활용해 안전성과 성능이 기존 배터리보다 좋은 배터리인데요. 아직 상용화되기까지는 한참 남았다는 분석이 많은 만큼, 현대차의 배터리 내재화는 그렇게 급한 이슈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겠다고 나선 곳은 테슬라와 폭스바겐뿐입니다. 물론 이들 기업이 적극적으로 자체 생산에 나선다고는 밝혔지만, 공언한 만큼 빠르게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배터리 기술만 해도 수십 년 R&D의 결과이고, 이미 독일의 다임러와 보쉬, 일본의 닛산이 배터리 사업에 도전했다가 철수한 바 있을 정도로 쉬운 사업이 아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테슬라나 폭스바겐의 내재화 선언이 우리 배터리 업계에 위협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기업의 주가는 미래 기업가치를 반영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내리는 것이 당연하겠죠. 결국 이제 K-배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이들 업체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공급처와 수주 방식을 다변화하거나, 고부가가치 사업의 비중을 늘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 같은데요. 일단 배터리 업체들도 ‘쇼크 상태’라고 하니 이들이 충격에서 벗어난 뒤 어떤 새로운 솔루션을 들고 나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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