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중심의 접근 방식을 버리자
‘마케팅 리부트‘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Product Hacking(제품의 리포지셔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여기에서 Product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제품일 수도, 서비스일 수도, 브랜드일 수도 있습니다.
앞서 ‘꼬뜨게랑’이나 ‘곰표’의 사례에서 살펴봤듯, 중요한 것은 이 ‘Product’가 디지털상 확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후 Digitize(또는 Digitalize)라 명명하겠습니다.
최근 트렌드나 마케팅 관련 서적에서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제품의 완성도는 판매나 마케팅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보통 Marketing Annual Plan을 수립할 때를 보면, 완전히 신제품이 나올 때를 제외하고 대략 아래와 같은 방식을 따르지 않을까 싶은데요.
올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모을만한 스페셜 이슈를 파악한다. (월드컵, 올림픽 등)
스페셜 이슈와 시즈널 이슈(명절, 핼러윈 등)에 맞춰서 고객이 관심 있을 만한 아이디어를 낸다.
시즌별 프로모션을 기획하고, 예상 판매량에 따라 예산을 책정한다.
예산에 따라 매체를 편성한다.
글로벌 브랜드들의 경우, 브랜드 사이트는 물론 소셜 채널에 대해서도 Playbook(일종의 가이드북)이 존재하며 주로 사용할 Color, Font나 Tone 등이 세세하게 정의되어 감히 손대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Digital Playbook을 만드는 데만 엄청난 예산을 쏟기도 하구요.
이런 경우, 대체로 우리의 ‘제품’은 디폴트(즉, 고정값)로 두고 각 상황에 맞춰 콘텐츠나 프로모션에만 변화를 주는 방식입니다. 고정된 요소들이 많으니 뻔한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지점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제품의 USP를 잘 드러낼 수 있는 더 멋진 광고, 카피, 영상 등 크리에이티브의 퀄리티에만 치우치게 됩니다. (대행사만 더 쪼게 되죠…) 그러니 데이비드 오길비는 아래와 같은 자조적인 이야기를 하죠. 안타깝지만 아직도 어느 정도는 진실입니다.
광고주가 불평하고 한숨을 쉬면 회사 로고를 두 배 더 크게 하라. 그래도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회사 공장 사진을 넣어라. 아무리 해도 안 되면 광고주의 얼굴 사진을 써라!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
이런 고전적인 방식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에서 일렀듯, 많은 예산을 투입하면 안 되는 것도 되게 만들 수 있죠.. 비즈니스 카테고리별로 다르겠지만, FMCG 같은 분야라면 소비자의 선호가 빠르게 변하므로 트렌드에 맞는 대응이 필요합니다. 또 분야와 상관없이 대기업이 아니라면 소비자 맞춤형 마케팅이 적합하겠죠.
고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량은 한계가 있습니다. 제품에 엄청난 기능 차이(TV 화면이 둘둘 말린다든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웬만해선 ‘Wow~!’ 하는 반응을 끌어내기 어렵죠.
예전에 완전 제품(Whole Product)이라면, 기본적인 제품의 성능 외에 A/S나 유통 등, 이른바 4P(Product, Place, Price, Place)가 제대로 작동하는 걸 뜻했다면, 디지털 시대엔 제품과 콘텐츠가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ATOM 세계 속의 제품을 BIT 세계로 ‘텔레포트*’ 시키려면 원소 단위로 쪼개 좁디좁은 관문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를 결정해야 하죠. 우리 제품의 아이덴티티를 재정의하는 이 작업을 ’Product Haking’이라 칭하고, 남길 부분을 ’Core Value’라 하겠습니다.
* 텔레포트 : 순간이동이라고 하죠. 스타워즈의 ‘워프’나 스타트렉의 한 장면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이 Core Value가 소비자의 Needs/Wants와 만나 Contents 화 될 수 있으면, Product-Market Fit이 된 것이라 볼 수 있죠. 여기서 ‘Core Value’란 건, 우리 제품의 핵심적인 강점을 말하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 : 고유의 강점)는 맞겠지만, 그게 꼭 기술적인 장점을 의미하지는 않으니까요..
우리 제품 자체를 개선하는 것이 아닌, 디자인, 소비자가 생각하는 브랜드 이미지, 소재, TPO 등 모든 요소를 분해해 놓고 무엇이 소비자에게 통할 수 있는 요소인가를 따져 보는 것이 Hacking입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경쟁사 대비 더 나은 것을 찾는 과정이 아니죠.
말장난 같으니.. 아래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IKEA Retail Therapy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IKEA 제품의 필요성(Core Value)을 소비자에게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래 제품의 경우, 원래 이름은 HEMNES이지만 구글링을 하는 고객을 위해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되어 있죠. 이 제품이 왜 필요한지는 이미 소비자가 검색할 때 정해졌으니까요..
여기서 IKEA가 버린 것은 무엇이고, 남긴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선택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한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대한민국에서 ‘바나나맛 우유’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몇 년 전 빙그레 마케팅 담당자는 모 대학에 강연하러 갔다가, 바나나맛 우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근래 들어 먹어본 사람도 없다는 걸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뒤 빙그레의 마케팅을 보면 제품 자체보다는 이슈를 만드는 데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을 알 수 있죠.
#단지가궁금해 시리즈를 보면 바나나맛 우유의 시그니쳐(뚱바)를 유지하면서 다양한 맛의 한정판을 내놓고 있죠. 사실 바나나맛 우유의 정체성은 ‘바나나맛’입니다. 몇몇 회사에서 바나나맛 우유의 아성을 깨트리기 위해 비슷한 제품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바나나맛 우유=빙그레’라는 확고한 공식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모션은 어디서도 ‘바나나’ 맛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오직 ‘인싸’들이 새로운 맛이 나올 때마다 먹어 보고 공유하게끔 하는 것이 목적이죠.
위에서 언급했듯, 제품 자체를 그대로 놓고 소비자가 자발적인 확산을 해주길 바란다면 실패할 확률이 큽니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때론 과감하게 버려야 할 때가 있죠.
IKEA의 ‘Retail Therapy’나 빙그레의 ‘#단지가궁금해’의 마케팅 포인트는 뭘까요? 소비자를 우리 제품을 알릴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소비자가 원하는 것, 즉 코 고는 파트너에 대한 해결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인싸가 되고 싶다.. 같은 관심사에 더 집중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위의 제품들은 이미 설명이 필요 없는 잘 알려진 브랜드와 제품이 아니냐?! 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알아주니 과감한 마케팅이 가능하지 않겠냐 생각할 수도 있죠. 과연 그럴까요? 성공한 브랜드일수록 마케팅에서 운신의 폭은 크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각종 가이드와 매뉴얼들, 그리고 자신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고정관념들이 있죠.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은 꼭 어떤 브랜드나 제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카테고리 자체에도 그간의 전통적 마케팅에서 쌓여온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이 고정관념을 깨버리는 작업이 바로 Product Hacking이 될 수 있습니다.
아래 <월간 칫솔> 역시 그런 사례죠.
소모성 제품, 특히 위생과 관련된 면도기나 칫솔을 바꾸는 시기를 알려주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많았습니다. 정말 소비자의 건강이 걱정돼서라기보다 좀 더 많이 팔기 위한 의도가 크겠지만요. 하여튼.. 미리 착색해둔 색이 변하면 바꾸라든가, 3개월마다 한 번은 바꾸는 습관을 가지라는 캠페인을 한다든가, 공기청정기 같은 경우 필터를 바꾸라는 점등을 해서 알려주기도 하구요. 하지만 위의 <월간 칫솔>은 이런 귀찮음 자체를 애초에 제거합니다. 아예 매월 새로운 제품을 쓸 수 있게 12개 묶음으로 판매하는 거죠. (칫솔에 몇 월이라고 각인돼 있습니다.)
이는 면도기 시장에서도 볼 수 있는 변화입니다. 오랜 기간 시장의 지배자였던 ‘질레트’는 면도기를 상대적으로 싸게 파는 대신, 비싼 면도날을 팔면서 엄청난 수익을 올렸죠. 그들이 시장을 방어한 원동력은 바로 ‘제품력’입니다. 지속해서 신제품(날이 하나씩 늘어나는..)을 발매하고, 특허로 다른 경쟁사들이 따라오기 어렵게 만듭니다. 소비자들에게 면도기도 하이테크 카테고리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그걸로 꽤 오래 재미를 봤습니다.
이 아성을 깨트리고 있는 것은 ‘쉬크’나 ‘필립스(전기면도기)’가 아닌 DSC(Dollar Shave Club)입니다. 모두가 왜 면도날이 비싸야 하지?라는 의문이 있었지만, 체념하고 있던 소비자를 대신해 크게 한 방을 날린 겁니다. DSC는 더 좋은 면도기와 면도날을 강조하진 않습니다. (한마디 하긴 하죠. F***ing Great이라고..) 다만 비싼 가격으로 인해 자주 날을 갈아주는 게 불편했던 소비자의 마음을 공략합니다. 질레트가 엄청난 특허 공세(질레트는 무려 2000개가 넘는 특허를 보유)로 경쟁자들의 기술 혁신을 가로막고 있을 때 말이죠.
이제 ‘소비자는 내가 찾던 제품이다’라고 느끼는 순간, 바로 결제 버튼을 누르게 됩니다.
DCS의 면도날은 한국의 도루코 제품입니다. 미디어 커머스 기업인 ‘블랭크’의 제품들도 그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죠. 상당수의 스타트업들은 직접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제조사(국내든, 중국이든..)를 활용해 제품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제품으로 승부하려는 노력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닌 세상입니다.
우리의 제품이나 브랜드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겨야 할까요? 또는 우리 카테고리에서 소비자가 진짜 원하는 것은 뭘까요? 최근에 돈쭐을 내준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착한 소비’라는 개념으로 볼 수도 있고, ‘가치 소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제 소비자의 선택 기준에 ‘제품’ 이상의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Ryan Choi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