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한 지도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담당하는 프로젝트 몇 개의 마감이 지나고 나니 벌써 시간은 마음과 정신이 온전히 따라갈 새 없이, 혼자 멀리 앞서 있다.
이번 글에서는 선임과 인턴, 그리고 나 세 명으로 구성된 팀에서 일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경력 이직자의 이상적인 태도에 대해 이따금 깨닫는 것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지난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는 2018년 당시 설립 5년 차의 뉴미디어 스타트업에 입사하여, 지난 1월까지 3년간 근무했다. 2년 차에 팀장직을 제안받았고, 약 1년간의 거절의 끝에 나는 팀장이라는 과분한 직책을 맡게 되었다. 회사의 첫 기획자에서 5명의 팀이 형성되기까지 파일 템플릿과 업무 프로세스 등을 정립하기도 하고, 이따금 팀 회의에서 건의 사항을 수렴해 팀장 회의에서 팀을 대표하여 전달하기도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선구자로서의 희열감을 느낄 수 있던 귀중한 기회였지만, 한편으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앓이를 매일 밤 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본 적도, 겪어본 적도 없는 좋은 팀 문화를 형성하고자 퇴근 후에 서점에서 책을 읽고 적용해보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항상 의문이 들었고, 마음을 터놓고 자문할 사람은 없었다.(사실 이건 남에게 속마음을 얘기하지 못하는 나의 성향이 가장 크다)
DO NOT LEAD, JUST CONNECT
미국 스타트업 팀장들과 관련된 책에서 봤던 구절. ‘그들을 이끄려고 하지 말고, 연결하라’는 말은 나의 지침과 같았다. 권한을 주는 동시에 그에 대한 책임을 가지는 것은 성장에 대한 욕심이 있는 직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으로 느껴지지만, 경험이나 정보 없이 한 프로그램의 기획 PM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마냥 즐거울 수는 없을 터. 돌이켜보면 업무 진행은 어떻게든 되었지만, 지속가능한 하나의 ‘팀과 팀 문화’를 구축하는 데는 많이 미숙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직한 스타트업에 배정받은 팀에는 선임 디렉터와 인턴이 있었고, 그사이에 나는 매니저로 입사하게 되었다. 3년 경력을 가지고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사람이라면, 팀 내에서 이런 포지션을 맡을 수 있다.
익숙하던 환경에서 벗어나 업무, 조직, 동료 등 모든 새로운 것들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 선임과 후임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동시에, 선임과 후임 두 가지 역할을 한꺼번에 해야 하는 멀티플레이로서의 역량이 요구되는 자리. 그 자리에서 지난 두 달간 자연스레 나에게
‘내가 선임이라면,’
‘내가 후임이라면,’
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 정립되기 시작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두 입장에서 가지면 좋을 태도를 3가지 정도로 추려 보고자 한다. 이것은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며, 당신이 더 나은 동료가 되길 바라며 남기는 나의 짧은 지혜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기억 못 한다는 옛말이 있듯 업무가 손에 익고 후임이 생기면 본인이 얼마나 업무를 주었는지보다 그들의 업무 처리 속도나 퀄리티에 집중하게 되고, 이는 결국 끊임없는 불만족의 연속이다. 또 길게 설명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퀄리티를 얻느니 차라리 내가 해야지, 하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럴 땐 입사 초반 어리바리했던 나의 과거를 떠올려 보고 한 번 더 기다리자. 상대방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일 것.
완성도의 기준을 나와 다르게 두는 게 정상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혹시나 나는 입사 때도 잘했는데! 하고 생각하는 독자분들은 한 번 더 자신의 지시를 곱씹어 보자. 의외로 당신의 지시나 업무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설명을 잘하는 것도 능력이다.)
직원의 이직이 잦은 스타트업의 특성상, 1년만 돼도 회사에 오래 다닌 사람 중 한 명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대표님과 친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거나 너무 업무적으로만 대한다면, 후배들이 마음속 이야기를 쉽게 꺼내 보이기가 어렵다. 팀원과 본인 사이 신뢰감과 친근감을 높이는 것은 서로에게, 더 나아가 회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아무리 회사 대표님의 경영 철학에 공감하고, 회사를 좋아하고, ‘일은 일!’이라는 생각이 뿌리박혀 있을지라도, 후임의 워크 라이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적절한 타이밍에 칭찬과 조언을 하라. 어느 날 갑자기 날개 돋친 듯 올라간 업무 효율과 태도가 확 좋아진 후임을 느끼는 날이 온다. 이는 결국 당신에게 큰 복이 되어 돌아온다.
선임은 보통 일을 분배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에 거의 모든 후임의 업무를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후임들은 선임이 무슨 일을 하는지 차근히 설명해주지 않는 이상 그 깊이와 넓이를 알기 어렵다. 하지만 선임들은 일일이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길 바란다.(하지만 알다시피 그것은 본인의 바람일 뿐이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에게도 꽤 난이도가 높고, 과중하다고 느껴지는 업무가 주어질 수 있다. 소통이 없다면, 후임들에게 고난도의 과중한 업무를 떠넘기는 무책임한 선임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선임은 후임들이 작성하는 일일 업무 일지를 작성해 본인의 업무를 어느 정도 공유하거나, 주간 팀 미팅 등에서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를 어렴풋이라도 공유하는 것이 좋다.
현재 회사로 이직을 결심할 때 회사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고, 현재 하고 있고, 미래에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고 조사했다면, 애사심을 가지기 한결 수월하다. 그리고 근무하는 회사에 대한 이해도와 애정이 높은 직원은 이미 업무를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약간의 과장을 덧붙인다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이 있듯 애사심이 높은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인생 전반에 걸친 비전과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놓은 경우가 많다. 이는 자강불식의 인생 가치관을 짐작하게 만든다.
본인이 맡은 업무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결과물을 만들고, 처음 해보는 일이더라도 해보겠다는 긍정적인 의지를 가진 후임이라면 어딜 가든 사랑받을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워라밸을 주장하는 현대 직장인들은 예정에 없던 일들이 자신의 스케줄에 갑자기 출몰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자신의 일과 그 외의 일을 구분 짓는 경향이 있는데, 경험상 나이가 젊을수록 그 경향은 강해진다.
처리하기에 까다롭거나 어려운 일을 맡길 때, 그 자리에서 즉시 싫다거나 못한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세우기보다, 일단 ‘해보겠습니다’라고 하는 적극성. 계속해서 시도해보고 정 안 될 때는 나름의 대안을 제안하는 센스를 발휘해보자. 말은 하지 않지만, 선임은 마음속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많은 경쟁 지원자들을 물리치고 선택받은 당신.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정 모르겠다면 선임에게 물어보라) 당신만의 장점은 분명 있다. 그리고 그것은 대게 당신의 치명적인 단점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자신만의 독보적인 매력을 잘 발산하면서, 또한 너무 튀지 않게 조절하라.
동료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찬찬히 살펴보라. 분명히 눈에 띄게 그들이 자주 하는 말과 행동들이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유니크함을 고수하되, 상황에 맞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현명함을 가져라.
위에서도 밝혔지만 이것은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자, 당신이 누군가에게 인상적인 경력 이직자, 또는 동료이길 바라며 남기는 나의 짧은 경험에서 나온 진실된 조언이다.
이 글을 읽고 직장에 그를 떠올리고 있는가? 하지만, 내가 원하는 당신의 시선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당신은 어떤 동료인가? 어떤 동료가 되고 싶은가?
Elena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