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넥슨은 신규개발본부로 조직을 개편했다. 그리고 지난해, 신규개발본부의 성과를 소개하는 취지의 언론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자리에 선 김대훤 부사장은 “절체절명의 시간”, “엄중한 시기”, “결과물로 증명할 마지막 기회”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모종의 절박함을 드러냈다.
넥슨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들이 수년간 몇 차례에 걸쳐 개발 조직을 바꿔왔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매년 봄이면 야구 팬 귓가에 들려오는 ‘이번엔 다르다’ 선언처럼 들려온다. 그럼에도 신규개발본부는 넥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유저 커뮤니티는 신규개발본부와 그들 프로젝트에 뜨거운 기대를 보내기 보단 ‘어디 한 번 지켜보겠다’는 듯 중립 기어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김대훤 부사장은 기어를 D 레인지에 두고 달리고 있다. 그 결과물은 바로 올여름부터 확인할 수 있다.
창간 17주년을 맞이해 3월 23일, 판교 넥슨코리아 사옥에서 김대훤 부사장을 만났다.
이전 인터뷰 > 넥슨 신규개발본부 “엄중한 시기, 결과물로 증명할 마지막 기회” (바로가기)
Q. 디스이즈게임: 1년 만의 인터뷰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A. 김대훤 넥슨 부사장: 지난 인터뷰에서 “절체절명의 시간”이라고 말했고, 그래서 많이 바빴다. (웃음) 올여름부터 결과물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다. 이제 그 결과물이 얼추 완성이 되다 보니 그 다음 단계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모멘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구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Q. 작년 4월에 인터뷰하고 8월에 이은석 디렉터의 <HP> 공개 테스트를 진행했다. 어떤 테스트였다고 평가하는가?
A. 유저와 시장으로부터 ‘참신한 도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중세 풍에 칼을 들고 떼싸움하는 게임이 없었냐면 그건 아니다. 그럼에도 “넥슨이 이런 장르에 도전한단 말이야?” 쪽으로 봐주신 것 같다. 또 발표한 시점에 대비해서 빠르게 만들었다라던지, 무기를 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했을 때 난제들을 풀어보려고 했던 노력한 부분 등을 긍정적으로 본 듯하다.
<HP>의 공개 테스트는 넥슨 자체 신작이 지향하는 방향을 보여주었기에 그 의미가 있다.
관련 기사 > 넥슨 신작 ‘프로젝트 HP’, 이렇게만 나와라! (바로가기)
Q. ‘넥슨 자체 신작이 지향하는 방향’이란?
A. 사석에서나 이렇게 공개된 자리에서나 ‘빅 앤 리틀’을 많이 이야기했다.
전통적으로 넥슨은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한 곳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넥슨이 한 장르에 편중된 게 아니라, 이런 저런 개성 있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는 점은 인정해주시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넥슨)조차도 아쉬웠던 게 그 결과물이 유저와 시장의 기대에 맞출 만큼의 것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리소스 운영 같은 것들을 얼마나 잘 해왔는지 고민이 많았다.
그 결과 나온 게 ‘빅 앤 리틀’이다. 완성도에 집중할 타이틀, 그러니까 ‘빅’이면 그걸 낼 수 있을 만큼의 시간과 역량을 투자하고 ‘리틀’이면 개성 있게 나가보자는 거다. 물론 큰 프로젝트라고 하더라도 너무 늘어지면 안 된다. 그간 넥슨은 개발 팀의 규모를 늘이는 것에 대해서 보수적이었는데, 이제는 회사 내부에서 큰 조직을 운영해봐야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사내 여러 목소리를 청취하다 보면, 넥슨이 가지고 있던 날카로움이 무뎌지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스몰’처럼 개성 있게 나가는 프로젝트는 날카롭게, 개발팀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 과감하게 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나온 게 넥슨의 새로운 브랜드 ‘프로젝트 얼리스테이지’이다. 개성 있게, 날 것으로 빠르게 게임을 내놓아서 유저들과 호흡하겠다는 전략이다.
다양성의 기준을 유지하되 그걸 제대로 하기 위해서 나온 게 ‘빅 앤 리틀’이다. 큰 거는 큰 거대로, 완성도는 완성도대로, 다양한 시도는 다양한 시도대로 날카로움을 유지하려 한다.
Q. 넥슨의 역사에서 내부 평가, 심사 프로세스를 의미하는 ‘허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면 ‘리틀’ 쪽은 그 ‘허들’도 없는 건가?
A. ‘리틀’ 쪽 프로젝트에는 허들이 없다.
다만 공유 정도는 한다. ‘이런 거를 이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도로. 예전처럼 발표하고, 심사하는 그런 절차는 없다. 최근에 내부적으로 테스트하는 ‘리틀’ 쪽 게임도 경영진들이 어떻게 만든 게임 정도만 알고 있지, 일일이 검토하지 않고 있다. 사실 경영진 입장에서는 개입을 안 하는 게 더 어렵다. 그 어려운 걸 하고 있다. (웃음) 그래야 ‘리틀’의 날카로움이 보존될 수 있으니까.
개성 있는 작품일 수록, 대중적인 잣대를 가진 우리(넥슨 경영진)가 판단하기에 어렵다. 그 팀을 믿어야 한다. 오히려 그 개성을 잘 확인해줄 수 있는 유저들을 많이 모셔서 내부적으로 테스트(FGT)하는 과정을 많이 거치고 있다. <DR>과 <P2>가 최근 FGT를 했다.
반대로 큰 프로젝트는 회사 역량을 집중해서 다듬어서 나가고 있다. 그게 ‘빅 앤 리틀’의 다양성이다. 신규개발본부가 넥슨의 본체이니만큼 다양성 측면에서 결과를 보여주면 좋겠다. 넥슨의 다른 회사들(주- 넷게임즈와 넥슨지티의 신규 통합법인 넥슨게임즈, 독립한 데브캣과 니트로 스튜디오를 의미)에게 자기 분야의 전문성이 있다면, 신규개발본부는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쪽이다.
Q. 작년 인터뷰에서 “넥슨이 결과물로 증명할 마지막 기회”라고 한 것이 기억난다. 최근 출범한 통합법인 넥슨게임즈는 <히트2>를 첫 작품으로 들고 나왔다. 신규개발본부도 이제는 구체적인 출시 일정을 내놓아야 할 때 아닐까?
A. 내부적으로 유동적인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작년에 표로 보여드렸던 리스트는 전부 유지되고 있다. 올여름부터는 쭉쭉 내보낼 계획이다. 마무리 중이다. 논의를 통해서 내년 상반기까지는 모든 게임의 출격을 완료시킬 것이다. 그 중 상당수는 올해 나온다.
Q. “3년 안에 5개의 IP를 만들겠다”라고도 공언했다. 모바일로 가는 <테일즈위버>나 <메이플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는 <MOD> 같은 타이틀도 새로운 IP에 포함되는 건가?
A. 기존의 IP가 있는 경우는 당연 새 IP라고 부를 수 없을 거다.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잘 나와서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으면 그때 IP가 된다. 그렇게 인정을 받고 사랑 받을 수 있도록 게임을 만들고 있다. ‘얼마를 벌겠다’ 이런 게임보다는 IP로 인정받는 게임들을 만들고 싶다. 누구나 다 IP로 볼 만한 게임을 만들자는 뜻이 있다.
여름부터 게임이 출시되면 유저들의 냉정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그때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작년 밝혔던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모두 순항 중이라고 말씀을 드린다. 뚜껑을 열어보면 알 것이다.
Q. 돌이켜 보면 넥슨은 여러 차례 ‘체질 개선’을 감행해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몇몇 프로젝트를 완전 독립시키고, 분산된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신규개발본부’다. 내부적으로 잘 적응하고 있나?
A. 만 2년이 지났다. 이제는 서로 많이 적응을 했다. 그때 선택과 집중, 개발력의 집중, 조금 민감한 이야기지만 개발진의 건강한 이합집산을 많이 말했다. 과거 넥슨은 팀마다 독립적이라 사람이 모이기 힘들었고, 각자의 생각이나 노하우를 주고 받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개방, 교류, 협력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고, 많은 것을 이뤄냈다.
예전에 넥슨은 개발 과정에서 다른 팀의 기획서를 보기 어려웠다. 만들어진 코드, 어셋을 볼 기회가 없었다. 지금도 시장에서 작은 규모의 개발팀은 독립적으로 다른 팀 기획서를 보기엔 어렵다. 지금 신규개발본부에서는 언제든 다른 팀 기획서에 접근이 가능하다. 거리낌없이 다 보여준다.
사실 개방이라는 게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열려있는 것을 확인하고 영감을 얻고 발전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뭘 확인하고 영감을 얻었는지, 어떻게 발전했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사람에게 길이 막혔다는 게 문제인데 지금 넥슨에서는 모든 게 열려있다.
그걸 나타내는 게 또 교류다. 지금 넥슨 안에서는 디렉터들끼리 굉장히 많은 생각과 정보가 교류되고 있다. 매주 모이는 모임이 있으며, 디렉터들은 2주에 한 번 씩 모인다. 모여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다. 격주 단위 모임이지만, 요즘은 화상회의가 어색하지 않게 됐으니 수십 명이 모이는 것도 어렵지 않다.
협력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는 된 거 같다. 넥슨의 장점은 ‘하고 싶은 걸 하는 문화’에 있다. 항상 어떤 이슈가 있을 때, 전력을 집중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울 때가 있었다. 이제는 회사랑 개인이 같이 윈-윈하는 형태다.
어떨 때는 회사 차원에서 전력 집중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개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적절한 수준의 조율이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힘이 모아져야 하는 조직들은 모아지고, 적은 인원이 도전하는 프로젝트는 손 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는 형태로 개발하고 있다.
끝으로 예전엔 넥슨에 개발을 지원하는 공통 조직이 없었는데, 이제 서버 기술 지원 조직이 생겼다. 또 시장에 대한 인사이트를 주는 조직이 있어서 디렉터와 개발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각 프로젝트의 프로젝트 매니저(PM)들은 아이디어와 프로덕션, 제작 능력이 중요한데 PM들끼리 모인 조직을 만들어서 표준화된 형태의 테스트를 통해서 각각의 프로젝트들에게 정렬된 피드백을 주고 있다.
Q. 작년에 9개의 게임을 공개했는데 그중 <P2>와 <P3>에 대한 정보가 다른 타이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느낌이다. 이 자리를 빌어 두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다.
A. <P2>는 탑뷰 대전 장르, 밀리 어택으로 볼 수 있다. 4:4, 4:5 이런 식으로. <철권>처럼 순간적인 이펙트가 빵 터지는 게임이다. 혹자들은 템포가 빠른 AOS라고 이야기하는데, 피지컬을 상당히 많이 요구하는 게임이다. 캐릭터들이 근접전을 하면서 화려하고 빠르게 싸우는 게임이다.
<P3>는 방향성이 바뀌었다. 팀 멤버를 유지한 상태에서 한 차례 피보팅(Pivoting)을 했다. 코드네임은 <P7>로 바뀌었다.
Q. 그러면 P4, P5, P6도 있었던 건가?
A. 있었다. 해보다가 방향성을 바꾸었다. 이전 프로젝트들은 그것대로 아카이빙이 되고 있다. <P5> 때는 무슨 시도가 있었고, 왜 피봇되었는지 등등이 모두 기록됐다.
<P7>에서 우리가 맨 처음 구상했던 것은 PvP와 PvE가 섞여있는 게임이다. 이 형태가 분명히 다음 시대의 큰 조류로 자리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령 <펍지>가 이전에 있었던 생존 게임들의 모습에서 큰 결과물을 가져왔다면, 우리는 파밍과 탈출에서 착안했다.
특히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가 주는 게임성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똑같은 걸 만들겠다는 건 아니고, 파밍을 기반으로 PvE를 하지만, 언제든지 다른 플레이어와 경쟁할 수 있고 PvP를 통해서 모았던 자원을 떨어뜨리고 뺏을 수 있는 긴장감이 재밌다. 그 긴장감 속에서 계속 파밍이 이어지고, 메타가 만들어지는 플레이 형태를 대중화시켜보고 싶다.
Q. 얼마전 인플루언서를 대상으로 <페이스플레이>의 테스트를 진행했다. <페이스플레이>는 어떤 프로젝트라고 부를 수 있을까?
A. <페이스플레이>는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 한 판 이상의 재미를 확장시키는 방향을 구상하고 있다. 내가 <큐플레이>의 개발팀장으로 있을 때도 그랬지만, 결국 콘텐츠 때려박기로는 답이 없다. 플랫폼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니까 <페이스플레이>를 ‘인싸들의 놀이터’로 만들고 싶다.
프로가 아니더라도, 친구들끼리 영상 기반 SNS에서 뭔가 예능스러운 장면을 연출하도록 만들고 싶다. <페이스플레이> 안에서 친구들끼리 예능 프로그램을 찍는 거다. 16년 전 <큐플레이>에서도 마냥 새로운 콘텐츠를 찍어내서 버티려고 했지만, 분명 한계가 있었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영상을 찍고 나만의 콘텐츠를 제작해서 배포하며 그 모습을 즐기는 시대다.
그 모습을 고도화한 플랫폼, 생태계를 구상하고 있다. 그래서 그 반응을 보려고 인플루언서를 대상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 게임이 ‘인싸들의 놀이터’가 되려면 무엇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 점검하려 했다. 기획이 구체화될수록 훨씬 고도화되고 재밌어질 거다.
Q. (페이스플레이와 관련해) 인플루언서로부터 어떤 피드백을 받았나?
A. 그분들이 우리 의도를 아는 거 같았다. 우리가 <페이스플레이>에 단계마다 재밌게 놀 수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놨다.
(인플루언서들이) 한두 판 해보더니 어떤 타이밍에 사람들을 웃길 수 있겠는지 딱 캐치하더라. 예능을 보면 시놉시스와 대본은 있지만, 결국 나와서 웃기는 것은 제작진의 의도를 파악한 출연진 아닌가? 테스트 이후 그분들과 인터뷰를 하며 개선점에 대한 의견을 많이 받았다. ‘이건 좀 키웠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그래서 <페이스플레이> 테스트를 통해서 우리 의도가 통하는 걸 느꼈다. 이 게임을 10판, 20판 즐기고 싶다는 여지가 숨어있다는 의도를 캐치했다. 게임의 승패를 떠나서 ‘웃기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할 수 있게 되는 거다. 그런 의도가 발전해 나가면 10판, 20판이 될 수 있다.
Q. 인플루언서나 웃기지, 기자 같은 일반인이 하면 재미가 있을까? 부끄러워서 질색인 사람도 있을 거다.
A. 필터링 기능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웹툰 같기도 하고 연예인 같기도 한 필터들을 씌울 수 있다. 완전히 얼굴을 내놓고 게임하기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 나를 닮은 아바타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내부 팀이 필터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언급한 ‘부끄러움’ 측면에서 시스템이 예능 MC나 PD처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연결시켜줘야 한다. 시스템이 계속 분위기를 업 시키면서 사회자 역할을 하는 거다. CG가 나오고, 클로즈 업이 되고, 음악 효과가 나오는 분위기. 우리끼리 조용히 게임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 레크레이션 강사가 되어서 분위기를 업시켜주는 거다.
아까 <페이스플레이>를 ‘인싸들의 놀이터’라고 이야기했는데, 모든 사람이 ‘인싸’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재밌고 싶다” 또는 “이번 판을 레전드로 만들고 싶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다. 이 사람은 게임을 잘 하는 것보다 좌중을 웃기는 게 더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마음껏 활약할 구조를 만들고 있다.
그 사람들이 대단한 활력을 보여주면, <페이스플레이> 안에서 스타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발굴되고, 유명해지면, ‘나도 한 번 재밌어지고 싶다’는 욕구가 나올 거다. 매 판 우리가 바라는 사람들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분위기를 잘 깔아주면 그것만으로도 재밌다. 그래서 <페이스플레이>는 단순히 얼굴 보면서 하는 마피아게임이 아니다.
Q. 작년 “코로나19가 끝나도 메타버스가 잘 될 거냐” 물은 적 있다. 신규개발본부는 방금까지 이야기한 <페이스플레이>와 <MOD>로 이 시장에 노크를 할 계획으로 안다. 그때 답변으로 “코로나19 이전엔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새로이 주목을 받는 화상통화”의 예를 들었는데, 대표적인 솔루션 <줌>의 주가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복귀 중이다. <클럽하우스>를 쓰는 사람도 예전보다 줄었다. 아직도 메타버스의 시장 가능성을 긍정하는 편인가?
A. 메타버스의 정의가 워낙 넓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메타버스의 형태가 앞으로도 잘 갈지 모르겠다. 우리가 <페이스플레이>나 <MOD>를 하겠다고 말씀드리는 건, 메타버스라는 유행에 단순히 편승하고 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MOD>의 경우, 전문가가 만든 게 최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 자명해졌다. UGC(User Generated Contents)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제는 어느 누구도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그때 ‘넥슨에서 누구나 콘텐츠를 잘 만들 만한 IP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메이플스토리>라고 본다. 100명의 개발자가 꾸역꾸역 만드는 것보다 만 명, 십만 명의 유저를 동참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서비스가 흥한다. UGC 차원에서 누구나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도록 만든 게 <MOD>다.
판데믹이 가라앉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무조건 떨어진 상태에서만 만나지는 않을 거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경유하면서, 우리의 가상세계에 대한 경험의 임계점을 넘어섰다. 이제 더는 화상통화가 어색하지 않다. 앞으로도 ‘줌’이나 특정 가상세계에서만 떠들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어디서 모이자고 했을 때 <페이스플레이> 같은 곳에서 만나서 시간을 보낼 만큼은 됐다. 하나의 생태계가 된다면, 왁자지껄 노는 게 오래 갈 수 있다.
Q. 메타버스가 유행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업계에서는 게임의 정의를 새롭게 하거나, 게임을 넘어서겠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오곤 하다.
A. 사실 메타버스라는 걸 너무 의식하면서 ‘그 큰 유행 속에서 무엇을 할까’ 하는 편을 조금 자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해왔던 게 이미 메타버스고, 앞으로도 할 게 메타버스다. 우리는 우리가 잘 하던 걸 계속 잘 하면 된다. 지나치게 키워드에 흔들릴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원래 넥슨(NEXON)이 ‘넥스트 제네레이션 온라인 서비스’의 약자다. 우리는 그간 온라인 세상에서 사람들끼리 노는 경험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온라인과 연결에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그게 우리의 강점이었다. 그러니까 세상의 큰 흐름이 바뀔 때, 그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기술이 만들어졌을 때, 우리는 거기에 맞는 놀이를 제공해왔다. 그게 넥슨의 DNA다.
지금 신규개발본부에서는 MMORPG도 만들고 대전 게임도 만들고 <페이스플레이> 같은 것들도 만들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확장할 것이다. 앞서 말한 DNA가 역사와 문화로 녹아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구상하고 이야기할 때 빠르게 공감대가 이루어진다. 무시 못할 넥슨의 강점이다. 앞으로 게임의 정의나 행태가 넓어진다면, 그것대로 넥슨에게 강점이 있지 않을까?
Q. 넥슨은 그런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나?
A. 분명 있다. 그간 그 기술들이 너무 파편화되어 문제였다. 공유되고 축적되어야 고도화가 이루어질 텐데, 그간 그 노하우가 잘 공유되지 않았다.
물론 넥슨이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는 회사’로는 인식되었지, ‘압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실제로 기술력이 특정 개발사에 비해서 엄청나게 뛰어나고도 할 순 없다. 그 점을 감안해도 넥슨은 대단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그 기술들을 흩어지고 사라지지 않게 하도록 노력하는 게 내 일이다.
특히 요즘 서버 쪽 노하우가 굉장히 많이 쌓이고 있다. 최근에는 클라이언트와 비주얼 측면에서도 기술력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우리 기술이 어떤지, 신작들을 통해서 시장과 유저들께 보여드리겠다.
Q. 신규개발본부는 NFT, P2E에 점프-인할 계획이 없나? 요즘 모두가 언급하는 분위기인데.
A. 회사 차원에서 연구와 공부는 하고 있다. 블록체인이 주는 기술적 진보는 분명하다. 그것이 유저분들께 안전이라는 키워드로 다가가 실질적인 유용성을 드릴 수 있다. 다만 중요하게 보고 있는 지점은 블록체인이 주는 또다른 재미의 형태가 무엇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지금은 블록체인을 통해서 게임성이 확장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단계다. 아직까지 ‘뭘 하겠다’라고 의사결정을 하지는 않았다. 계속 주목하고 있다.
Q. 항간에 “판교의 개발자만큼 단기간에 연봉이 많이 오른 직업이 없다”는 말이 돈다. 진위 여부를 떠나서, 개발자 모시기 경쟁이 치열한 것만은 사실로 알고 있다. 넥슨은 어떤가?
A. (한숨을 쉬며) 진짜 어렵다.
노력하고 있고, 꾸준히 모시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돈, 대우,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가슴 뛰는 회사가 되어야 개발자를 모실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다양한 시도들을 훌륭한 결과물로 보여드리는 게 중요하다. 말 잔치가 아니라, 진짜 액션과 결과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 비전에 동참하는 분들이, 넥슨의 도전의식을 긍정하는 분들이 모일 거라 믿는다.
돈, 대우, 복지 문제를 포기하겠다는 건 당연 아니다. 지금의 넥슨은 굉장히 큰 회사이지만, 주도적인 역할을 꿈꾸는 분들, 뭔가 해보겠다는 분들께 기회를 드리고 있다. 누군가는 (개발자 모시기 경쟁이) ‘쩐의 전쟁’이라고도 그런다. 그렇지만 ‘이 회사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받아준다는데?’, ‘자유도가 있다는데?’ 라는 것들이 널리 알려지면, 그 매력을 느끼는 분들이 합류할 거다.
지금까지 씨앗을 뿌린 게 올여름 결실을 맺는다면, 채용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 않을까?
Q. 얼마전 네오플 직원의 정년퇴직 소식이 화제였다. 이제는 한국 게임 산업이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접어든 듯하다. 성숙기가 된 게임 산업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A. 산업이 성숙해질수록 아이디어만 가지고 돌파하기는 어렵다. 아이디어를 내겠다면, 완전히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짜야 할 거다.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업계가 성숙할수록 그것을 구현하는 능력과 역량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훌륭한 개발자를 많이 모셔기 위한 경쟁이 펼쳐지는 거고. 그 역량 싸움에서 어떻게 나오느냐가 중요한 거 같다. 좀 거칠게 말해서, 이제는 진짜 실력 싸움이다.
아까 이야기한 ‘파격적인 아이디어’에 관한 요구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게임의 정의를 새로 내리거나, 기존의 게임에서 얽매이지 않으려는 시도가 나오는 것 같다. 블록체인도 그렇고, 기술을 통해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만드려는 게 아니라 기존의 게임을 끌고 들어가, 그 게임성을 보존한 상태에서 몇 가지 요소만 연결시키려 하는 점은 아쉽게 다가온다. 그게 혁신적인 걸까 고민도 든다.
많은 회사들이 시도하고 있지만, 진정 시대가 원하는 게임의 혁신이 그 방향인가 고민이 있다. 그렇다고 내게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성숙된 산업일수록 역량이 중요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혁신을 하려면 과감해져야 한다. 우리 회사도 이제 30살이다. 규모도 그만큼 커지고 복잡해졌다. 조직의 보수화도 경계해야 한다.
Q. 한국 게임 신작 트레일러 댓글을 보면 기대보다 냉소가, 응원보다 돈 이야기가 나온다. 1년 전 이곳(판교 넥슨 사옥)에는 유저들이 보낸 트럭이 돌아다녔다. 유저와 게임사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A. 이 문제를 생각하면 정말 어렵다. 한두 가지 말, 몇 번의 액션으로는 통하지 않을 거다. 진정성 있는 시도가 쌓이고 쌓여야 유저들께 ‘쟤네 이야기는 들어볼 만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결국 재밌는 게임을 만드는 건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의 선후를 보면 좋겠다. 게임을 잘 만들어서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의도를 가지고 게임을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게임은 예술이기도 하고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이기도 하다. 여기에 겸허한 자세를 가지고 유저를 존중하는 의도를 담으면 분명히 달라질 것이라 본다. 그냥 ‘재밌는 게임 만들겠습니다’가 아니라 어떤 의도를 가지고 운영하느냐, 업데이트의 전략과 계획은 어떻게 할 거냐, 그러니까 어떻게 끌고 나가느냐에 따라서 천차만별이 될 거다.
의도와 그에 맞는 기조와 계획이 완비되어야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대한민국 게임 업계도 그 부분에 대해서 반성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 넥슨은 유저분들이 ‘쟤네는 뭘 하긴 하더라’라고 보고 계시다. 이제 그 ‘무엇’을 하다 마는 게 아니라, 기대치에 알맞게 나올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다양성과 도전의식이 넥슨의 역사이자 문화라고 했을 때, 이제 그 결과물을 유저와 시장에게 내놓을 시간이다.
그래서 ‘얘네는 괜찮은 게 나오네’ 평가를 받고 싶다.
Q. 일각에서는 근로시간이 짧아서 게임 만들기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혁파해야 할 게임 규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A. 냉정하게 언감생심 규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될까 생각이 든다.
과연 규제 때문에 뭘 못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우리의 행보를 쭉 돌아보면, 정말 규제가 우리의 발전을 막았나 싶다. K-컬쳐, K-컬쳐 이야기를 하고, 많은 부분이 인정을 받았고, 한국 게임도 몇몇 게임은 인정을 받아왔지만, (게임 분야는) 상대적으로 덜하지 않은가?
게임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계속 하다 보면 되는 것 아닌가 싶다. 유저분들도 그렇게 (규제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실 거다.
Q. 올해도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가 열린다. 간략히 소개를 청한다.
A. 6월 8일부터 10일까지 진행한다. 2월 말까지 발표자를 받았다. 올해도 작년처럼 온라인 방식으로 개최되며 블록체인 등 여러 카테고리를 확장할 계획이다. 회사 안팎에 발표할 분들이 많이 계시다.
Q.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이제부터는 보여드리는 데 집중하려 한다. 그 다음 비전, 계획을 빨리 세팅되어야 한다. 시간이 되면 유저와 미디어에게 알릴 수 있을 것 같다. ‘넥슨이 뭔가는 하잖아’ 보다는 ‘넥슨이 제대로 하더라’는 말을 듣고 싶다.
바로 지금이 넥슨이라는 기업의 평판을 바꿀 수 있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엄중한 시기다. 그렇게 기대가 쌓이면, 더 좋은 분들을 모시고, 시장의 기대가 올라가고, 더 좋은 게임이 나오는, 그런 선순환을 바라고 있다.
디스이즈게임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십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