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리추얼 10월 회고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공부가 진짜 공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들이 교실 밖에서 그동안 쌓은 배움을 동원해 새로운 모색을 하면서 자기 삶까지 변화시키는 그 맛을 보았구나 싶어요. 삶에 기회를 주는 수업입니다.
– <최재천의 공부> 최재천, 안희경
책 <최재천의 공부>를 읽다가 공부의 본질을 깨달았다. 공부는 내 삶에 기회를 주는 것이구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10년 넘게 공부했던 이유는 명문대 학생이라고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더 좋은 기회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취업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더 많이 주는 회사에 가고 싶어서 노력했던 게 아니라 더 성장할 기회를 줄 수 있는 회사에 가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돈은 많을수록 좋다.
공부 리추얼 메이커로 공부 모임을 리딩하고 있다. 매달 새로운 메이트와의 미팅에서 나를 위한 진짜 공부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7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정말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정해진 공부 경로가 끝나면 공부가 필요 없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공부길이 열리는 것이다. 단, 그 길은 내가 스스로 찾고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제 반듯하게 포장된 도로는 끝났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장비를 갖추고 가야 할지 모두 내가 선택해야 한다.
앞으로 내 삶에 어떤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는지, 그 기회로 다가가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나에게 달려있다. 그 길을 찾아가기 위해 공부를 한다.
언젠가 친구가 나에게 “너는 싸울 때조차 사람이랑 해결하려 들지 않고 책을 펴는 애잖아.”라고 했던 말을 오래 곱씹었다. 그 말이 왜 그리 잊히지 않을까. 그때는 스스로 세상에 제대로 맞설 힘이 없어서 책으로 숨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책을 펼쳐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숨거나 주저앉는 것이 아니었다. 책을 펼쳐 든 마음속에는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간절함이 있었다.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 아래에는 나에게 또 한 번 기회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이번 달 공부 메이트가 올린 독서 기록을 보다가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태도인지 알게 되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휴식이 필요해서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하겠다는 결심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를 키우겠다는 마음. 내 안에 갇혀 있는 나를 세상 밖으로 꺼내고 세상과 연결시키겠다는 마음이다.
나도 모르게 껑충 성장할 때가 있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굳이 해야 할 때였다. 더 열심히 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쏟을 때가 있다. 과정에 깊이 몰입하며 ‘하는 것’ 자체를 즐길 때가 그렇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굳이 하는 행위는 자기 주도적인 선택이다.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할 때는 결과를 바라보며 애쓰지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굳이 할 때는 과정에 온전히 몰입하게 된다.
나를 키우려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그다음에는 지금 있는 곳을 출발점으로 삼아 어디로 향해 가야 할지 정해야 한다. 공부는 출발점을 찾고 나침반을 맞추는 작업이다.
공부 메이트가 공부를 어렵게 느끼지 않고 매일 적은 노력으로 꾸준히 하는 습관을 만들 수 있도록 <공부 기록 템플릿>을 만들었다.
기록이 쉬워지는 공부 템플릿
▪︎ 공부한 날:
▪︎ 공부 시간:
▪︎ 지금 감정: [뿌듯 / 산뜻 / 피곤 / 호기심 / 기대 / 아쉬움] 중에서 [ ]
▪︎ 공부 도구: [책 / 강의 / 글쓰기 / 생각 / 대화] 중에서 [ ]
▪︎ 공부한 것:
▪︎ 새로 알게 된 것이 있나요?:
▪︎ 공부를 해낸 나에게 한 마디:
▪︎ 내일 하고 싶은 공부:
공부를 해낸 나에게 한 마디에 남긴 메이트의 기록 일부를 모아봤다. 공부는 새로운 지식을 이해하고 외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상 속에서 나를 마주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공부는 나를 알아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를 발견하고 나에게 필요한 경험을 스스로 설계해보는 것이 어른이 되어 우리가 해야 할 진짜 공부다.
오늘도 공부를 해낸 나에게 한 마디
– 나를 공부하는 시간, 이제는 자주 가져보면 좋겠다.
– 강의 후 생각 안 할 수도 있는데 노력해서 회고해본 것을 격려하고 싶다.
–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회와 경제 이슈에 관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하자!
– 일상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니, 편안하게 받아들이자.
– 새로운 곳에서 책을 읽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에 기억에 남을 만한 밤!
– 책을 통해 좋은 인생공부를 하게 되었다. 잘했다!
– 나는 어떤 사람으로 일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 가벼운 책이라도 읽고 머릿속에 자국을 남기려 한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 너무 피곤해서 공부 스킵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해낸 나 잘했군 잘했어!!
– 피곤했었는데 잊지 않고 공부해서 수고했다!
– 잠을 미루고 마음공부를 통해 내 감정을 들여다보려 한 나를 정말 칭찬해
또 다른 메이트의 공부 기록에서 <공부의 적령기>에 대한 문장을 읽었다.
공부의 적령기는 젊은 시절이 아니라 내가 나의 이유로 공부하기로 결심한 시기다.
– <나를 살리는 말들> 이서원
학생 때 어른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 중에 “공부에도 다 때가 있으니 지금 공부해야 한다.”가 있었다. 그 말을 한 어른들은 공부가 아닌 일을 했다. 자연스럽게 학생 때 열심히 공부를 해서 배운 것으로 어른이 되어 써먹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보니 학생 때 배운 공부는 삶을 배우는 공부와 달랐다.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또다시 공부를 해야 했다. 사회만 빠르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내 상황과 마음도 시시각각 변한다. 변하는 나를 매 순간 알아차리고 내가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을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기로 결심하는 마음은 나에게 기회를 주는 마음이다. 나에게 기회를 주는 마음은 나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나이가 들면서 젊을 때보다 더 자주 나를 잃는다. 지금은 아무도 ‘이걸 공부하면 저 길에 들어설 수 있다.’라고 알려주지 않으니 아차 하면 막다른 길에 들어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공부는 어른이 되어 더 필요한 것이다.
밑미 팀과 처음 공부 리추얼을 기획할 때 걱정이 많았다. 밑미에서 기존에 운영하던 리추얼은 명상, 달리기, 요가, 글쓰기, 독서와 같이 <나를 보살피고 쉬어가는> 활동이 많았다. 공부는 훨씬 부담이 느껴지는 단어였다. 메이트 분들이 공부에 공감을 해주실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우려와 달리 오픈과 함께 빠르게 정원 마감이 되었고 매달 돈을 내고 공부하기 위해 모여드는 메이트를 보면서 공부에 우리가 모르던 다양한 감정과 동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리추얼을 시작하고 5개월 즈음 지났을 때, <공부>의 의미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공부를 하자고 제안해야 할까, 어떻게 공부하자고 말해야 할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스스로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그 마음을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고 중간중간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메이트는 알아서 자신의 공부 길을 찾아간다.
제가 여러분 곁에 있으니 언제든 공부가 필요할 때 오세요.
이 한마디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전부다. 매달 그 달에 함께 공부하며 배운 것들을 이렇게 기록하고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스스로를 살리고 키워낼 씨앗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존재니까.
단단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