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무기들
마케터 10년의 변천사로 담는 마케팅의 맛
6년 가까이 함께 했던 디즈니를 졸업했다.
그리고 선택한 다음 여정은 어딜까?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을까?
일 하고 있는 업계를 바꾸고 싶은 사람, 이제 막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는 분, 마케터를 꿈꾸거나 시작하는 이들에게 공감될 저의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첫 커리어의 회사는 영화 회사였다.
100명 남짓한 작은 회사였지만, 대한민국의 영화산업을 선도하는 곳이었다.
시작은 인사팀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후에 마케터로 직무를 옮기고 싶은 인사팀 신입사원이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인사팀 직무밖에 뽑지 않았기에 나름 차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하루아침에 3천명이 넘는 회사로 합쳐지게 되었다.
CJ ENM이라는 회사는 (그 당시는 CJ E&M) 그렇게 생겨났고, 영화 미디어 음악 게임 산업을 아우르는 커다란 회사의 일원이 되었다.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힘을 키우다가 3년 차 늦깎이로 마케터로 커리어 직무전환을 할 수 있었다. tvN이라는 이제 막 자라나는 채널의 일원이 되었다. 원했던 커리어로 방향을 맞출 수 있었던 순간이었지만, 이제 막 마케터라는 이름을 달았기에 신입보다 실무를 모르는 채 빠르게 일을 배워가야 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드라마와 예능, 모바일앱, 신규 채널까지 담당하며 ‘콘텐츠 마케터’의 역할을 수행해 나갔다.
땜빵 전문 마케터로 활약(?)했던 늦깎이 마케터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를 6년 6개월, 첫 회사에서 졸업의 순간을 맞이한다.
속했던 채널 내에서 여러 부서를 경험한 후였고, 다음 커리어는 ‘외국계’ 회사의 커리어를 그렸다. 그리고 채널 마케팅이라는 다소 이색적인 커리어를 살려 디즈니의 키즈 채널을 담당하는 마케터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2049를 메인 타깃으로 했다면 이곳에서는 3세에서 12세까지 아우르는 ‘키즈 마케팅’을 해야 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IP 소비재 사업을 확장하는 시기에 맞춰 소비재 사업부로 합류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온/오프라인에 걸쳐 마블부터, 미키, 픽사, 프린세스, 푸까지 PM (Project Manager)으로 다양한 브랜드 캠페인을 진행하며 디즈니의 다양한 브랜드와 상품으로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접점을 만들어갔다. 그러기를 또다시 6년이 가까워지는 시기, 졸업을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푸의 명언에 착안한 마지막 말을 남기고 디즈니를 떠났다. 다음 여정을 향해.
“A day without Disney is like a pot without a single drop of honey left inside.
디즈니가 없는 하루 하루는 비어있는 꿀단지 같을 거예요.”
그리고 GFFG company에서 마케팅 총괄 Director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곳은 노티드, 다운타우너 등 9개의 브랜드로 세상을 맛있게 하는 FOOD&LIFESTYLE 크리에이티브 그룹으로, CJ ENM과 디즈니에 이어 제3세계에서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로 먼저 ‘산업’이 바뀌었고, ‘포지션’이 바뀌었다. 콘텐츠나 캐릭터를 넘어 ‘푸드 인더스트리’를 마주하게 되었고, 프로젝트 매니저를 넘어 ‘리더 레벨’을 부여받게 되었다. 합류하자마자 새로운 업, 새로운 회사, 새로운 사람을 하나씩 담고 이야기하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바삐 지나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새로운 시작을 맞아 지난 10년이 넘는 마케터 여정의 변천사를 되새겨보았다.
처음 영화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에 있을 땐 하루 종일 영화 이야기를 했다.
방송 채널 tvN에 있을 땐 하루 종일 TV 콘텐츠 이야기를 나눴다.
캐릭터 맛집 디즈니에 있을 땐 하루 종일 캐릭터와 관련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미디어 엔터 사업의 둘레를 벗고 먹는 푸드 라이프스타일 업을 하는 GFFG에서는 하루 종일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푸드에 진심인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이렇게 여러 산업군, 여러 회사를 아울러서 지나오며 알게 된 마케터라는 직무의 맛은 뭘까? 시간이 지나 어떤 맛으로 만들어가야 할까?
이전에 미디어에서 마주하는 요소가 ‘재미(콘텐츠)’와 ‘인물(캐릭터)’이었다면, 이제는 ‘맛’과 ‘경험’이다. 이곳에서는 이를 묶어 Hospitality(환대, 특별하고 기억에 남을 경험)라고 부른다. 마케팅이라는 공통된 속성을 가지고 이렇게 새로운 세계와 미션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 마케터의 묘미이다. 어느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경험을 쌓는 것이 추대받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변화가 빠르고 산업의 흥망성쇠 주기가 더 좁혀지는 이 시대는 여러 신세계를 만나 쌓는 것이 커리어에 있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산업의 변화를 거슬러 올라가 이전에 다음에는 캐릭터를 해봐야지, 다음으론 푸드를 해봐야지 하고 마음을 구체적으로 먹었던 적은 없었다. 한 때 진행했던 키즈 마케팅을 하게 될지 몰랐고, 모바일앱 프로젝트를 맡게 될지도 몰랐다. 어떤 여정을 만날지 모르는 모험감 또한 마케팅이라는 직무의 매력이다. 이제껏 해온 분야의 경험들 하나하나가 쌓여 지금의 나 자신이 되었고, 대부분의 마케터 또한 예측할 수 없는 길을 가며 이들이 모여 커리어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회사를 옮기기 전, 어느 친한 대표님께서 말씀 주셨다. 나는 미디어 엔터를 떠난 게 아니라 새로운 세계와 기존의 세계를 엮는 일을 해야 한다고. 그게 내가 가진 무기라고. 그리고 또 다른 분은 이런 말을 해주셨다. 새로운 곳에 가서 다시 새롭게 배워야 한다고. 모두 멋진 말이다. 새 회사의 브랜드에 미디어의 컬러를 입혀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스스로 새기는 미션이다. 그동안 쌓아 온 무기로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갈 생각에 떨림과 기대가 가득하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자면, 마케터의 운명과 속성은 ‘성장’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 속해있는 산업의 성장, 담고 있는 회사의 성장이 함께해야 마케터라는 개인의 커리어도 역량도 성장할 수 있다. 졸업을 하고, 부서를 옮기는 과정에서 자의와 타의가 뒤섞여 있기에 모든 순간이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운 좋게도 한국 영화 부흥기, 케이블 채널의 성장기, 외화와 캐릭터 비즈니스의 눈부신 성장 시기에 마케터로 함께할 수 있었고, 개인의 브랜드에도 큰 자산이 될 수 있었다. 이번에 제3세계로 오게 된 것도, 다음 시대 빛날 주역이 먹는 라이프스타일 산업이라는 개인적인 확신으로부터 함께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이전 회사의 6년, 다음 회사의 6년을 ‘졸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끝을 의미하는 ‘퇴사’나 ‘퇴직’의 의미를 넘어 다음 스텝으로 가는 의미가 더 컸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회사를 떠난다’가 아닌 ‘회사를 졸업한다’라는 표현으로 다음 커리어를 잇는 그림을 그려가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마치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는 성장 여정과 같이. 나 역시도 이전에 졸업한 곳들의 소중한 경험을 담아 다음의 커리어를 매력적으로 만들어볼 예정이다.
요약하면, 개인의 역량 성장은 속한 산업과 회사의 성장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회사를 떠나는 게 아닌 졸업의 의미를 새기고 다음 입학을 맞이하여 이를 연결 지으며 커리어를 그려가야 한다는 것. 이는 마케터뿐 아니라, 디자이너 기획 커머스 모든 직무에 해당될 수도 있다. 그리고 30대를 넘어 훗날 40대 나의 브랜드로 온전한 비즈니스를 만들기까지 계속해서 맛있는 인사이트와 커리어 여정을 담아 세상에 전해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는 마케터의 맛을 전할 참이다.
마케터초인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