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1위 화장품 기업이 음식을 파는 이유
코로나19 이후 2년간 발길이 뜸했던 오프라인 시장이 각광 받고 있다. 엔데믹 전환 이후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고, 브랜드는 소비자와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발 빠르게 팝업스토어와 매장을 오픈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단순히 소비자와 만나기 위해 오프라인을 준비하고 이를 옴니채널로 연결하기보다는 근본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게 어떨까.
모든 비즈니스가 사람을 위한 거라곤 하지만, 특히 뷰티는 사람의 정체성과 자존감까지 도움을 주는 비즈니스다. 그렇기에 다른 어떤 산업보다 인문학적인 관점이 가장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역사적 특성상 오래된 럭셔리 브랜드를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해외 사례를 많이 참고하고 있는데, 유독 눈에 들어온 게 오늘 소개할 ‘시세이도 팔러’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일본 1위의 화장품 기업인 시세이도의 자회사로, 시세이도는 오래 전부터 비즈니스 확장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도쿄 긴자에 위치한 시세이도 팔러는 1902년에 창업한 전통 서양 과자점이다. 시세이도 약국 내에 개설된 ‘시세이도 소다 파운틴’이 기원으로, 시세이도 창업자인 후쿠하라 아리노부가 미국의 드럭 스토어를 모방해 만든 것이다. 당시만 해도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으나 아이스크림이나 소다수를 제공해 인기를 얻었고, 컵과 빨대 등 기본적인 소품까지도 미국에 있는 것을 그대로 가져오며 콘셉트에 충실했다.
시세이도의 아이덴티티는 단순한 화장품을 넘어 진정한 라이프스타일을 표방한다. 매번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진짜 원조 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제품에 국한되지 않고 음식을 통해 아름다움의 영역을 확장한 시세이도. 그 성공 요인을 분석해봤다.
시세이도 팔러의 레스토랑에 가보면 상류층들이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어뒀다. 그래서 기존가격보다 비싼 가격에 음식을 즐길 수 있고, 이는 서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살롱 같은 느낌으로 화장품을 넘어 전반적인 커뮤니티까지 케어하는 셈이다. 지하에는 시세이도가 만든 뮤지엄이 자리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으로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위치 역시 시세이도 본사 근처에 자리해 화장품으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대부분의 팝업스토어가 좀 더 직관적이고 브랜드 홍보 위주로 돌아간다면, 시세이도는 체험을 가장 우선시하며 자연스럽게 브랜드 이미지가 스며들게 디자인한 점이 인상 깊다.
시세이도가 맨 처음 레스토랑 사업에 진출했을 때는 화장품에 대한 접근보다도 서양의 문화를 일본으로 가지고 온다는 모토가 있어 자연스러운 확장이 가능했다. 무작정 확장하지 않은 것도 중요 포인트다. 1928년이 돼서야 시세이도 아이스크림점으로 개칭하고 본격적으로 레스토랑 분야를 개업했기 때문이다. 총 주방장으로 다카하시 에이노를 지원해 간판 메뉴인 미트 크로켓을 고안해낸 것 역시 전문성을 신경 썼음을 알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도 오설록이라는 티 브랜드가 있다. 시세이도와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오설록은 오설록 이미지 하나에 국한돼 제주까지만 연결돼있다. 화장품으로 연결되는 부분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반면에 시세이도 팔러는 시세이도의 여러 계열사 브랜드를 총망라해 아이덴티티를 새기고 있고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유연성 또한 가지고 있다고 본다.
현재 K뷰티가 과도기에 온 건 사실이지만, 인간의 본질에 집중한다면 제2의 성수기는 무조건 온다. 우리나라가 해외와 가장 다른 부분은 장소 즉 로컬에 대한 부분인데, 서울시가 뷰스컴퍼니와 함께 5년간 3000억 규모의 서울 뷰티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만큼 이 공간에 대한 부분을 누가 만들고 연결시키느냐에 따라 브랜드의 승패가 좌우될 것이라 확신한다.
박진호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