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에피소드에서 이케아의 브랜드 메시지와 철학, 제품 개발에 대해 다뤘다. 이케아는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좋은 생활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이케아는 많은 사람의 손에 좋은 제품이 건네 지기 위해 데모크래틱 디자인이라는 도구를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한다.
데모크래틱 디자인은 ‘저렴한 가격, 디자인, 기능, 품질, 지속가능성’ 다섯 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많은 사람이 쉽게 구입하기 위한 저렴한 가격, 보편적이며 직관적인 형태를 추구하는 디자인, 삶을 쾌적하게 만들 수 있는 기능,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품질, 사회의 변화에 맞춰 과제를 해결해나가는 지속가능성. 이 5가지 요소가 모두 충족된 제품만이 이케아의 제품이 될 수 있다.
이케아는 명확한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고도화된 구조를 가진 브랜드이다.
삶을 이해하는 이케아의 단순한 방법
이케아는 데모크래틱 디자인의 5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선 데이터가 필요했다. 또 많은 사람들의 삶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을 철저하게 공부해야 했다. 더 좋은 생활의 기준은 무엇일까?
난 미니멀 라이프를 살기 위해 노력 중에 있지만 누군가에겐 내 미니멀한 생활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을 수 있다. 실제로 내 많은 주변 친구들이 ‘어우 그렇게는 못 살겠는데?’, ‘그거 미니멀 라이프 맞아?’ 하며 잦은 탄식을 하고,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이처럼 좋은 생활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생활을 제공하려는 이케아에겐 큰 걸림돌이 된다. 이케아는 다양한 삶을 분석함과 동시에 다양함 속에서 일련의 공통점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사람들은 생각보다 좋은 생활에 대한 어느 정도 합의된 몇 가지 방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케아는 매년 홈 비짓(Home Visit)이라고 불리는 조사를 통해 제품을 개발하는 데 있어 바탕이 되는 라이프스타일 데이터를 수집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사람들에게 좋은 생활을 선사하기 위해선 그 사람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홈 비짓은 말 그대로 가정 방문 조사이며 한 해에 약 1000가구의 집을 직접 방문하는 대규모의 조사이다. 이 조사는 스태프 전원이 참가하며, 소비자의 실제 생활을 관찰하여 문제점과 해결책을 도출해낸다. 집에서 무엇을 하는지,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집과 관련해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 등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물어보며 집 안에서 이뤄지는 생활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케아에게 서로 다른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영감의 원천이다. 이케아는 홈 비짓을 바탕으로 매년 라이프 앳 홈 리포트라는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에 대한 보고서를 발행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2010년대 초반 이케아는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넓은 생활공간을 추구하지 않고 간소하게 살아가려는 경향을 발견하였다. 이에 이케아는 아시아와 도시권의 좁은 주택에서 쾌적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공간 활용 문제를 해결하는 초다용도, 공간을 절약할 수 있는 가구를 출시하였다.
또 2021년 라이프 앳 홈 리포트에서는 펜데믹 상황으로 인해 재택근무가 장기적으로 계속될 것을 예측하여, 사람들이 재택근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가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들은 자세를 자주 바꿀 수 있는 높이 조절 책상을 개발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제안하였다.
매년 행해지는 홈 비짓은 이케아가 끊임없이 소비자들의 생활을 개선하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정량적인 설문조사가 아니라 정성적인 조사를 진행한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 홈 비짓은 제품 개발, 카탈로그, 오프라인 매장 등 이케아의 모든 비즈니스에 근거로 사용된다.
홈 비짓으로 분석된 라이프스타일 데이터들은 이케아 제품 개발의 중심지인 데모크래틱 디자인 센터로 보내져 소비자들의 일상을 더욱 편하게 만드는 상품을 개발하는 데 쓰인다. 이 데모크래틱 디자인 센터에도 다양한 삶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이 숨어있다.
이들은 제품을 개발할 때에도 다양한 내부구성원의 시각을 빌린다. 데모크래틱 디자인 센터에서는 상품 개발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어 놓아 개발과 진척 상황을 알 수 있다. 개발 중인 제품의 원형을 한 곳에 모은 공간이 있으며, 임의로 만들어 놓은 쇼룸도 존재한다.
누구나 시제품을 검증하고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개방적인 제품 개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사람마다 떠올리는 좋은 삶은 다 다르기에, 다양한 피드백이 반영될수록 소비자 삶에 대한 이해가 높을 수밖에 없다.
고객을 위하는 이케아의 노력
며칠 전 밴드를 갑작스럽게 결성하게 되었다. 제대로 연습하고자 드럼 패드를 알아보던 와중에, 다른 드럼 패드보다 다섯 배나 더 싼 드럼 패드를 발견했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 제품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 시선을 사로잡았음에도 바로 구매하지 않고 제품 설명부터 리뷰까지 꼼꼼하게 정독하였다.
소비자는 항상 낮은 가격에 판매되는 제품의 퀄리티를 의심한다. 그러나 저렴한 가격만큼 이케아 제품의 퀄리티가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오히려 브랜드값만 놓고 본다면 프리미엄 브랜드에 가깝다. 저렴한 제품을 판매하는 이케아도 같은 문제로 고생할 수 있었지만, 모든 접점에서 고객을 위하는 태도를 드러내며 불리한 인식을 완전히 없앴다고 생각한다.
납작한 박스 형태의 이케아 오프라인 매장을 다들 알 것이다. 이케아 매장 속엔 소비자들의 선택을 돕는 친절한 요소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우선 처음 오프라인 매장을 들어가자마자 쇼핑리스트를 작성할 수 있는 몽당연필과 가구의 크기를 잴 수 있는 줄자 그리고 매장 지도가 그려진 용지를 함께 제공한다. 단순할 수 있지만 이러한 친절 하나하나가 고객에게 크게 다가온다. 또 홈 비짓을 통해 수집한 지역별 라이프스타일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케아 제품이 사실성 있게 디피 되어 있는 쇼룸은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다.
실제로 데이터를 통해 일본 가정에서 쓰이기에는 컸던 이케아 가구를 발견했고 곧바로 사이즈를 줄인 일본용 가구를 제작했다. 그리고 이후 일본의 오프라인 매장의 쇼룸은 지역별 평균 집 크기와 가족 구성을 참고해 제작되었고, 그 지역의 문화와 생활, 취향 같은 요소가 반영되었다고 한다.
이케아 쇼룸의 핵심은 구체성과 사실성이다. 가구가 잘 보이도록 디피하는 것이 아니라 가구가 실제로 방과 잘 어우러지도록 디피하는 것에 공을 들인다. 실제 자신의 집에서 이케아 제품이 어떻게 쓰일 지에 대한 참고서가 되어주는 것이다.
좋은 브랜딩은 사실 디테일에서 결정 난다. 아무리 설득력 있는 전략과 멋진 로고가 준비되어도 웹사이트 속 오타, 무례한 점원 등과 같은 사소한 부분에서 소비자는 떠난다. 이케아는 위에서 말한 요소 이외에도 오프라인 매장 곳곳에서 고객을 위하는 마음을 드러내면서 고객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케아는 이제 오프라인 매장 외에도 자사 웹사이트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판매를 비롯해 새로운 판매루트를 개발하고 있다. 이케아는 새로운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도입하여 유통 채널을 다양화하고 있으며, 다양화하더라도 온라인 채널의 기반은 각 지역에 있는 매장을 비롯한 실제 점포라고 한다.
이들에게 온라인 채널은 단순히 유통 채널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변함에 따라 어떤 채널을 통해 소비자와 만나더라도 같은 수준의 체험을 제공하는 것에 중점을 맞추고 있다. 이케아는 온라인 채널을 고객을 위한 또 하나의 편리한 창구로 발전시키기 위해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사소한 디테일에 신경쓰고 있다.
이케아의 디테일은 이케아 카탈로그에서도 나타난다. 이케아 카탈로그는 매년 발행되는 간행물로, 이케아의 대표적인 내러티브 커뮤니케이션 중 하나이다. (현재 이케아 카탈로그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추세에 따라 폐간되고 디지털로 대체되었다.)
이케아 카탈로그는 이케아 제품이 포함된 룸 세트를 직접 제작해 만든 사진을 포함한다. 사진을 위한 룸 세트를 만들 때 이케아는 각기 다른 스토리를 담는다. 마치 사람이 실제로 사는 집을 엿보고 있는 듯한 현실감을 주기 위해 인물상까지 꼼꼼하게 설정하여 카탈로그를 만든다.
소비자는 세세하게 만들어진 가상 인물의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접할 수 있고, 이케아 제품으로 어떤 생활을 살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명확한 맥락과 상황을 담아낸 스토리 설정은 소비자에게 생활에 대한 영감을 준다. 이케아 카탈로그를 비롯해 웹사이트에서도 드러나는 사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케아의 내러티브 커뮤니케이션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소비자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다. 그렇기에 이케아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은 소비자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또 내러티브가 담긴 룸 세트와 제품 사진은 소비자가 더 쉽게 가구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케아의 직관적인 설명서도 마찬가지다. 텍스트를 걷어낸 이케아의 설명서는 소비자가 더 쉽게 가구를 조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표지에는 제품명과 함께 어떤 제품인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일러스트가 있으며, 조립 방법 또한 구체적이고 직관적인 일러스트로만 설명되어 있어 누구든 쉽게 조립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케아의 데모크래틱 디자인 항목들과 더불어 사소한 부분에서 쇼핑과 선택을 돕는 소비자 접점들은 이케아가 많은 사람이 이케아 가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케아는 자신의 색을 드러내기보다 소비자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 잘 어울린다. 그렇기에 이케아는 고객의 목소리에 경청한다. 위에서 말했던 데모크래틱 디자인 항목에 대해 독자적인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더 나아가 상품 개발에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케아는 포커스 그룹 방식으로 소비자가 직접 이케아 제품을 채점하는 방식을 구축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케아는 고객들이 더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먼저 손을 내민다.
이케아는 오프라인 매장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브랜드이다. 이케아에게 있어 오프라인 매장은 큰 의미를 가진다. 이케아의 타깃은 더 넓지만, 각 지역별 이케아 오프라인 매장의 타깃은 그 지역의 주민들이다. 이케아의 오프라인 매장은 지역을 기반에 둔다. 이케아는 매장 쇼룸에 있는 디스플레이를 각 나라, 지역의 사정에 맞게 현지화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이케아는 신규로 매장을 열 경우 토지를 구입해서라도 30년 이상 그 자리에서 영업을 계속한다는 방침이 있다. 그렇기에 이케아는 정기적으로 이벤트를 기획해 주민과의 유대를 돈독히 쌓는다. 이케아는 지역 주민과 공생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이케아 광명점 같은 경우 초반에 교통난이나 소음으로 인한 문제로 서로 갈등이 있었지만, 이후 광명시 ‘주민 건강 증진 센터’를 착공하고 지역아동센터에 업사이클 가구를 기부하는 등 이웃과 상생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오프라인 이케아 매장은 현재 우리나라 내에서 ‘몰세권’ 효과를 주는 역할이 두드러지고, 몇몇 논란에 대한 이케아의 아쉬운 대응에 지역 주민과의 상생과 더불어 갈등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이케아의 오프라인 매장은 큰 창고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도심에서 보기 힘들다. 그래서 이케아는 도심 속에서 브랜드와 만나는 접점을 제공하기 위해 ‘이케아랩’을 만들었다. 성수동에 위치한 ‘이케아랩’은 이케아의 ‘데모크래틱 디자인’ 요소 중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기획되었다. 숍에서는 재활용 소재로 만든 제품을 판매하고, 푸드랩에서는 친환경적인 메뉴를 판매한다.
또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한 팝업 전시가 진행된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새삶스럽게’라는 타이틀의 미디어아트 전시를 진행하고 있었다. 자신의 취향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꿈꾸는 삶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집’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시였다.
펜데믹 상황에서 사람들은 야외활동에 제약을 받았고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었다. 이에 이케아는 집에서부터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자는 메시지를 시의적절하게 전달했다. 홈퍼니싱 브랜드인 이케아가 펜데믹 상황에서 좋은 생활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집’이라는 것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새삶스럽게’ 팝업은 최근 강북 수유동에서 다시 열렸다고 한다.)
이케아는 가구 브랜드라는 점에서 브랜드 메시지가 오프라인에서 더 잘 드러나며, 이케아 고객 또한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경험을 더 선호한다고 생각한다. 온라인으로 비즈니스가 많이 전환되고 있는 가운데 오프라인 팝업에서 경험에 초점을 맞춘 전략은 이케아의 브랜드 개성을 더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또 도시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도심 속 시티 숍을 열어 브랜드 경험을 확장한 것은 이케아다운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케아는 세심한 ‘강백호’ 같다는 생각이 든다. 농구 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는 농구 림을 맞고 튀어나온 공을 잡는 ‘리바운드’에만 집중하며 골밑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른다. 이케아도 오롯이 ‘더 많은 사람을 위한 좋은 생활’에만 집중하며 할 수 있는 모든 부분에서 세심하게 노력을 다 한다. 이 글도 이케아의 모든 노력을 담았다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매번 글의 끝 부분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 문장이 지겹겠지만) 더 나은 삶을 제안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도 건재하다.
이케아를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도 사람의 삶에 가장 가까이 위치한 산업이 가구이고,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서 좋은 가구가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케아를 통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가장 직관적인 브랜드임이 틀림없었기에 내가 추구하는 브랜드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 그래서 이케아를 통해 배울 점이 많았다. 특히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케아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그저 사람을 꾸준히 가까이서 바라본다. 이케아가 홈 비짓을 통해 라이프스타일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이케아의 행동이 날 꽤나 감동시킨 것 같다.
지금 행하고 있는 모든 브랜드적인 활동, 프로젝트에 포함되어 있었으면 하는 것이 ‘컨슈머 인사이트’이다. 사람을 이해한 기획은 사람과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삶을 제안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최대한 가까이서 사람을 이해해보려 한다.
사람의 삶에 가까이 있으면서, 더 나은 삶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브랜드는 무엇이 있을까요?
참고문헌: ‘매거진B:이케아’, ‘이케아 디자인’
참고 웹사이트: 이케아코리아, IKEA Museum
주넌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