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와 민대표의 힘겨루기, 지식재산(IP)에서도?
뉴진스가 속한 레이블의 수장 민희진 대표와 하이브의 갈등이 지속되는 국면이다.
법원의 판결과 기자회견을 반복함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한 공방과 도파민의 향연이 혼재되고 있다. 그 이면에서는 힘의 균형추를 잡기 위한 치열한 수 싸움이 지속 중이다.
자본을 제공하고 회사를 소유한 갑(甲).
회사를 경영할 권한을 부여받고 성과를 보상받는 을(乙).
체스판 위에서 서로의 킹을 체크하기 위해 공방을 주고받는 흑백의 플레이어와 같이, 서류상의 갑과 을은 계약서 문구에 한정되지 않고 체크메이트를 향해 수 싸움을 지속한다.
이번 사태는 하이브 측의 내부 감사로 시작되었다. 하이브 측 주장에 따르면 민희진 대표를 포함한 어도어 경영진이 자사의 핵심 지식재산(IP)의 원천이기도 한 걸그룹 뉴진스를 데리고 독립하려는 정황이 드러났다는 것이 배경이다.
어도어에 속해 있는 대표 걸그룹 뉴진스는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HOT 100’에 세 곡 이상을 올려놓으며 K-POP 대표 주자로 자리 잡았다. 데뷔 2년 차 걸그룹은 작년 한 해 매출 약 1100억 원, 영업이익 약 335억 원을 기록하며 방탄소년단의 공백을 채운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모회사의 경영권 행사. 자회사의 독립성 보장. 그 본질은 권한 부여와 힘겨루기에 있다.
실리콘밸리의 회사에 핵심 인력을 유치하는 과정을 떠올려 보자. 인재 전쟁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파격적인 대우로 인재 유치에 진심이다. 높은 연봉만으로 S급 개발자를 모셔올 수는 없다. 무제한 휴가와 재택근무를 인센티브로 내걸고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환경을 내세워 인재를 유치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후에는 조직에 잘 녹아들게만 하면 성과는 따라오기 마련이다. 이들에게 일률적인 사내 규칙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민 대표의 영입 과정에서도 비슷한 제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조건 중 하나는 “레이블 운영에 일체 간섭받지 않는다”는 독립적 권한이다.
한국 엔터 업계에서 멀티 레이블 체제의 파격적인 실험이 끝나가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2018년 JYP 엔터가 최초로 멀티 레이블 체제를 도입하였고, 하이브도 그 뒤를 이어 중소 기획사들을 인수합병하여 멀티 레이블 체제를 완성하였다.
멀티 레이블 체제는 지주사가 각 레이블의 경영권을 소유하면서도, 자회사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소속 아티스트 별로 독자적인 팀을 꾸려서 신규 아티스트 발굴, 신곡 발매, 콘서트 주최까지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다만, 개별 레이블의 입장에서는 독자 노선을 구축하고 독립된 권한을 인정받기를 원하면서도, 규모와 영향력을 가지는 모회사의 자본력과 네트워크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양가적 관계를 가지게 된다.
하이브는 어도어의 지분 80%를 가지는 최대주주이다. 하이브가 어도어의 실질적 경영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별 레이블에게 권한과 힘을 어느 정도로 위임하는지에 따라 이러한 양가적 관계를 잘 유지할 수도, 불협 화음을 낼 수도 있다.
지분과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완전한 독립성도, 완전한 종속성도 바라기는 어렵다.
엔터 사업에서 아티스트는 다양한 지식재산(IP)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가수의 노래, 굿즈 상품, 그룹의 브랜드 이미지까지 많은 지식재산이 생긴다. 그룹의 구성원이 바뀌더라도, 해당 그룹이 지속할 수 있도록 하나의 브랜드가 생긴다고 볼 수 있다.
<Never Ending Story>라는 명곡을 남긴 록 밴드 부활은 198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음색과 개성을 가진 수많은 보컬이 거쳐가며 브랜드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사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아티스트와 관련된 무형자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식재산권을 획득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활동하는 그룹에 투자되는 자본과 팬들의 신용이 담긴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법적 장치인 것이다.
뉴진스(New Jeans), 방탄소년단과 같은 그룹명은 상표로 보호되는 대표적인 지식재산(IP)이다.
그룹에 속한 아티스트가 새로운 소속사에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원 소속사가 보유한 상표권을 매입하거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사용 권한을 획득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수년간 활동한 그룹명이라도 사용할 수 없다.
현재 “New Jeans”의 상표권은 어도어가, “방탄소년단”의 상표권은 빅히트뮤직이 소유하고 있다. 이들 회사를 인수하거나 지식재산권을 매입하지 않는 이상, 대표나 아티스트가 독립을 하더라도 그룹명 사용은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경영권’을 얻기 위해서는 지분의 평가가치를 훨씬 상회하는 할증액인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급하여야 한다.
회사를 운영하는 힘은 경영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경영권이 있다면 기업에서 사업 방향을 바꾸고, 직원을 채용하는 등 기업 운영에 전권을 가질 수 있다. 경영권자가 대표를 선임하고, 대표의 운신의 폭을 정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특허와 같은 지식재산권을 보유한 권리자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힘의 대립이 외부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특허권자는 ‘특허발명’을 독점할 권한을 가진다. 특허권자는 ‘특허발명’을 만들거나, 판매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기업의 경영권을 가진 것처럼 자신의 특허를 활용하는 전권을 가진다.
엔비디아가 고성능 AI 칩을 개발하고 이를 특허로 획득한 경우, 자신들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 첫 번째 카드일 것이다. 그러나, 엔비디아에게 설계 기술만 있다면 그다음 선택지로 3 나노 공정을 통해 AI 칩을 더욱 잘 만들 수 있는 TSMC에게 칩을 제조할 권리를 부여하거나, 용산 전자상가에 칩을 판매할 권리만을 떼어서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도 특허권자의 자유이다.
특허권자는 계약 상대방을 정하는 것 이외에도, 자신이 가진 권한을 어느 정도 부여할지도 자율에 있다. 완전한 독립성을 보장하거나, 일부 권한만 줄 수 있다. 사기업의 경영 활동을 제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특허권자는 TSMC에게 전권을 위임하여 TSMC가 전 세계에서 칩 제조를 독점하도록 권한을 부여할 수 있고, 모든 칩 제조사들에게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경쟁을 유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특허를 가진 갑(甲)의 특허 경영 행위이다.
특허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을(乙)의 목소리가 커지는 경우도 많다. 기술 이전을 받아 공장을 설립하고 신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기업은 다른 경쟁사가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막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경영권 프리미엄과 같이 특허를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기업은 높은 사용료를 내밀면서, 자신들이 특허에 대한 독점 권한을 요구하고 오프닝에서 엔드게임으로 단숨에 넘어가 체크메이트를 외치기도 한다.
다른 기업에게는 특허 사용 권한을 부여하지 않겠다는 부작위 조항을 삽입하여 통해 갑(甲)과 을(乙)의 휴전선을 만드는 창의력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 손인호 변리사. Copyright reserved 2024.
손인호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모비인사이드의 뉴스레터를 구독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