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 유럽 언론으로부터 하나의 소식이 전해졌다. 유럽에서 맥도날드의 빅맥 상표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수도 없이 먹었던 그 햄버거가 맞다. 패티가 층층이 쌓인 바로 그 “빅맥(Big Mac)”이다.
이코노미스트에서 처음 고안한 ‘빅맥지수(Big Mac Index)’는 매년 1월과 7월에 발표된다.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에서 팔리는 빅맥 가격을 달러로 환산한 각국의 빅맥 가격은 각국의 물가를 비교하는 하나의 지표로 활용된다.
그만큼 빅맥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햄버거 중 하나이고, 맥도날드를 상징하는 대표 간판 상품이다.
맥도날드가 유럽에서 사업을 철수한다는 소식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유럽 내 빅맥이 단종되는 것도 아닌데 왜 유럽에서 빅맥 상표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일까?
소비자들에게 여전히 사랑받는 제품의 상표가 없어진다는 소식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상표권을 잃었다는 것은 그 국가에서 브랜드 독점권을 잃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브랜드를 독점할 수 없다면 경쟁사인 버거킹에서 빅맥을 출시해도 손 쓸 방법이 없어진다. 눈뜨고 코 베이는 형국이다.
호시탐탐 맥도날드를 노리던 버거킹은 이번 판결로 미소를 지을지도 모르겠다.
맥도날드 빅맥이 와퍼보다 조그마하다고 놀리는 광고를 1년을 넘게 영국 전역에 올리기도 했던 버거킹 마케팅팀이 움직일 차례이다.
브랜드가 살아 있다면 상표는 진시황이 그렇게 바라던 불로초를 먹은 것처럼 무한한 생명을 가질 수 있다. 브랜드를 지키는 호위 무사로 브랜드와 함께 영속한다.
350년 역사를 갖는 독일의 가족기업 머크(Merck)와 같이 여러 세대를 거쳐 브랜드를 유지한다면 상표도 세대를 거쳐 브랜드를 지켜준다. 일본에서 100년 역사를 가진 기업은 2500곳이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기업 활동이 지속되기만 한다면 브랜드 가치와 상표를 유지할 수 있다.
유명 가수의 저작권료가 사후 70년까지만 받을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브랜드는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질 수 있는 무형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신생 브랜드가 범접할 수 없는 역사의 기록이 남는다.
그러나 상표의 생명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전제는 소비자가 그 제품의 브랜드를 잊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장작거리를 옆에 두어야 한다.
기업이 신제품을 출시하지 않고, 브랜드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 브랜드의 생명의 불씨는 꺼져가기 마련이다. 오히려 누군가 먼저 상표를 선점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상표를 독점하도록 놔두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이 자격을 상실하면 상장폐지가 되는 것처럼 각국 지식재산 제도는 ‘상표를 상장폐지’하는 것과 비슷한 제도를 두고 있다.
권리자가 등록된 상표를 일정 기간 사용하지 않는다면 상표의 등록을 취소시키는 제도이다. 상표를 살리고 싶다면 그 상표를 계속 사용하면 된다. 전국에서 매장을 운영하지 않더라도 백화점 한편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어 상표를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국내에 아직 출시하지 않은 ‘인앤아웃 버거’가 3년에 한 번씩 팝업 스토어를 여는 것도 한국에 등록된 상표를 지키기 위한 전략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취소된 상표는 힘을 잃게 되므로 다른 누군가가 그 명칭이나 로고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터전을 만들어 준다. 지식재산 생태계의 자정 작용을 도모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맥도날드 ‘빅맥’ 상표에 대해서도 슈퍼맥(Supermac)이라는 회사가 5년 이상 상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표 등록 취소를 신청했다.
맥도날드가 쇠고기 패티에 대해서는 빅맥을 판매하고 있지만, 치킨 패티를 빅맥을 판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법정에서 다투어졌다.
슈퍼맥(Supermac’s)도 나름 아일랜드 지역에서 자리를 잡은 프랜차이즈 기업이다. 치킨 버거를 주 메뉴로, 햄버거 등 다양한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
1978년 처음 문을 연 슈퍼맥은 아일랜드 지역에 100개가 넘는 지점과 4000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할 정도로 상당한 규모를 가지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자리를 잡은 기업이 갑자기 글로벌 기업 맥도날드를 향해 분쟁을 시작하기까지는 큰 결단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슈퍼맥이 이런 결정을 한 배경에는 자신의 브랜드 가치와 충돌되는 지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지역을 벗어나 유럽 본토로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영역 다툼이 발생했다.
자신이 수십 년간 사용했던 상표를 유럽에서 상표를 등록하고자 하였는데, 맥도날드가 이미 등록해둔 ‘빅맥’ 상표로 인해 거절이 되었기 때문이다.
맥도날드는 주력 메뉴인 쇠고기 패티 이외에도 치킨 패티에 대해서도 빅맥 상표를 등록받아 두었고, 이는 효과적인 브랜드 관리 방법의 일환이다. 다만, 상표 관리 측면에서 조금의 아쉬움은 남는다.
맥도날드는 치킨 패티를 사용한 버거를 홍보한 자료를 제시하였지만, 유럽연합 지식재산청(EUIPO)과 법원은 맥도날드가 EU에서 치킨 버거와 관련된 가금류 제품, 치킨 샌드위치에 대한 빅맥 상표의 ‘진정한 사용’을 입증하지 못한 것으로 최종 판단하였다.
치킨 패티에 대한 빅맥 상표의 상장폐지 소식.
다윗에게 유럽 사업에 대한 희망의 교두보를 열어주었고, 골리앗에게는 브랜드 관리의 중요성을 되새겨주는 빅맥 대전으로 남을 것이다.
손인호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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