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테크 스타트업 바풀의 디자이너 JASON YOO가 블로그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과거의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디자이너는 여러 단계 중 하나였다. 클라이언트가 프로젝트를 의뢰하면 기획자가 와이어프레임 등 기획서를 만든다. 여기서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가 지정한 일정과 기획자의 기획서를 토대로 시안을 디자인하고, 스펙 문서를 만들어 업무를 마친다. 그런데 이처럼 기계적인 프로세스에서 사용성 이상으로 사용자 본연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고, UX라는 개념을 포함한 여러 가지 방법론이 등장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현시대의 UX는 디자인 프로세스 전반을 지배하는 방법론이 되었다. 시나리오와 플로우 등 큰 그림뿐만 아니라 색상 배열이나 애니메이션 등 세밀한 부분 부분까지 UX를 연구하는 시대다.
그런데 요즘, 특히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사용자의 성격과 제품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다양해졌다. 많은 스타트업이 등장하는 이유도 대기업의 비대한 제품만으로는 사용자의 다양한 기대를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변화는 당연히 회사 내의 디자이너에게도 영향을 준다. 사용자의 다양한 기대만큼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직면하는 문제가 굉장히 다양해졌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UX 방법론만으로는 이런 문제에 모두 대응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많은 디자이너가 UX를 개선하기 위해 사용자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사용자 피드백을 토대로 UX를 개선해왔다. 하지만 소수의 열혈 사용자가 서비스를 주도하는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내가 듣도 보도 못한, 방구석에 누워 코를 파며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쥐어 든 사용자들이 서비스를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 사용자 피드백만 신경 쓰다가, 오히려 다수의 조용한 사용자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UX전문가 집단으로 알려진 몇몇 유명 에이전시가 작업한 대기업 제품이 실제 사용자에게 외면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제는 UX, 즉 사용자 경험 이상의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한편, 이렇게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시대에 디자이너 사이에서 오히려 진부한 논의가 오가기도 한다. UX란 개념이 소개된 지 10년이 더 지났는데, 여전히 많은 강의와 커뮤니티에서 UI와 UX의 개념을 구분하는 게 중요한 논의로 다뤄지고 있다. 그런데 중요성을 떠나 10년째 같은 논의를 하고 있다면 너무 진부한 논의 아닌가. 또한, 많은 디자이너가 자신이 UI 디자이너인지, UX 디자이너인지, 아니면 UX/UI 디자이너인지를 규정하는 단순한 문제로 애를 먹는다. 그런데 실제 업무는 거의 비슷하다는 함정이…
이렇게 UX를 통해 무엇을 도출하고 분석하는 방법만으로는 현시대의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모든 문제에 대응할 수 없다. 단순히 직관적인 UI나 매끄러운 UX를 뽑아내는 역량에 더해,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가치를 디자인해내는 역량이 필요하다. 또한, 디자이너가 가치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의 관점뿐만 아니라 회사의 구성원, 클라이언트, 사용자 등 제품과 관련한 모든 이해관계를 포괄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스킬을 갖추고 UX를 연구하는 것에 더해 제품이 태어난 이유와 목표 즉, 회사의 비전과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여기서부터 제품 디자인이 시작된다.
제품 디자인 프로세스는 위처럼 요약할 수 있다. 가장 먼저 회사는 비전을 만들고, 비전에 따른 비즈니스 플랜을 수립하여 이를 진행한다. 다음으로 디자이너는 회사의 비전과 비즈니스 플랜을 수렴하여 제품을 디자인하고, 사용자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사용자는 제품을 경험하고, 회사에 대해 매출 또는 그 밖에 회사가 목표하는 지표로 응답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며 제품이 발전하고 회사가 성장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디자이너는 제품을 사용자에게 전달하고 경험을 개선하는 각종 UX 방법론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현시대의 제품 디자인에서 UX는 물론 중요하지만, 하나의 단계일 뿐이다. 그에 앞서 사용자에게 회사의 비전을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며, 그렇다면 회사의 비전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게 가장 우선이다. 디자이너가 회사의 비전과 비즈니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도대체 무엇을 도출하고 분석하여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을까? 아무리 미려한 UI와 환상적인 UX를 제공하더라도 알맹이가 없다면 디자이너 혼자 천자문만 외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CEO(또는 Chief 급)과 면대면으로 회사의 비전과 비즈니스 플랜에 대해 깊이 논의해야 한다. ①회사의 비전은 무엇이고, ②회사가 바라보는 시장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그 문제를 ③어떤 솔루션으로 해결할 것인지, 그에 따른 ④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동작하는지 등을 CEO와 일치된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회사의 자잘한 개발 일정보다 ⑤이번 분기의 목표를 우선으로 인지해야 한다.
그런데 단순히 알고 있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회사의 비전과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약점을 찾아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이런 비전과 비즈니스 플랜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지속적인 논의와 공부가 필요하다.
다음은 회사의 비전과 비즈니스를 디자인을 통해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이다. 플로우 설계나 각 페이지의 GUI 구성, 또는 제품의 프로모션 이미지 등 제품과 관련한 모든 디자인 과정에서 회사의 비전과 비즈니스를 직간접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또한, 디자이너는 이런 실무 과정에서 많은 선택이나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때에도 가장 우선순위로 고려할 것은 회사의 비전과 비즈니스의 전달이다. 비주얼 퀄리티나 프로토타핑, UX 등 각종 디자인 프로세스는 그다음 문제다.
제품 릴리즈 이후에 UX를 분석하고 개선할 때도 마찬가지다. ‘불편함 개선’이나 ‘좋은 경험’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제품에서 어떤 경험이 회사의 비즈니스와 가장 관련이 있는지 찾고 선정하는 게 먼저다. 비즈니스와 큰 관련 없는 UX개선이나 분석은 나중에 해도 된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면, 상대방에게 어떤 반응을 기대할지 또는 어떤 보상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제품 디자이너도 마찬가지다. 제품을 사용자에게 전달하기 전에 회사의 비전과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미려한 비주얼이나 효율적인 디자인 프로세스, 또는 UX 분석같은 테크니컬한 부분이 이런 이해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나도 잘 모르는 내용을 단순히 청아한 목소리와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는 말투로 이야기한다고 갑자기 말이 통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제품 디자이너는 디자인 테크니션인 동시에 회사의 비전과 비즈니스를 함께 이해하고 개선해나가는 비즈니스 파트너다. 디자인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회사의 비전과 비즈니스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물론 회사의 CEO 역시 제품 디자이너를 비즈니스 파트너로 간주하고 대접할 때, 디자이너가 디자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일이 바빠 너무 늦어버린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 글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담다 보니 정리가 어려웠습니다. 그동안 많이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과 행동이 모순되지 않도록 실무 현장에서 결과를 내는 일에 집중하면서, 다음부터는 가볍고 짧은 글로 계속 찾아뵙겠습니다. 또한, 시리즈 동안 계속 도움주신 김서윤 디자이너님께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