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스타트업까지
by 정예지 모비인사이드 에디터
디자이너로서의 사회 경험이 딱 10년이 되던 2010년. 정진호 디자이너는 필리핀, 마닐라로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때가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닐라에서 보고 느낀 경험들이 그에겐 큰 충격을 주었다. '해외에서 한번 일해보자!' 라는 마음가짐도 이때 가지게 되었다.
정진호 디자이너는 당시 우연한 계기로 접하게 된 NAVER Japan(県LINE Corp.)의 채용에 응시, 합격이 되어 일본어를 모름에도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다. 다행히도 NAVER Japan에는 통역사가 있어 업무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았는데, 일상생활에 있어 힘든 점이 많았다고 한다.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물건을 샀는데, 점원이 뭐라고 하는 것을 그냥 무조건 ‘네! 네!’ 했더니 물건 하나하나 비닐봉지로 담아 주는 거예요. 상대방의 말도 이해 못 했는데, 그냥 대답하면 안 된다는 걸 그때 배웠죠.”
하지만 중도 포기하거나, 한국으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스스로가 무엇을 이루려 왔는지 되새기며 시간을 보냈다. 올해 일본 거주 7년차로, 첫 회사였던 NAVER Japan을 뒤로하고 패스트 패션 서비스를 운영하는 CROOZ, 요리 레시피 서비스로 유명한 COOKPAD,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도와주는 스타트업 Wanderlust, 일본 전국 소매체인을 운영하는 AEON 등 다양한 조직을 거쳤다.
연일 방송에서 나오는 일본의 구인난.......일본에서 직접 느끼고 있는 일본의 채용 시장은 어떤 분위기일까?
일본 거주 7년간 5번 이상 이직을 경험하며 일본의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고루 걸치며 현재는 다시 핀테크 스타트업의 디자인 총괄을 맡게 되기까지. 정진호 디자이너를 통해 실제 채용 시장의 분위기를 엿보았다.
"드라마/영화에서 보이는 니트족(무직 상태이며,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을 제외한다면, 일본의 취업 시장은 현재 호황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받는 느낌은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기업'을 선호하는 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좀 더 초점을 맞춰서 구직활동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IT 분야의 구인난은 특히 심각하다고 한다. 한국처럼 일본도 현장에서 바로 활약 가능한 3-4년차 (디자이너)의 수요가 많다. 경험이 풍부하면 무리 없이 채용될 수 있다고 하는데 구직절차는 어떠한 지 물어보았다.
"구직절차(경력직의 경우)는 한국과 같습니다. 일본에도 다양한 구직사이트가 있는데요. 회사에 대한 정보, 업무 내용뿐만 아니라 회사 홍보용 인터뷰 자료 등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그곳을 통해 지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부 스타트업들을 보면 격식 없는 면접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스타트업은 팀빌딩이 중요하다 보니,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점심을 먹거나 회사 멤버들와 회식을 열기도 해요. 물론 지원자도 해당 기업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일본의 채용절차는 한국과 99% 비슷하다고 하는데 주의해야 할 점이나, 일본 취업 전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알아보았다.
“저 같은 디자이너들은 한국어로 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기 보단, 일본어로 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일본어가 부족해서 잘못된 일본어를 사용하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으니 그럴 땐 영어 포트폴리오라도 꼭 준비해주세요. 일본어가 아직 부족해서 영어로 작성했다고 양해를 구하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일본의 기업에 채용되지 않는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양국 간의 디자인 스타일에 서로 다른 부분이 존재해서이기도 해요. 최근 일본도 해외의 여러 디자인 사례들을 경험하고 있어서 현재는 갭이 많이 줄었지만, 폰트(글꼴)만 보더라도 한국어와 일본어에 대한 행간, 자간의 감각이 다르기 때문에 연습이 필요합니다.
또한, 채용되었더라도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는지 먼저 파악하셔야 해요. 서류미달로 비자를 못 받을 가능성도 있거든요. 일본 외무성 사이트를 통해 자신이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 안된다면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일본에 오시기 전에 꼭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일본의 기업들은 한국의 채용공고에 있을 만한 높은 스펙을 요구하거나, 특정 학과 출신을 요구하는 조항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국분들의 높은 스펙들 때문에 일본 기업들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랄까요? 그런데도 아무리 구인난이라 해도 반드시 한국인을 그저 채용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언어이기 때문이에요.
언어는 영어로만 일하는 곳들도 있고 해서, 영어만 잘 하셔도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저 같은 기술직인 경우엔 일상대화를 나누는 수준의 일본어 능력은 필수입니다. 올바른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업무의 내용을 잘 파악하는게 일 순위니까요.
또한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국어가 아닌 이상, 네이티브 레벨은 넘기 힘든 벽입니다. 몇십 년 사신 분들도 뛰어넘기 힘든 벽이에요. 일본에 먼저 취직한 한국인 선배들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틀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이점은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틀려도 됩니다. 다만 이해를 못 하면 안 됩니다. 스스로가 이해될 때까지 질문하세요. 그런 마음가짐이 더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면접문화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일본의 기업이 한국의 기업들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집요하게 알고자 하는 욕심(?)을 느끼곤 합니다. 디자이너라면 왜 그런 디자인을 했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에 대해 잘 설명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기왕이면 그 회사에서 어떤 경험들을 쌓고 싶은지 말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아 참, 이력서에 어떤 취미를 갖고 있고, 어떤 고교 시절엔 동아리에서 활동했는지도 꼭 써보세요. 그러한 경험들이 사회인으로서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해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면접관이 흥미를 끌만한 취미를 갖고 있다면 관련 이야기를 나누면서 면접 분위기도 훨씬 좋아질 거에요.”
이러한 질문을 통해 회사와 성향이 맞는지를 확인해본다고 한다. 이것 외에도 동료애를 과시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일본은 좀 더 개인적이며, 퇴근 이후의 삶을 존중해주려는 부분이 한국의 기업문화와는 다르다고 한다.
"일본의 기업은 상장한 곳이라도 업무가 스피디 한 곳이 많고, 기업이 평판 관리를 많이 신경 쓰는 편이죠. 평판을 위해서라도 야근을 잘 시키지 않습니다. 일본의 광고회사 덴츠(電通)일화는 한국에서도 꽤 유명할 텐데요. 한 신입이 잔업(시간 외 근무)만 1개월에 105시간을 넘게 하다 자살한 사건입니다. 2015년에 일어난 이 일은 일본의 기업들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지금 일본은 개인의 삶, 워크앤라이프발란스를 맞춰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회사의 동료를 업무로만 대할 수 있습니다. 프라이빗을 중시하는 일본인들은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혼술, 혼밥 문화를 오래전 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또한, 대부분 회사에선 호칭을 직책이 아닌 “OOさん(님)"으로 사용합니다. 이젠 저도 한국의 상하관계식 호칭이 가끔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그리고 재특회의 활동으로 한국 혐오가 만연해 있지 않은가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기업마다 다양성을 내재한 문화를 장려하고 있습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여러 번의 이직 경험을 통해 회사마다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고, 저마다의 타이밍과 포지션이 있으니 전략을 잘 세우고 겁먹지도 말고 도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이직을 많이 하면 커리어에 부정적이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이직 이유가 합당하다면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그는 말한다.
오히려 한국인 특유의 적극성이 일본인들에겐 신선함으로 발휘된다고 한다. 일본 취업에 대해 더 상세한 이야기는 정진호 디자이너에게 직접 물어보자. 그는 일본에서 IT분야에 활동 중인 한국인들의 네트워크를 운영중이다. Korean Meetup & 을 방문해보자. (이메일도 환영. jeongjinho.img7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