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biinside Nov 03. 2017

'30대가 넘어가면 센스가 떨어진다?'

 그런 거 없어요...일본의 한애리 디자이너

by 모비인사이드 정예지 에디터


일본의 애드테크 회사 FreakOut의 한애리 엔지니어는 15년 전 한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때는 한애리 엔지니어가 아닌 한애리 디자이너였다. 책상 옆에 간이침대를 두고, 5년간 하루 취침시간이 4시간이 넘지 않을 만큼 청춘을 다 바쳐가며 일했다. 웹사이트도 만들고, 모든 종류의 인쇄 제작을 해보고......디자이너로 할 수 있는 웬만한 것은 다 해보며 실력과 경험을 쌓았다.


그 당시 '30대가 넘어간 디자이너는 좀 센스가 떨어지지?'라는 편견이 팽배했던 때다. 이렇게 계속 일하면 '디자인보다는 신입 디자이너 매니징을 하는 역할을 하게 될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디자인은 해볼만큼 해 봤으니 다른 걸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그녀는 디자이너에서 엔지니어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애리 엔지니어

 

개발을 공부할 때도 실력이 꽤 좋아 선생님께 항상 칭찬을 들었다. 하지만 '20대 후반', '여성', '새로운 분야로의 이직'이라는 세 키워드는 또 다시 앞길을 가로막았다. 학원에서는 실력이 좋다며 인정을 해 줄 뿐, 회사에 선뜻 추천해주지 못했다. 


추천해주고 싶지만, 현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그 당시 개발직종은 매일 철야를 강행하는 3D 직군이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남자만의 세상인 곳이었다. 그녀는 나이/성별/배경을 넘어서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개인의 삶도 유지하며 좀 더 사람답게 살고 싶었어요. 일본은 일하는 환경이 좀 더 평등하죠. 게다가 가족과의 거리감이 생기는 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비자 습득의 용이성도 따져보고 일본을 선택했습니다. 준비해서 갔지만, 초기엔 힘들었어요. 현지에서 사용하는 일본어와 한국 친구들과 연습하며 썼던 일본어는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일본인들은 목소리도 굉장히 작고, 한국 사람들이 가진 억양도 없어요. 말은 어찌나 빨리하는지 회의 시간에 못 알아들어도 키워드 몇 개만으로 유추해서 '네, 하겠습니다.' 이 말만 계속하며 살았어요. 그러다 된통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한애리? 너 정말 알아들었어?


"상사에게 이해하는 척 하던 걸 들킨 거지요. 리더 포지션에 오사카 사람들이 이상하게 많았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개인적이고, 둘러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사카 사람들은 좀 달라요. 장난도 잘치고, 외향적이죠. 기본적으로 개그맨 기질이 있어요. (오사카에서 아무에게나 '뱅'하고 손으로 총을 쏘면 다들 리액션을 취해줍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유쾌한 곳입니다. - 유튜브 영상 참조) 그래서 그런지 오사카 사람이 어필도 잘하고, 리더 포지션에 많은 것 같아요. 여튼 오사카 지역 사투리가 있는데, 그걸 알아듣지 못했죠.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도 모르겠고...쓰는 말도 달랐어요. '진짜?'를 'ほんとう(혼또?)'라고 하면 오사카 사람들은 'ほんま(혼마?)'라고 말해요."'



일본어를 잘 모를 뿐더러 애니와 같은 일본 콘텐츠도 썩 좋아하지 않았기에 모든 게 새로웠다. 일본으로 건너간 초반에는 매일 울며서 퇴근했다고 한다. 그 때 한애리 엔지니어가 배운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 


1. '일 잘하는 사람'의 기준이 다르다.


"일본과 한국은 칭찬 포인트가 다릅니다. 한국은 개개인이 잘 나야되요. 동료들과 경쟁해서 이긴 사람, 눈에 띄는 사람이 일 잘하는 사람이에요. 일본은 아닙니다. 일본은 '주변 사람들과 잘 조화되는가?, 팀원을 잘 리드하는 가?'가 중요해요. 일본이 워낙 개인주의인 사회이다 보니 '그들을 어떻게 통합시키는가'가 중요한 거죠."


"물론 일본에서도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팀 조화가 더 중요해요. 단적으로 보면 일본 중고등학생들 보면 다 같은 양말을 신고, 같은 가방을 들고 있어요. 한국 친구들은 같은 것을 꺼리지 않나요? 그리고 주말에 친구들끼리 만나잖아요? 그럼 교복을 입고 만나는 애들도 있습니다. 팬클럽을 가도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많죠. 일본인은 조직 내에서 튀는 걸 싫어하고, 묻어가는 걸 선호합니다."


"한국인들이 실수를 많이 하는 것이, 미팅에서 '나 좋은 아이디어있어. 이거 이렇게 하면 돼. 안 할 이유 없어' 라고 어필하는 거예요. 일본에서는 그 사람이 맞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런 식의 문제 지적에는 거부감을 느껴요.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다르기에 한국인들의 직접적인 화법은 일본인들에게 공격적입니다. 그 조직에서 왜 그 아이디어를 채택 못 했는지 나름의 백그라운드와 히스토리가 있을 텐데, 그걸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2. 접근법이 다르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친해지려고 초면에 묻는 것들이 있습니다. '몇 살이세요.' '왜 여기에 오셨나요?'. '결혼하셨나요?', '아이는 있나요?'. 일본에서는 다 실례되는 질문입니다. 보통 '입사 시기가 언제세요?', '무슨 일을 하세요?', '점심으론 무엇을 드세요?' 등 현재와 상대에 집중한 질문을 던집니다."


3. 보고, 공유 = 집단 재산


"일본 생활 초반 1년 반 정도 동안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냈어요. 하지만 인정받지 못했죠. 알고 봤더니 일본은 능력, 경험의 사유화를 싫어하더라고요. 성과를 내도 그 과정을 서류화 해놓는 걸 잘 하지 못해서 계속 혼이 났던 거에요. 만약에 어떤 직원이 아파서 쓰러진다면 어떻게 그 직원을 커버할 수 있을지...항상 대체할 환경을 만들어 두어야 하는 것이죠. 일본은 보고와 공유를 통해 집단 재산을 만들어요. 일본은 보고하는 것, 상담하는 것, 

연락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4. 철저히 개인적인 집단


'"이번에 한국에 출장 오며 처음으로 상사에게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습니다. 7년간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도 말이죠. 한국 출장을 여러 번 왔는데 이번에는 출장 주기가 짧아져 모든 걸 준비해두고 올 수 없었어요. 상사가 어쩔 수 없이 물어보더라고요. 물어볼 때도 정말 미안하다며, 웬만하면 연락 안 하겠다고 사과하며 번호를 정말 조심히 물었습니다. 한국에서 있는 카톡 업무 지시? 일본에는 없습니다. 게다가 철저히 개인적인데 많은 사람이 혼자 점심을 먹어요. 만약 두 명 이상 밥을 먹으면 회사에서 지원해줄 정도입니다."


이렇게 많은 차이에도 일본에 계속 머무르고 있는 이유는 바로 '기회'다. 보험이나, 은행같이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곳은 아직 딱딱한 문화를 가진 곳이 많지만, 중소기업이나 IT산업의 기업들은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달의 마지막 주 금요일엔 2시 퇴근)를 가지거나, 매주 금요일엔 맥주 마시기, 빙고하기 등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진 곳도 많은 게 장점이다.


"일본에서는 비즈니스적 니즈가 맞는 사람이면 지위, 연령, 소속도 신경 쓰지 않고 만날 수 있습니다. 한 번은 유명한 일본 대기업의 기업 총수와 독대를 했었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것들이 가능할까요? 일본에서는 직위, 나이, 성별에 대한 편견도 한국보다 낮아요."


하지만 이렇다고 일본문화가 누구에게나 맞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매너가 엄격해 밖에서 큰 소리를 내지 않는 것, 대중교통에서 통화하지 않을 것, 스킨쉽하지 않을 것 등 챙겨야 할 것이 많다.


"한국에서는 개인이든, 회사에서든 매일 격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생활과 회사서의 일이 굉장히 천천히 진행돼요. 만약 트렌드에 민감하고 변화로부터 동기부여를 얻는 사람들에겐 일본이 무척 지루할 수 있습니다. 친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힘들 수 있습니다. 물론 일본에서도 친구를 사귈 수 있습니다. 근데 한국처럼 '오늘 술 한잔할래?', '밥 한 끼 할래?'가 안 돼요. 일본에서는 친한 친구들과 약속 잡을 때도 2주 전부터 세세하게 정해요."


이런 것들을 각오하고서라도 일본에 취업하고 싶다면, 어떻게 일본에서 좋은 회사를 고르고 일본어를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지 물었다.


"채용 공고 사이트도 많지만, 관련 직군 사람들이 모이는 스터티 모임을 자주 가세요. 인터넷에 '직군+스터디'를 검색하면 모임이 아주 많이 나옵니다. 그런 자리에서 다들 자기 소개할 때 '우리 회사 채용하니 문의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런 자리에서 스카웃이 일어나기도 해요. 저는 회사에서 일본어로 인해 된통 혼난 뒤 회의 진행과 회의록을 쓰겠다고 자처했습니다. '난 왜 못하지...?' 하고 속으로 앓으면 혼자 상처받아요. 일본인들은 친절해서 잘 도와주니 '나 못하니, 좀 도와달라' 말하면 됩니다."


한애리 엔지니어는 한국에서는 취업하기가 힘드니, 일본에 가겠다라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곧장 티가 난다고 한다. 엔지니어들이라면 인턴이 아니더라도, 혼자 연구를 해볼 수 있으니 경험치를 쌓을 것, 그리고 일본은 유지보수와 커뮤니케이션 중심, 한국은 스피드와 결과 중심적이라는 차이를 받아들이고 올 것을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