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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빌리티그라운드 Sep 27. 2023

100년 전 이 디자인이?
벤츠가 만든 레이싱카

100년 전 유러피언 그랑프리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은 우승한 차량이 아니라 4위와 5위를 차지한 벤츠 RH 2-liter "Teardrop"이었다. RH는 'Racing Car Rear"의 약자였다.

당시 대중에게 미래지향적으로 보였던 이 디자인은 1923년 9월 9일 이탈리아 몬 자에서 열린 레이스에서 데뷔 전을 치렀다.

자동차 역사상 최초의 미드십 엔진 레이싱카는 당시의 첨단 기술에 따라 공기역학적으로 최적화되어 있었다. 이는 당시 기존 경쟁 차량과는 근본적으로 차별화되는 특징이었다.


페르디난도 미노이아(Ferdinando Minoia, 출발 번호 1번)는 새로운 레이싱카로 4위를 차지했으며, 그의 팀 동료 프란츠 회너(Franz Hörner, 출발 번호 7번)가 5위를 차지했다. 윌리 발브(Willy Walb, 출발 번호 13번)의 세 번째 벤츠 RH 2-liter "Teardrop" 레이싱카는 아쉽게도 중도 탈락했다. 이 때 우승은 피아트의 카를로 살라모(Carlo Salamo)가 차지했다.

100년 전 벤츠에게 가장 중요한 상은 레이싱 드라이버가 아니라 만하임에 본사를 둔 벤츠의 디자이너 막스 바그너(Max Wagner)에게 돌아갔는데, 그는 "Teardrop" 레이싱카의 선구적인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상을 수상했다. 이를 통해 유러피언 그랑프리 주최 측은 이 벤츠의 레이싱카가 기술의 판도를 바꿔버린 공로를 인정했다.


자동차 공기역학의 새로운 이정표



벤츠 RH 2-liter "Teardrop" 레이싱카의 역사는 2년 전 베를린에서 열린 1921년 독일 모터쇼에서 시작됐다. 이 모터쇼에서 벤츠의 개발 책임자인 한스 니벨(Dr. Hans Nibel) 박사와 디자이너 막스 바그너는 에드먼드 럼플러(Edmund Rumpler)의 'Teardrop' 자동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풍동 테스트에서 공기역학적으로 최적화된 미드십 엔진과 물방울 모양의 차체를 갖춘 이 승용차는 기술적으로는 획기적이었지만 시장에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니벨과 바그너는 새로운 차량 개발의 잠재력을 인정했으며, 벤츠는 럼플러와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관련 도면을 포함한 오픈형 'Teardrop' 자동차를 제공받았다.

벤츠는 계속해서 디자인을 거듭했다. 모터스포츠는 새로운 차량 콘셉트의 시험장이었다. 1922년 4대의 "Teardrop" 레이싱카가 제작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최초의 시도는 후방에 더블 조인트 스윙 액슬이 휠을 가이드 하는 기술을 적용한 것이었다.


에어로 엔진 기술과 조형미 넘치는 라디에이터



아서 베르거(Dr. Arthur Berger) 박사가 개발한 1,997cc의 배기량, 오버헤드 캠샤프트 2개가 장착된 90hp의 출력을 내는 6기통 엔진이 탑재된다. 이 엔진의 설계는 1912년 벤츠 카이저프레이즈 항공기 엔진의 설계와 동일한 것이다.


또한 두 개의 제니스(Zenith) 수평 기화기와 7개의 롤러 베어링이 장착된 크랭크샤프트도 발전했다. 프레임, 페달, 스티어링 휠 스포크, 기어 변속 레버, 프런트 액슬의 세로 및 가로 부재에는 수많은 경량화를 위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1926년 메르세데스-벤츠와 함게 다임러-벤츠 AG를 설립하기 위해 벤츠와 DMG가 합병한 후, 이 일관된 경량 구조 특징은 섀시를 담당했던 막스 바그너가 만든 SSKL 컴프레서 스포츠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제3자 입장에서 벤츠가 제작한 레이싱카의 외관은 유선형 모양과 중앙 엔진 배치뿐만 아니라 라디에이터도 기존의 것과 달랐다. 라디에이터는 곡선으로 디자인되어 차체 콕핏 뒤에 있었다.

그 위에는 마치 스피드를 상징하는 조각처럼 눈물방울 모양의 용기를 두었다. 1923년 9월 9일 이탈리아 몬자에서 열린 유러피언 그랑프리의 첫 번째 레이스에서 운전석 오른쪽에 더 작은 라디에이터가 추가로 장착됐다.



레이싱카에서 스포츠카로


1923년 몬자에서 열린 유럽 그랑프리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벤츠의 'Teardrop' 레이싱카는 이듬해부터 더 많은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이 혁신적인 차량은 우승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슈퍼차저 엔진이 개발되는 동안 다른 차량이 승리의 행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차량은 경쟁사인 DMG(Daimler-Motoren-Gesllschaft)와 개발 책임자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설계한 메르세데스 2리터 슈퍼차저 레이싱카가 그 주인공이었다. 이 차량은 1,989cc의 배기량에서 126hp의 출력을 내며 훨씬 강력하고 빨랐다.

벤츠는 슈퍼차저 엔진을 장착한 선구적인 'Teardrop' 레이싱카를 더 개발할 재정적 여력이 부족했지만, 1924년 말 특별한 이름이 붙지 않은 스포츠카를 개발했다. 이 차는 차체가 확연히 달랐다.

무엇보다도 디자이너들은 두 개의 헤드 램프를 통합하고 탱크를 앞에서 뒤로 옮겼으며 스플래시 가드를 추가했다. 워크스 레이싱 드라이버 윌리 발브 Walb)와 개인 드라이버 아돌프 로젠베르크(Adolf Rosenberger)와 칼 헤르만 틸거(Carl Hermann Tilger)는 이 차로 성공을 거둔 드라이버가 됐다.


1926년 이후의 레이싱 카 기술



1926년 벤츠와 DMG가 합병해 다임러-벤츠 AG를 설립한 이후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더 이상 'Teardrop' 레이싱카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1928년 회사를 떠난 후 아우토 유니언에서 비슷한 콘셉트를 추구했다.


16기통 엔진을 장착한 미드십 엔진 레이싱카는 1934년부터 메르세데스-벤츠 실버 애로우(Silver Arrow)의 가장 치열한 경쟁자였다.

메르세데스-벤츠 레이싱 드라이버 루돌프 카라치올라(Rudolf Caracciola)는 1935년, 1937년, 1938년 유러피언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하며 국제적인 위상 면에서 이후 F1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에 버금가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그의 팀 동료 헤르만 랑(Hermann Lang)은 1939년 유럽 챔피언이 됐다.

1936년 단 한 번, 아우토 유니언(Auto Union)의 드라이버 베른트 로즈마이어(Bernd Rosemeyer)에게 챔피언십이 돌아갔다. 1934년에는 유럽 챔피언십 타이틀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기록은 없다. 그리고, 미드십 엔진 레이싱 카의 원리는 1950년대 말 F1을 통해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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