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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상한 건가요

by 백경

자꾸 화내서 미안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계속 화가 나 있는 상태입니다. 좋은 이야기, 따뜻한 이야기 그런 거 하고 싶은데 잘 안 됩니다. 우리 집에 강도가 쳐들어 왔거든요. 그러다 소식 듣고 달려온 친구들한테 겁먹고 도망간 뒤로 이 강도가 자꾸 그건 강도질이 아니었다고 우기네요. 사람 안 죽었으니까 강도질 아닌 거 아니냐고. 네가 피해본 것도 없지 않냐고. 2시간짜리 강도질이 어딨냐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총 들고 협박하면 그게 강도 아닌가요. 하다 하다 안 되니 자길 강도라고 부른 저에게 간첩 아니냐고 되려 성질을 부리네요. 며칠 전엔 CIA에 신고까지 넣었더라고요.


아, 재밌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어제는 이 강도가 성탄절 맞아서 자기 집에 목사님 불러다 예배를 드렸데요. 저는 예수님이 이웃을 사랑하란 자신의 말씀을 깜빡하고 그놈에게 벼락을 때릴까 싶어 두근두근했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요. 역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도 적당히 좀 하시지.


사실 제가 대단한 걸 바란 게 아니거든요. 그냥 저녁에 일 마치고 맛있는 음식이나 사 먹고, 좋아하는 아이돌 덕질하고, 돈 좀 모아서 어디 구축 아파트라도 마련해서 내 식구들이랑 세끼 밥만 안 굶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이 나라에서 그 정도는 가능할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남의 집에 총 들고 들어와서 입 닥치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얘기하는 게 가능한 나라가 되었으니 화가 나지 않겠어요. 그래서 요샌 예쁘고 좋은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아요. 뭘 먹어도 맛이 없고요, 잠도 못 잡니다.


제가 이상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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