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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보스 in 후쿠오카

by 백경

첫째 딸은 내가 40년을 살면서 만난 여자 중 최고의 예민보스다. 이번 후쿠오카 여행의 시작은 당연히 우리가 탄 항공기가 추락하리라 두려워하는 딸을 달래는 것으로 시작했다.


여행 첫날, 딸은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돈키호테(일본의 유명 잡화점)에서 구매한 면세품 봉투를 뜯어 젤리를 꺼내 먹었다. 원래 그러면 안 된다는 말에 일본서 꼼짝없이 범죄자가 되게 생겼다며 1차로 오열, 그런 건 아니고 소비세만 반환하면 된다는 말에 ‘소비세’란 게 수십만 원을 넘기는 벌금이라 지레짐작하고 2차로 오열했다.

둘째 날, 회전초밥 집에서 스시 좋아하는 둘째 덕에 접시가 삼십 개를 넘길 즈음 진저리를 치며 그만! 그만 먹어! 집에 돌아갈 돈도 없으면 어떡해! 일갈하기도 했다.


삼 일차 즈음 변화가 시작됐다. 자유여행이라 하루 만 보를 기본으로 걸었지만 힘든 기색이 없었다. 아빠 손을 놓고 본격적으로 후쿠오카 시내를 들쑤시고 다녀서 오히려 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일정이 꼬여 밥때를 놓쳐도 불만이 없었다. 땡볕 아래서 편의점 삼각김밥과 허물어지는 아이스크림을 맛있다고 먹어대는 걸 보며 평소의 너와는 너무 달라서 좀 놀랐다.


귀국 당일엔 맥도날드에서 아침식사를 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공항 내에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했던 맥도날드가 없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내게 딸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그 한 마디가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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