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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보다 며느리

by 백경

아내를 처음 봤을 때 처음 떠오른 사람이 울 아버지였다. 매사 불안한 사람. 걱정이 많아 어떤 일을 쉬이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 나와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꼴 보기 싫듯 비슷한 두 사람은 비슷한 서로를 맘에 들어하지 않았고, 결혼 초부터 나를 매개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아버지는 내 아내가 주눅 들어 있지 않고 뭔가에 도전하길, 내 아내는 울 아버지가 세상 고민 다 끌어안고 사는 걸 그만두길 바랐다. 내가 거울에 비친 나를 두고 나무라는 격이었다.


결혼하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두 사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불안하고, 걱정 많고, 인생을 뒤집을 만한 도전에 대해선 꿈을 꿀 뿐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는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나를 매개로 쓰긴 하지만. 변화를 주문하는 대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에미 허리는 좀 어떠냐. 아버님 감기는 좀 어떠시대. 그럴 때 나는 와라락 쏟는다. "아니, 직접 전화를 하시라고요들!"


어제는 아부지 댁에 아내와 애들 데리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회 한 접시, 통닭 한 마리 들고서. 며칠 전 엄니가 캐나다 여행 가는 바람에 아부지 혼자 9박 10일 집에서 혼자 지내는 게 나는 좀 부러워서, "아부지,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좋으시겠어요." 말했더니 아내가 대신 항변했다. "그게 좋을 리가 있어? 혼자서 뭐 해. 쓸쓸하지." 그리고 덧붙였다. "아버님, 저희 식구 오늘 하루 여기서 자고 갈까요?" 그제야 빙그레 웃으시는 아부지.


술 안 드신다더니 소주 한 병 까고, 모자라서 한 병 더 깐 걸 보면 어지간히 기분 좋으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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