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들, 철학을 톺아보다. No.29 2024.9.1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세계관은 불교의 유입으로 크게 흔들렸다.
중국 밖에도 고도로 발달된 사유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당시는 진시황의 분서로 인해 남아 있는 유교 경전이 많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유교 경전의 해석 방법도 변화시키고 경전의 모든 것을 관통하는 원리를 추구하는 등
유교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움직임이 있었다.
특히, 노장 사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읽고자 하는 움직임은
근본적인 원리의 탐구를 지향하는 현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켰다.
이번 장에서는 현학의 영웅인 왕필이 장자의 구절을 이용하여 남긴
“언어와 상징적 기호를 잊지 않으면 성인의 의도를 다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유한한 언어나 상징적 기호로 성인이 사유한 모든 의도를 다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지 않은 언어를 최선을 다해 사용함으로써
무한한 성인의 깨달음과 가르침을 드러내야 한다.
기록된 경전들이 결코 무가치한 것은 아니나
신의 말이나 뜻이 경전 속 언어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언어와 상징으로 표현된 것을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효에 있어서 유교 ∙ 불교 ∙ 도교는 공통적으로 그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효를 가장 강조하는 유교는 부모와 조상에 대한 공경, 섬김 등 육체적 봉양을 중시했고,
불교는 부모가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할 수 있도록 정신적 구원에 이르도록 돕고자 했다.
도교도 효로써 섬김을 다하라는 내용을 경전에서 강조하였다.
특히, 중국에서는 시대와 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효에 대한 개념이 서로 융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유교를 사회적 질서의 근본으로 삼아
부모가 살아 있을 때에는 유교적 예를 다하고 사후 돌봄에 있어서는
불교와 도교를 통해 그들의 영혼과 자연과의 조화를 염두에 두는 풍습이 생기지 않았을까.
서양 철학이 고대 그리스 철학을 중심으로 기초를 다지고 있을 때
유교 ∙ 불교 ∙ 도교로 대표되는 동양 철학도 이렇게 그들의 방식으로
윤리적이고 형이상학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