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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Dec 05. 2019

토끼굴에서의 시간은 바깥과 다르게 흘러간다

생각의 속도와 상대성 원리

나는 요즘 아침마다 토끼굴에 들어가는데 재미를 들였다.


예전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쓴다는 겸업 작가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대단하다. 어떻게 그 시간에 일어날 수가 있지?’ 하는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나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아침 시간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한 달간의 ‘내 방 여행’에서 돌아온 어느 날, 한겨울의 한강변으로 나가 걸었다. 마치 오랜 외국 여행에서 갓 귀국한 사람처럼 서울의 모든 것이 낯설게 보였다. 한 선배 작가는 장편 출간에 즈음하여 가진 한 인터뷰에서 소설을 탈고하고 밖으로 나오니 자기만 겨울옷을 입고 있더라는 말을 했다. 매일 출근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안다. 작가는 대체로 다른 직업보다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 우리들의 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로 다녀오는 여행이다. 그 토끼굴 속으로 뛰어들면 시간이 다르게 흐르며, 주인공의 운명을 뒤흔드는 격심한 시련과 갈등이 전개되고 있어 현실의 여행지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서)


토끼굴.


요즘 나의 토끼굴은 회사 근처 카페다. 소설가의 말처럼 현실의 여행지보다 훨씬 드라마틱 하진 않지만 이 시간만큼 충만하고 재밌는 시간이 없다. 나의 망상을 아무렇게나 글로 써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글을 읽기도 하고. 손가락이 끌리는 대로 인터넷 검색을 하기도 하고... 시간에 길이뿐만 아니라 깊이가 있다면 같은 시간이더라도 토끼굴에 들어가 있는 이 아침 시간만큼은 그 깊이감이 다르다.


서로의 시간은 서로 간의 이동 상태에 따라 변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지 않다. 모든 시간은 상대적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한창 육아에 열을 올렸던 지난 여름, 나는 아침마다 큰 아이 유치원 버스 시간에 맞춰 세 아이 등원 준비를 하느라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등원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집에서 나가야 하는 마지노선 시간을 딱 2분 남기고 나는 막내가 기저귀에 똥을 싼 것을 발견했다. 기저귀를 갈고, 엉덩이를 씻기고, 옷을 입혀 나가기에는 2분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기에 나는 잠시 기저귀를 갈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한번 해보지’ 하며 기저귀를 갈기 시작했다. 보통 2분 내에는 절대 끝낼 수 없는 프로세스인데, 나는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 기저귀를 갈았고 소머즈급으로 뛰어 아이들을 무사히 등원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유튜브로 ‘상대성 원리’를 검색해 보았다. 남들이 보면 웃을 얘기지만 그 날 아침 기저귀를 가느라 숨 가쁘게 움직였던 그 2분의 시간 동안 나는 나의 시간이 실존하는 시간보다 미미하지만 조금 느리게 간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유튜브 강의 영상을 여러 개 보고 난 이후의 결론은 이러했다. 내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여 나의 관성력, 즉 중력이 강해졌을 때 나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나의 움직임이 중력이 강해질 정도로 빨랐을 리는 만무한데... 왜 그때 나는 시간이 평소보다 느리게 간다고 느꼈을까?


생각의 시간이라면 어떨까?


작가들이 자신만의 토끼굴에 들어가 집필을 하고 나오면 바깥세상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고 느낀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할 때 생각의 중력이 강해져 시간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고 말이다. 물리학은 잘 모르지만 빛에도 입자가 있고 속도가 있다는데 뇌파에도 입자가 있어 집중력이 높아질 때 속도가 빨라진다면 시간의 상대성 원리가 적용될지도 모를 일이다.



뇌파(腦波, 영어: brainwave) 또는 뇌전도(腦電圖, 영어: electroencephalography, EEG)는 신경계에서 뇌신경 사이에 신호가 전달될 때 생기는 전기의 흐름이다. 심신의 상태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나며 뇌의 활동 상황을 측정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출처 : 위키피디아)



오늘도 나의 망상은 이상한 결론으로 나를 이끌고 갔다.

이제 곧 토끼굴에서 나갈 시간이다.

오늘도 토끼굴에서의 모험은 꽤 다이내믹하고 재밌었다.

시간을 잊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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