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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한 Apr 22. 2022

2인조, 그리고  ISFJ.

내 안의 또 다른 나. 잘해주자 좀.


회사를 옮긴 후, 흔히 말하는 워라밸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다시 손에 책을 쥐고 있다.

일에 치여서 살 때는 책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충동구매의 대상이었는데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면서 이제야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남들이 하는 건 왠지 다 해봐야 하는 성격에 주식, 부동산, 자기 계발서 등 여러 종류의 책을 사서 거실 책장에 상장처럼 진열해 두었지만 도무지 손에 잡히지는 않는 대신,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이자 에세이 작가인 이석원의 에세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읽고 있다.


작가님에게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글이 화려하고 매력적이어서 좋아하고 빠져든 것은 아니었다.

"아, 내 인생만 시궁창이 아니구나."

단지 이 이유였다. 작가의 글을 통해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고, 그 동질감은 결코 좋은 방향이나 유쾌함과는 거리가 먼 구질구질하고 어두운 인생에 가까웠다.


<2인조> 이석원

[2인조]는 가장 최근에 나온 그의 에세이로,

"우리는 날 때부터 누구나 2인조다"

라는 말도 안 되는 부제를 가진 책이기도 하다.

(누구나 쌍둥이라는 건가...)


머리가 나쁜 탓인지 책을 반이 넘게 읽을 동안 왜 2인조를 이야기하는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 의미를 깨달은 건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MBTI를 보면서 였다. 



ENTP: ...

ENFP: ...

.

.

 ISTP: ...

ISFJ: 남한테 잘하고 나한테 못함.

ISTJ: ...



(나는) 남한테 잘하고, (평생 함께 갈 2인조인) 나한테는 못함

아 그래... 난 늘 나한테는 잔인할 정도로 완벽을 요구했고, 외부의 위협에 벌거벗은 채로 내놓았으며, 그 와중에는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자 부단한 노력을 해왔었지. 

내 마음이 

"야 그건 아닌 거 같아..."

"나 좀 힘들어"

"좀 찜찜한데?"

라고 말하면 마치 남일처럼 무시하며 타인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자, 환심을 사는데만 몰두해왔다.


작가가 말하는, 태어날 때부터 내 옆에 있던 또 한 사람은, 

내가 배려해주고 편안하게 해 주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줘야 할 또 다른 나였다. 

왜 그걸 몰랐을까.





심리상담을 받다 보면 숙제를 종종 받는다. 이렇게 해보세요, 저렇게 해보세요.

가장 어려운 숙제가 

1) 아무 이유 없이 카페에서 종업원에게 퉁명스럽게 해 보거나, 

2)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화풀이해보라는 숙제였다.


언뜻 들어서는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나란 사람은 내가 종업원 인양 고운 하이톤의 목소리로 주문하고, 한강은 커녕 뺨 맞은 종로에서도 화못내는 성격이라 반드시 필요한 숙제였다.

나에게 위협이 다가왔을 때, 누군가 나에게 함부로 했을 때도 화를 내본 적도 없고 뺨을 때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물론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성공한 적은 없다.



나 같은 분들을 위한 한 가지 숙제 더 이야기하자면,

"음... 요거 좀 찜찜한데?"

"이건 아닌 거 같은데"

라는 생각, 혹은 그 정도 명확하지 않더라도

"어........?"

라는 느낌이라도 들면, 


1) 그 느낌, 그 생각이 뭔지 조금 더 구체화해보려고 노력하고

결국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귀 기울여 보라는 의미 

(내 생각엔 가장 중요. 시작이 반이다.)


2) 그에 따른 액션을 취해보고

뺨을 때리든 욕을 하든 뭐라도 해보라는 의미. 가만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3) 상대의 피드백을 받아보라

해보면 알겠지, 어느 선까지 내가 해도 되는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화풀이하면 한강물에 빠져 죽을지도 모르고, 종로에서 욕을 하면 그 정도는 봐주더라는 것을 직접 경험해보고 본인 나름의 선을 찾으라는 의미.


남은 인생이라도 잘 지켜주겠어. 그럴려고 지금 들이는 돈과 시간이 어마어마한건 아니...이친구야.

p.s 선생님 죄송합니다. 이러라고 숙제 주신 건 아닐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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