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처럼 깊고 막걸리처럼 톡 쏘는 이색 전통공연

힙해지는 한국 공연의 맛과 멋

by 조인선


전통예술의 풍미와 감동을 술에 비유해달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묵직한 바디감이 느껴지는 중견 예술인은 '와인'으로 풋풋한 신진 예술은 막 걸러진 '막걸리'에 비견되지 않을까?

중견과 신진 예술인, 그리고 전통을 즐길 준비가 된 관객들을 위한 색다르고 맛도 달랐던 두개의 공연을 소개해 본다.


빈티지의 의미

와인 애호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단어 '빈티지(vintage)'는 라틴어인 'vinum(=wine)'과 'demere(=take off)'가 합쳐진 단어다. 포도의 수확연도를 나타내는 단어로 고급 와인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빈티지는 와인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빈티지 의상, 가방 등은 구하기 어려운 '한정판 명품 의류'의 뜻으로 통하고, 결혼 예물 업체들은 '빈티지 링', '빈티지 웨딩드레스' 같은 용어를 사용해 비싼 값을 매긴다. 사람들은 오래되고 희소성 높은 빈티지라는 단어가 붙은 장신구, 가구, 책, 차, 악기 등에 기꺼이 높은 비용을 지불한다.


사람들이 빈티지라는 단어에 그토록 열광하고 신뢰하는 이유는 시간과 환경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가치를 더하는 것은 빈티지뿐만이 아니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10만 시간은 뛰어 넘어야 중견 예술인 반열

예술 역시 켜켜이 쌓인 예술인들의 시간 속에서 완성도 높은 기교와 작품이 탄생한다. 달인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적어도 1만 시간 이상은 투자해야 한다고 하지만, 예술인은 곱하기 10배 이상의 노력을 한다. 20여 년간의 활동을 거쳐 40대만 되어도 10만 시간을 훌쩍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어려운 전통예술의 수익 구조

하지만 전통예술의 특성상 공연을 통한 수익구조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보니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하기 어렵고, 대부분의 전통예술인이 명인의 대열까지 십수 년을 버티며 올라서기는 쉽지 않다. 또한, 대부분의 지원 사업이 신진예술가나 유망 예술가에 대한 지원으로 집중되어 있어 40~50대 전후의 프리랜서 중견 예술인에 대한 지원 사업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활동 기반이 취약한 중견 예술인 공모를 통한 지원 사업 수혜 대상 확대하기 위해 전통예술계에 새로운 공모사업이 생겨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전통예술계에 활력을 더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활동 경력 15년 이상, 40대 이상의 중견 전통예술인을 위한 ❬광무대 전통상설공연❭을 추진한 것이다. 그래서 2021년도에 진행한 공연을 소개해 본다.

광무대.JPG 광무대 공연 모습
전통공연창작마루 광무대

광무대(1907~1930)는 동대문 안 전기철도 기계창을 고쳐 극장으로 탈바꿈시킨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극장으로 국악 공연사에서 큰 비중을 갖고 있다. 명실상부 근대화 시기에 '국악과 연희 상설공연장'으로 전통예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상징적인 공간이 2020년 '전통공연창작마루'라는 이름으로 100여 년 만에 광무대 옛터에서 개관했다. 작년 3~4월에 공모를 통해 15명의 중견 전통예술인이 선발돼 9월 1일부터 10월 27일까지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전통공연창작마루 광무대에서 ❬광무대 전통상설공연❭으로 선정된 공모작을 올렸다. 중견 전통 예술인들이 긴 세월 정성껏 갈고닦은 기량을 마음껏 발산하며 인생 최고의 빈티지로 기억되는 '인생공연'으로 볼 수 있다.


광무대에서 진행된 공연



톡톡튀는 프리미엄 막걸리와 닮은 신진 예술인

신진 예술인들의 풋풋한 열정은 마치 프리미엄 막걸리와 닮았다. 막걸리는 쌀과 누룩으로 빚어 '막 걸러' 낸 신선한 술이라는 뜻이다. 과거 막걸리는 중장년층이 즐겨 마시던 올드한 전통주라는 느낌이 강했지만, 최근 지역적 특성과 특별한 브랜딩을 강조한 새로운 막걸리가 대세로 떠올랐다. 이른바 프리미엄 막걸리다.


특히 새롭고 다양한 것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니즈 변화와 웰빙 열풍, 저도주 홈술·혼술에 대한 선호도 증가 등으로 인해 최근 여성들과 20~30대 MZ 세대로부터 큰 지지를 끌어내고 있다. 막걸리가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재현하며 동시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풍류의 매개'가 됐기 때문이다.


신진국악실험.JPG
신진국악실험무대.JPG
신진국악실험무대


MZ 세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국힙(國-HIP)'트렌드로 떠오른 것은 막걸리뿐만이 아니다. 현대판 풍류를 리드하며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대세로 떠오른 또 다른 장르가 있다. 바로 신진 예술인들이 주축이 된 전통공연예술이다. 신진 전통예술인의 다양하고 실험적인 무대를 선보일 수 있는 명실상부한 우리 전통공연예술의 등용문 ❬신진국악실험무대❭는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신진 예술인들을 지원해 대중과 소통의 첫걸음을 뗄 수 있게 한다. 2015년에 시작해 지난 6년간 122개 신진 예술인을 발굴했다. 선정된 예술인은 멘토링 및 레퍼토리 개발, 단독 공연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무대는 신진 전통예술인들에게는 'NEXT 이날치'를 꿈꿀 수 있는 데뷔 무대라고 할 수 있다.


❬2021 신진국악실험무대❭는 오는 작년 7월 31일부터 10월 29일까지 한국무용, 기악, 성악 세 부문으로 나누어 총 16개의 공연으로 열었다. 가장 먼저 한국무용이 '제11회 별의별춤 페스티벌'로 매 주말 soo_Comp, The 공방, 코리안댄스 컴퍼니 결, 댄스프로젝트_soodam, (사)무트댄스, 이컨시어스 댄스프로젝트가 공연으로 진행했다.


신진 무용가들의 독창적인 창작 역량과 청춘을 품은 춤꾼들의 예술혼까지 모두 엿볼 수 있는 무대로 다양한 색과 결을 가진 다양한 춤도 등장했다.


오드리의 신진국악실험무대 개화

기악 부문은 신진 예술인들이 음악적 역량을 활짝 꽃피운다는 '개화'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다.(영상 2)

자체 개량 악기부터 동서양의 조화와 국악의 재해석 등 신진 예술인들의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돋보이는 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이번 공연에는 오드리, 윤은화, 고니아, 그루브앤드, 그레이바이실버가 참여했다.


성악 부문은 10월 19일부터 29일까지 '청춘가악別曲(별곡)'이란 이름으로 적벽, 소리화, 엄지, 도담, 황지영이 참여하는 이번 공연은 전통 성악을 바탕으로 다양한 실험무대를 준비했다.


적벽가와 거문고의 색다른 만남부터 서도소리와 정가, 민요를 기반으로 한 작품 등 신진 소리꾼들의 힙한 무대였다.


전통예술 공연이 많아지기를 기대하며

이러한 공연히 더욱 활성화되고, 우리 전통예술을 하는 예술가, 음악가들의 무대가 더욱 커지길 기대해 본다.

곧 그리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아카데미 4관왕의 기생충, 빌보드 차트 1위의 BTS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통예술 디렉터 조인선

한국예술종합학교 아쟁 전공. 국내 최초 전통예술플랫폼 (주)모던한(Modern 韓)을 운영하고 있다. 문체부 자문위원이며 예술경영지원센터 편집위원과 한국관광공사 코리아 유니크베뉴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케이콘 2016 프랑스 전시 기획, 한국-인도 수교 50주년 기념 공연 기획 등 다양한 한국 전통예술 우수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글로벌 시장에 알리고 있다. 최근에는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도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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