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풀들
밤새 비가 내렸다. 아침에도 비가 내린다고 쓰고 싶었다. 마음속으로는, 굵은 빗줄기 때문에 나갈 수 없다는 핑계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은 일찍 떠졌고, 나는 ‘하기 싫다’는 마음이 떠오르기 전에, 얼른, 비 맞은 왕벚나무의 모습을 궁금해하기로 한다.
빨아 둔 운동복을 건조기에서 꺼내, 주섬주섬 입는다. 오늘은 미팅이 두 건 있네. 둘 다 시작 전 프로젝트라, 몸뿐 아니라 머리도 함께 핑핑 돌아간다. 팔다리를 가볍게 풀며, 휴대폰을 가져갈까, 말까 또 고민한다. 비가 모처럼 내렸으니, 촉촉할 산책로에서 발견하게 될 새로운 모습이 있을 거야. 오늘은 챙겨보기로 한다.
오렌지 색이 좀 더 들어간 핫핑크 색 스판 주머니를 허리에 메고, 첫걸음을 떼자마자 나는, 역시 너를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한다고 후회를 한다. 어깨부터 등을 거쳐 허리까지 돌려 메 보기도 하고, 허리춤에 차 보기도 하지만, 200그램 가까이 덜렁 거리는 저 물체는 균형을 깬다. 등에 멜 때는 책가방을 멘 것처럼 어깨가 좌우로 흔들려 허리 중심을 잡기 힘들고, 허리에 맸을 때는 왠지 다리가 무겁다. 과연 스마트폰은 스마트한가.
산책로를 들어서자마자 하늘로 가지를 치켜든 조팝나무 가지가 반긴다. 저걸 ‘하늘로 고개를 든’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자꾸 ‘하늘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든’ 혹은 ‘하늘로 가운데 손가락을 곧추 세운’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다. 소나무 꽃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한다. 얘네들, 다 질풍노도의 시기네.
오늘은 천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씩씩하다. 나도 따라 씩씩하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나저나, 올해 가장 큰 목표가 ‘재미있는 사람이 되자’였는데. 나는 그걸 잘하고 있는 걸까? 큰 조카는 일찍이 큰 이모를 ‘진지충’이라 정의한 바 있고, 남학생 중 막내 조카는 ‘큰 이모는 교과서 같다’고 표현했으니, 가감 없는 그 시각이 정확하리라. 큰일이다. 유머, 과연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달리는 동안, 왕벚나무 앞에 도착했다. 이 녀석. 오늘은 노란 잎 하나를 떨구어 준다. 그래, 이 노란 잎은 오늘 처음 보는 잎이야. 6월 11일의 왕벚나무 잎은 허리춤에 늘어진 핑크색 스판 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금계국이 꽃이 지기 시작했고, 개망초는 삼베 한복처럼, 소박한 하얀 꽃을 피운다.
길가의 풀은 나만큼 키가 자랐다. ‘이름 모를 풀들’이라는 말처럼 게으른 표현이 어디 있느냐며 호통치셨던 스승에 대한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며, 최소한 그 이름을 알아내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그것이 작가의 기본자세라고 꾸짖으셨다고. 나는 들판의 풀을 볼 때마다 ‘이름 모를 풀들’이라는 표현이 떠오르며, 혼나는 기분이다. 하나씩 알아가야지. 세상 모든 일을 어떻게 한꺼번에 다 알겠어. 나는 그냥 ‘풀들’이라고 쓴다.
오늘 왕벚나무가 떨어뜨린 노란 잎을, 엄마가 성경책에 끼워 넣던 단풍잎처럼 책 사이에 끼워 넣는다. <타이탄의 도구들>. 핑크색 동그라미와 노란 사인펜으로 줄 쳐져 있는 책엔,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결국 모든 아이디어는 ‘이야기’를 위해 존재한다. 큰 성공을 거둔 인물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가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