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던 한여름이었다. 오후 세 시쯤 뙤약볕 아래 있던 차 안은, 용광로에 들어가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마침 미세먼지도 많은 날이었다. 미세먼지는 몸에 나쁘니까 마시면 안 돼. 환경에 나쁘니까 에어컨도 켜면 안 돼. 하는 수 없이 창문을 닫아걸고, 시동을 건다.
나를 찜통에 밀어 넣고 견디는 극기훈련이 시작되었다. 운전한 지 30분쯤 지났나.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이러다가 정신을 잃어, 사고라도 내면......? 지금 죽는 것보다, 나중에 죽는 게 낫잖아. 나는 네 개의 창문을 모두 내리고, 머리카락을 바람에 펄럭이며 미세먼지 가득한 공기를 마신다. 살 것 같다.
오늘 아침도 미세먼지가 많은 편이다. 활짝 열어 놓은 창 사이로 밀려 들어오는 여름 산의 향기가 신선한데, 공기청정기가 신나게 돌아간다. 하늘도 새파란데... 나는 잠깐 망설인다.
<숨결이 바람 될 때>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폴 칼라니티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했고,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문학, 철학, 과학과 생물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이 모든 학문에 교차점이 있는 의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과 의학의 역사 및 철학 과정을 이수 한 뒤 예일 의과대학원에 진학해 의사의 길을 걸었다. 스탠퍼드, 케임브리지, 예일. 폴 칼라니티는, 한 곳도 가기 힘든 대학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서른여섯에 암이 찾아온다. 치료를 시작한 후 안정세에 접어들었을 때, 그는 다시 수술실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게 바로 나니까. 그는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기록한다.
미세먼지 많은 날, 달릴 것이냐 말 것이냐.
교통사고로 오른쪽 팔꿈치의 관절과 오른쪽 무릎의 관절이 삐끄덩 거렸다. 엑스레이를 찍으면 깨끗하지만, 무거운 것을 들 때나 많이 걸은 날, 시큰거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러니, 자꾸 그쪽은 안 쓰게 되고, 안 쓰게 되고. 점점 약해졌다. 내 몸은 생물체이다. 사용하면 미토콘트리아가 자라고, 시냅스가 연결된다.
가끔 생물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나도, 폴 칼라니티처럼, 그냥 달리기로 결심한다. 그게 바로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