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 실내 식물이 200여 개와 함께 살게 되었다.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나는, 식물도 같은 기준으로 고른다. 관리가 편하고, 공기정화능력이 뛰어난. 외모로 보면, 실루엣이 큰 나무에 마음을 빼앗긴다. 예를 들자면, 떡갈 고무나무, 인도 고무나무, 아레카야자, 미지나타 류가 있다.
작은 초본 류 중에서는 동그란 잎을 손바닥처럼 펴고 바람에 맞춰 람바다를 추는 필레야 페페로미오이데스가 가장 좋다. 하지만, 해피트리와 녹보수, 벤자민 고무나무처럼 잎이 작고 늘어지는 나무엔 시선이 덜 머무른다.
해피트리와 녹보수에는 잎 표면에 동글동글한 수액이 맺힌다. 그 작은 방울에 혀를 대 보면 달큼한데, 문제는 거기에 있다. 달콤한 것은 나도 좋아하지만, 벌레들도 똑같다! 그래서 깍지벌레, 솜 깍지벌레, 개각충 같은 벌레들이 잎에서 자주 보인다.
잎을 물로 자주 씻어가며 키워야 하는데, 화분에 담아 마루 위에서 키우면서 매일매일 잎을 닦아 주는 건, 스스로에게 주는 벌이나 다름없다. 나를 사랑하는 나는, 잎을 닦지 않기로 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선 해피트리와 녹보수에 벌레가 잘 생긴다.
흰색 솜 깍지벌레를 달고 사는 나의 비실비실한 해피트리는, 재작년 여름에도 잎마다 깍지벌레가 뒤덮었다. 한창 물이 오른 나무의 수액을 앞에 둔 솜 깍지벌레는, 닦아도 닦아도 나타나는 충해 전술을 폈다. 약이 오른 나는 해피트리의 잎을 모두 잘라 깍지벌레의 밥을 없앴을 뿐만 아니라, 잎에 붙은 흰색 솜 깍지벌레도 함께 소각용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다행히 해피트리는 팝콘처럼 새 잎을 틔우며 살아났지만, 지난겨울, 또 솜깍지 벌레 대습격을 받아 무참할 정도로 가지가 비쩍 말랐다.
봄이 되길 기다려, 밖으로 요양을 보내 주었다. 하늘과 바람과 비와 해는 생명을 키운다. 밖에서 바람과 비를 맞은 지 한 달도 넘었는데, 해피트리는 여전히 새 잎을 틔우지 못한다. 잔가지를 부러뜨려보니, 여전히 말라 있다. ‘이제 포기할까?’ 싶다.
"여보, 얘는 이제 안 되겠어. 주말에 정리해야 될 것 같아." 말하면서, 그래도 뭔가 방법은 없을까 기억을 뒤적인다. 오경아 작가의 책에서, 마른 나뭇가지는 두들겨 주면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고 쓰여 있던 게 기억난다. 마침, 내 손엔 수수를 다듬은 억센 가지가 한 움큼이다.
해피트리 머리 끝을 손으로 잡고, 수수 한 다발을 다른 손으로 가득 움켜 주고, 해피트리 줄기를 때린다. “아우 야, 이렇게 비실거리면 어떻게 해. 살아야지. 밖에서 바람하고 비를 맞으면서도 이렇게 비실거리면 어떻게 해.” 미운 정인지, 고운 정인지 모를 복잡한 심정으로 줄기를 한참 마사지해 주었다.
지난주, 해피트리에 개미만 한 자주색 새 잎이 몇 개 올라오는 걸 발견했다. 원래 녹색 잎인데, 분명 자주색 새잎이었다. 돌연변이인가. 식물이 혹독한 조건을 견디면 변이가 일어나기도 한다 들었다. 다른 잎들도 자주색으로 날까? 초록색으로 바뀔까? 궁금해진다.
그냥 둘까...? 아니, 이미 내 마음은 정했는데, 새 잎이 나니 좀 더 기다려 주어야 하나?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하지만, 다른 나무 가지는 새 잎이 감감무소식이다. 갈등된다. 그냥 마음 정한 대로 하기로 한다. 식물은, 거절을 잘 못 하던 나를 단호하게 바꾸고 있다. 그러던 사이, 비가 쏟아진다. 다음으로 미룬다.
오늘 아침, 달리고 와, 스트레칭을 하며, 해피트리 앞에 선다. 오늘은 정리해야겠다 생각하며 오른쪽 무릎을 접고 발을 오른쪽 엉덩이 쪽으로 끌어당긴다. 왼손을 들어 하늘로 뻗는데, 해피트리가 눈에 들어온다. 응? 잎이 저렇게 많았나? 고새, 가지마다 해피트리 새 잎이 실컷 돋았다. 잎도 두툼하게 튼실하다. 그중 한 가지엔 새 가지가 떼로 올라왔다.
하마터면 내가 살아 있는 녀석을 분질러 버릴 뻔했구나. 시작과 끝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갑자기 솟아나는 생명처럼, 우연이 있으니 또 삶은 재미있는 게 아닐까. 오늘 아침엔 부슬비가 내린다. 하늘과 바람과 비와 해를 맞은 나도 쟤처럼 새 잎을 틔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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