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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Sep 01. 2020

하고 싶은 마음이 중요해

  달리기를 하면서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달리려 하면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버린다는 것을요. 강력한 의지로 다리를 움직이려면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갑니다. 근육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로 달리면, 허리가 뻐근하기도 하고, 무릎이 시큰거리기도 합니다.

  달리기만 그럴까요. 그동안 강력한 의지로 해냈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사실은 등살, 뱃살 3층, 허릿살을 억지로 밀어 넣어 잠근 바지나 다름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 급하게, 어떻게든, 가성비 뛰어나게 하는 일은 위 속으로 급하게 밀어 넣는 차가운 김밥 같아서, 꼭 탈이 납니다.

  물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처럼, 꾸준한 훈련으로 몸과 마음을 단련한 상태에서, 어쩌다 한 번, 아주 결정적인 중요한 순간에 정신력으로 몸을 오버클럭 해 최고치를 끌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번 그럴 순 없습니다. 그게 믹서라면 엔진이 과열되어 멈출 것이고, 그게 전기레인지라면 퓨즈가 녹아버릴 거예요.  

  차라리, 아마추어에겐 1킬로미터 지점의 능수버들과 1.5킬로미터 지점의 벚나무, 2킬로미터 지점의 소나무 군락의 향기를 그리워하는 편이 달리기 훨씬 좋았습니다. 궁금하니까 계속하게 되거든요. ‘호기심’은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매일 보는 나무들이 궁금하면 뭐 얼마나 궁금할까요. 매일매일 보면 뭐가 다른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아주 세심하게 관찰하면 아주 조금 다른 점이 보입니다. 새로 자란 나뭇잎은 아기처럼 보송보송합니다. 능수버들은 잎이 땅으로 늘어지는데, 어느 정도의 새 잎이 있으면 땅과 닿을지 상상해 보면 금세 1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습니다.

  제 친구 버드나무를 지나치면 넓어지는 경계 구역 풀들을 관찰합니다. 오늘은 천과 산책로 사이의 길을 깨끗하게 베어 진 걸 발견했어요. 저는 풀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습니다. 그 향기는 트뤼플 버섯으로 향을 낸 오일로 구운 최상급 송아지 안심 스테이크보다 더 고급스럽게 느껴집니다. 자른 풀 부스러기가 덮은 들판에 벌러덩 누워 풀향기가 사라질 때까지 누워 뒹굴 거리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언덕을 지나고 있고, 그곳에선 벚나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벚나무와는 늘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합니다. 제 친구는 덩치가 작아서 더 마음이 갑니다.

  달리는 길에 만나는 여러 나무들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마음이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무에게도 인사를 하는데 사람에게 못 할까 싶어, 얼굴이 낯익은 분들께 인사하기 시작했어요. 혹시 방해가 될까 싶어, 딱 인사만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요.

  늘 우산을 갖고 허리를 세워 꼿꼿하게 걸으시는 할머니와 미소가 귀여운 여성분께 “안녕하세요!”하고 고개를 꾸뻑했습니다. 그분들께서도 환한 얼굴로 제게 인사를 나누어 주십니다. 노란 유모차를 타고 나타나는 두 살짜리 아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올봄 만났을 때만 해도 아가였는데, 그새 말귀를 알아듣는 아이가 되었어요. “안녕! 일찍 일어났네!”라고 인사를 나누며, 발을 살짝 어루만집니다. 어머니께서는 아가였던 아들 얼굴을 보며, ‘꽃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꽃은 인꽃’이라 말씀하셨어요.

    아름다움이 가득한 산책로는 나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합니다. 잘 있나 궁금해서 달리러 나갑니다. 이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나 봐요. 오늘은 1킬로미터 최고 기록이라고 나이키 러닝 앱이 친절하게 알려 줍니다. 강력한 의지보다 더 강력한 햇빛을 찾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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