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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Sep 29. 2021

다대기를 푸는 방법

순댓국에 대한 기억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어렸을 적 나는 아버지와 단 둘이 있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회사 일로 늘 바빴고 주말에나 잠깐 얼굴을 보는 정도였다. 아버지와 단 둘이 있어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그런 상황이 생기면 어떡해야 할지 걱정을 하기도 했다. 세상에. 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상황을 걱정하는 어린아이라니. 아버지가 근엄하시긴 해도 점잖고 상식적인 분이었는데도 그때의 나는 그랬다.


아버지와 단 둘이 있었던 날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나는 이마에 좁쌀 같은 여드름이 잔뜩 나 있었고, 우울증으로 몸이 쇠약해져 요양을 간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마침 아버지가 엄마에게 간다고 해서 나는 따라나섰다. 형은 학업 때문인지 가지 못했고, 형을 챙겨줘야 해서 할머니도 집에 남아있었다. 결국 아버지와 나, 단 둘이 동행하게 되었는데, 그때가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와 내가 단 둘이 있었던 첫 번째 날이었다.


가는 동안 차 안에서 아버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를 만나고 나서도 무슨 대화를 했는지 선연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다만 엄마가 너무 말라있었고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는 것은 생각난다. 때문에 어린 내가 너무 슬퍼했다는 것, 혼란스러워했던 것, 그런 감정들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지난 시간들과 섞이거나 녹아들지 못해 그대로 잔여물처럼 감정의 밑바닥에 남아있다. 조금만 흔들어도 그때의 그 감정이 떠올라 괴롭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평생을 지독히도 따라온다.


병문을 마치고 나온 아버지는 내게 밥을 먹고 가자고 했다. 나도 배가 고팠는지, 마음이 헛헛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아버지도 같은 심정이었겠지.


우리가 간 곳은 근처 순댓국집이었다. 아버지는 순댓국을 먹어본 적이 있냐고 물어봤다. 못 먹어봤다고 하니까, 먹을 만할 거라면서 나를 데리고 가게로 들어갔다. 뜨거운 김과 구수한 냄새가 가게 안에 자욱했다. 주인은 순댓국 두 개를 주문해서 받아갔고, 나는 다른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힐끗거렸다. ‘국밥이구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아버지는 돼지 국물에 순대와 돼지고기가 들어간 국밥이 나올 거라고 설명해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순댓국을 받아 든 나는 이 괴상하게 생긴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서 잠시 난감해했다. 그때 아버지가 내 앞으로 들깨와 후추, 다대기를 내밀었다. 아버지는 마치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는 것처럼 먼저 시범을  보이셨다. 순댓국에 들깨를 한 숟가락 넣고, 후추를 톡톡 뿌리고, 마지막으로 다대기를 반 숟가락 정도 퍼서 국물에 넣은 다음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서 다대기를 국물에 풀었다.


“매울 수도 있으니까 좀만 넣고, 입맛에 맞으면 더 넣어도 돼. 들깨도 먹어보고 더 넣고.”


비밀 레시피를 배우는 수강생처럼 나는 아버지가 알려준 대로 들깨와 후추, 다대기를 순댓국에 넣었다. 아버지는 순댓국에 다대기를 제법 깔끔하게 푸셨는데, 나는 할 줄을 몰라서 순댓국에 숟가락을 넣고 사정없이 뱅뱅 돌렸다. 빨갛게 된 순댓국을 아버지와 나는 먹기 시작했다. 대화는 하지 않고 두 사람은 마치 싸운 것처럼 먹는 것에만 열중했다. 나는 처음 먹어보는 순댓국이 너무 맛있어서 말을 잊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을 넣는 것처럼 순댓국에도 깍두기 국물을 넣으면 더 시원하고 맛있다고 알려주셨다. 나는 또 아버지를 따라 했다. 그게 더 맛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아버지를 따라 하는 게 좋았기 때문이었다.


 후로 아버지와  둘이 밖에서 식사를 해본 적은 없다.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그럴 일이 없었다. 엄마가 함께 하거나, 형이 동석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둘이 식사를  것은 그날이 마지막이다. 대신 나는  후로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종종 순댓국을 먹곤 했다. 야근을 해서 배부르게 먹고 싶거나, 회사 일이   풀려서 소주가 생각나면 혼자 가게에 가서 순댓국을 먹었다. 이제는 그때의 아버지만큼 제법 다대기를  풀기도 한다.


하지만 작년에 아내가 건강 상의 이유로 비건(페스코)이 되면서 나 역시 채식 위주로 식사를 했고, 기후위기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고기를 완전히 끊게 되었다. 고기를 안 먹는 생활에 익숙해지면 고기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 순댓국 역시 이제는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다만 그때의 아버지가 내게 다대기를 푸는 방법을 알려줬던 게 가끔 생각난다. 어쩜 그게 그리도 특별하게 느껴졌을까.


자연스레 마꼬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린 시절 애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에 나는 육아휴직을 했고, 복귀 이후에도 육아를 계속하고 있다. 나는 마꼬와 단단하게 애착을 형성했고, 우리는 아마도 단 둘이 있는 시간이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나와 마꼬는 어떤 음식을 먹으면서 추억을 공유하게 될까. 나는 나를 따라 하는 마꼬를 보면서 어떤 기분이 들까. 아직 마꼬가 꼬꼬마여서 한참 후의 일이겠지만, 때가 오면 다대기를 푸는 방법쯤이야 천 번은 넘게 가르쳐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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