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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우 Feb 14. 2021

코로나 시국에, 빈방이 없는 파타야의 한 호텔

그랜드 센터 포인트 파타야 호텔의 위엄 

제가 요즘 태국 호캉스 재미에 푹 빠졌어요. 코로나로 타격은 한국보다 태국이 더 심해요. 외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나라 중 하나니까요. 외국인이 뚝 끊긴 태국 호텔은 그야말로 오늘내일하는 중이죠. 최근엔 파타야 호텔들이 정부에 폐쇄 명령을 부탁했어요. 폐쇄 명령을 받아야만, 해고된 호텔 노동자들에게 석 달간 정부 지원금을 받게 해 줄 수 있거든요. 이왕 닫을 거, 정부가 닫으라고 명령을 내려주는 게, 직원 월급이라도 건지는 유일한 방법이 된 거죠. 


방콕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지만 파타야는 저에겐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휴양지였어요. 바다가 엄청 깨끗한 것도 아니고(섬으로 들어가면 좋다고는 하지만), 질펀한 섹스 문화도 제 취향은 아니었으니까요. 호텔들이 죽지 못해 파격적인 할인 행사를 하니까 또 와보고 싶더라고요. 지금 아니면 이 가격에 머물 수도 없다. 게스트 하우스에서만 자던 가난뱅이 배낭 여행자에겐 절호의 기회인 셈이죠. 1박에 십만 원 가까이하는 그랜드 센터 포인트 파타야를 예약해요. 방콕 5성급 호텔도 이 가격에 얼마든지 자지만, 후기가 너무 좋더라고요. 그 까칠한 한국 사람들이, 극찬을 하는 이유가 궁금하더라고요.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호텔들도 이렇게까지 칭찬 일색은 아니거든요. 


파타야는 공동묘지가 다 됐더군요. 관광객이 사라진 파타야는, 더 이상 파타야가 아니었어요. 영화 세트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황량하더라고요. 문을 닫은 가게들, 드문드문  사람들과 개들, 찌는듯한 더위와 필요 이상의 적막함. 괜히 왔다 싶더군요. 호텔방에서 한 번 자 보겠다고, 유령 도시를 제 발로 찾아오다니. 방도 별로던데요? 십만 원이 적은 돈이에요? 이렇게 거금을 들였는데, 욕조도 없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이 까칠한 줄 알았더니, 천하의 호구였네요. 아니면 제가 눈이 높은 걸까요? 1등으로 까칠한 손님이 저였던 걸까요? 


4층에 위치한 수영장을 보면서, 의문이 풀리더군요. 작은 워터파크 수준이에요. 꽤나 긴 워터 슬라이드까지 있더라고요. 아이들이랑 함께 온 가족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겠다 싶더군요. 호텔 안에 미니 캐러비안 베이가 있는 셈이니까요. 그리고 식당이 엄청나게 커요. 그 어떤 오성급 호텔보다 조식의 가짓수도 다양하더군요. 내가 여기에 와 봤다.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겠더라고요. 방 안에 있는 스낵 3종(포테이토칩, 말린 콩 과자)에 음료까지 무료예요. 방이 작기는 한데, 발코니도 있고, 샤워기나 변기도 확실히 좋더군요. 플러그 꽂을 콘센트도 침대 양쪽에 넉넉하게 배치해 놨어요. 접이식 스탠드도 아주 마음에 들더라고요. 2인이 한 방을 쓸 때, 옆 사람 안 깨우고 스마트폰이나 책 읽기 딱 좋은 스탠드더라고요. 


코로나요? 불경기요? 이 호텔은 그런 거 몰라요. 내국인들이 줄을 서서 체크인을 하고, 체크 아웃을 해요. 가장 아름다운 파타야 야경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루프탑도 빈자리가 없어요. 이 호텔은 미래를 읽는데 성공했어요. 특급 호텔이라면 방은 커야 한다. 욕조는 기본. 이런 고정관념을 과감히 깼어요. 대신 수영장과 식당, 루프탑에 더 공을 들였어요. 신축 아파트가 방은 작게, 거실은 크게 만드는 이유와 같죠. 잠만 자는 방은 기본에 충실할 것, 대신 부대시설은 최고로 지을 것. 별로 사 먹지도 않는 홈바는 생략. 몇 푼 안 되는 스낵과 음료는 그냥 줄 것. 게다가 거대한 쇼핑몰(터미널 21)과 같이 지어서, 여행자들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겠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이 호텔이 백 점은 아니에요. 혼자라면 다음엔 욕조가 있는 다른 호텔을 잡을 거예요. 저 같은 손님을 염두에 둔 호텔은 천천히 망해가고 있어요. 아장아장 아이가 있는 부모에겐 그깟 욕조죠. 욕조에 몸 담글 시간도 없고요. 놀거리가 풍성한 호텔이 하느님이고 부처님이죠. 수영장이다, 옥상이다, 쇼핑몰이다. 아이들이 지겨울 틈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 가족의 니즈를 파악하고, 세상에 없는 호텔을 지었어요. 코로나에도, 빈방이 없는 호텔이 됐어요. 방콕도 아니고 파타야에서요. 기적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안목이 남달랐던 거죠. 미래를 읽는 기술, 책에서만 찾지 마세요. 이런 호텔에서 묵으면서, 감탄하고, 영감도 얻어 가세요. 코로나가 끝나면 꼭 와봐야 하는 호텔로 강력 추천합니다. 


PS 매일 글을 씁니다. 누군가에게는 재미를, 누군가에게는 영감을 주고 싶어요. 하나도 대단하지 않은 소소한 즐거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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