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우는 납치되었다. 억울해
말이 안 통해서 벌어진 참사였다.
-우리랑 같이 별장에 가요.
내가 첫 손님. 에어비엔비 주인의 의욕은 차고 넘친다. 노는 방을 굴린다. 한 달에 30만 원 이상이 생긴다. 애들 과자값, 학용품 값을 번다. 집주인 안나나에게 나는 희망이다. 미래다. 그렇다고 별장 여행까지 제의하다니. 굳이 안 그러셔도 돼요. 좋은 후기 영혼을 담아 써드립죠. 눼눼. 새 집을 고르는 기준은 에어컨이었다. 마당 있는 방에서 5일을 머물렀다. 더웠다. 비실비실 선풍기로는 좀 모자랐다. 찜통까진 아니지만, 불쾌한 열기가 가득했다. 쇼핑몰이라든지, 카페에서 피신해 있었다. 에어컨 방이어야 한다. 에어컨이 있지만
싼 방
6월 중순부터 전 세계가 휴가철이다. 좋은 방들은 한 달 전에 찬다. 사흘 앞두고 저렴하면서 좋은 방을 찾는 건, 기생충이다. 노력과 상식 없이, 대박을 바란다. 나, 기생충은 포기하지 않고 트빌리시 방들을 꼼꼼히 살폈다. 여기야! 가격은 만 2천 원대. 에어컨 있음. 루스타벨리(Rustaveli)역이 걸어서 10분 거리. 루스타벨리 역? 번화가 중의 번화가다. 정확히는 루스타벨리와 리버티 스퀘어역 사이(Liberty Square). 게다가 산동네. 산동네 = 빈민가는 80년대 우리나라 얘기. 그냥 높은 곳에 있을 뿐. 경사가 진 골목, 환상적인 조망권. 이태원 해방촌이 예쁘듯, 그렇게 예쁠 확률이 높다.
후기를 보면서 숙소를 정한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후기가 없는 방. 누가 그런 곳에서 자고 싶겠어? 압니다. 그러니까 싼 맛에라도 묵어 주시오. 소문 좀 내주시오. 첫 손님을 향한 찡한 애걸복걸, 구애다. 긍정적인 인간이란 걸, 이런 때 안다. 싸고 좋을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내 예상은 맞았다. 허름하고 찌든 겉모습이지만, 다 녹슨 철제 사다리가 삐걱대지만, 4남매가 시끌벅적하지만, 에어컨이 있고, 해방촌 낭만 있고, 조망권 있다. 부분 조망권이지만, 높은 곳임을 실감할 정도는 된다. 학교 선생님인 안나나가 4남매의 엄마이지 집주인. 영어가 짧은 안나나는 학교 영어 선생님 소피까지 소환한다. 영어 선생님이라고 다 능통한 것은 아니어서 소피는 한숨을 쉬어가며 띄엄띄엄, 내가 다 미안하다.
-내일 가실래요? 가족들이랑?
안나나는 집이 두 채다. 구르자니(Gurjaani)에 한 채 더 있다. 여름엔 구르자니에서 머문다. 남편은 구르자니에서 농사일을 하며 가끔 트빌리시에 온다. 내일 온 가족이 구르자니로 가는 날. 같이 갈래?
소피의 통역을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땡 잡았다. 덥석 물었다. 내가 자연 친화적인 인간은 못 되지만, 하루 정도는 가능하다. 전원풍의 말끔한 저택에서 방금 딴 살구, 복숭아, 자두를 먹는다. 무조건 간다. 내 돈 주고라도 간다. 차로 두 시간 거리니까, 아니다 싶으면 혼자 올라오면 된다. 출발 시간은 아침 일곱 시. 여섯 시부터 부스럭부스럭. 짐 옮기는 소리다. 온 가족이 석 달을 살아야 하는데, 옮길 짐이 많겠지. 좀 도와줘야 하나? 양심이 찔렸지만, 비양심도 나를 찔렀다. 귀맛 쫑긋, 나를 부를 때만 기다렸다.
-갑시다.
남편 말카스와 사내 한 명이 기다린다.
-조카 데이빗이오.
인사를 나눈다. 막내 마테가 운다. 4남매 중 막내. 외동아들. 그냥 아이가 아니고 천사. 아이들 별로 안 좋아하는 내가 마테 때문에 심장이 벌렁. 얘가 울어도, 웃어도 내 눈이, 마음이 간다. 마테가 운다. 왜 울지? 아빠 가지 말라며 경기를 한다. 응? 같이 안 가? 나, 데비빗, 남편 말카스. 셋만 간다. 그럴 리가? 왜 나를? 왜 나만? 데이비드의 포드 승합차를 탄다. 소피의 떠듬떠듬 통역 때문이다. 온 가족이 가는 게 아니라, 나만 간다. 나와 말카스만. 글을 쓰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유튜브로 내가 출연한 테마 기행을 보여줬다. 이렇게 오지를 떠도는군요. 우리에게도 그런 오지가 있죠. 당신이 환장할 만한 곳이죠. 운 좋은 줄 아세요. 그런 곳에 우리 집이 있다는 걸요. 그런 곳에 데려다 줄 조카까지 있다는 걸요. 내가 이렇게 두 남자 사이에 끼이게 된 이유를 깨닫는다. 데이비드가 수동기어를 움직일 때마다 내 다리에 닿는다. 덩치가 너무 크잖아. 두 남자의 콧바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편하다. 잠은 또 왜 오고 자빠졌는지. 꾸벅꾸벅. 라디오에선 러시아 음악, 조지아 음악, 싸이 노래(강남 스타일과 젠틀 맨)가 흘러나온다. 침까지 흘려야 하는 그런 잠이 쏟아진다. 중간에 차를 수리한다고 두 번 카센터에 서고, 찾는 게 없는지 나오고, 나는 조지아에서 가장 더러운 카센터 야외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고, 꿀 한 통을 배달하고(데이비드는 양봉을 한다. 1Kg에 15라리. 6천4백 원. 내가 이건 꼭 사간다), 잔잔한 조지아의 평야를 지난다. 불편하고, 피곤하고, 어이가 없다. 이 집 식구들이 인상조차 안 좋았다면 딱 납치되는 상황이다. 몸 값 좀 나가는 인질 잡아왔어요. 외진 지하실에서 나를 기다리는 테러 두목이 있을지 누가 아냔 말이다. 그런 생각은 잠깐만 했다. 1kg 꿀 한 통까지 정성을 다해 배달하는 테러리스트는 없다. 깡촌 안 좋아한다. 테마 기행에서는 출연료 주니까 간다. 일부러 그런 곳을 왜 가겠어? 손톱 때 가득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이 그렇게까지 맛있지는 않다.
네 시간 같은 두 시간이 지났다. 말카즈의 누나와 남편과 또 다른 조카 조지(조지아 남자 이름은 둘 중 하나는 조지다. 왜 당연한 기분이 들지?)와 인사를 나눈다. 조지가 포드 운전대를 잡는다. 운전사 교체.
-아악!
십 분도 채 안됐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백미러는 날아갔다. 추격전 시작. 저 새끼 잡아. 조지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온다. 아오, 이런 개 난장판. 내가 여기서 뭐 하는 짓이냐고.
-To be continued
PS. 매일 글을 씁니다. 저만의 오체투지입니다. 지금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를 알리고 있습니다. 더 많은 분께 닿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