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최고의 파티! 거룩한 밤, 황홀한 밤

성신여대 옥상에서 우린 모두가 기적, 반짝반짝

by 박민우
20190824_025425.jpg 새벽 두 시의 돈암동 하늘


이상하다. 왜 졸리지가 않지?


-군산에서 세 시간 반 잤다. 더워서 깼더니 깜깜한 새벽. 에어컨을 다시 켜고는 이리 뒤척, 더리 뒤척. 말똥말똥. 이상하다. 잠이 안 온다. 군산 KDB 생명에서 강연을 마치고 고속버스. 서울까지 두 시간 반. 푹 자자. 또 잠이 안 온다. 버스에서 잠이 안 오다니. 처음 있는 일이다. 각성제를 먹었나? 뇌가 뻣뻣해진 느낌이다. 일기를 써야 한다. 일기를 써야 해. 뻣뻣해진 뇌는 같은 말만 주절댄다. 일곱 시 반에 시작되는 모임. 장소는 성신여대. 유경이가 사는 곳. 1층은 파스타 집. 일기부터 끝내야 한다. 두 시간이 남았다. 옆 건물 카페로 간다. 자몽 에이드를 시키고, 노트북을 편다. 일기를 써야 해. 매일 쓴다는 약속 때문에 쓴다. 누구와의 약속이지? 나와의 약속이다. 바람직하지 않다. 철철 넘치는 글이어야지. 쫓기는 공포에 질려서 쓴다. 일곱 시 반. 늦으면 안 된다. 나를 보러 온 사람들. 왜, 졸리지가 않지? 정말 이상해. 잠을 좀 잤어야지. 그래야 생기발랄하게 떠들지.


아, 끝냈다.


오타가 많을 거야. 끝을 내는 게 중요하다. 뇌 여러 곳에 실핀이 오돌토돌 박힌 상상을 한다. 오늘은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 두렵다. 두려움이어서는 안 된다. 즐거움이어야 한다. 그런데 두렵다. 아니, 왜 하필 밤, 왜 하필 옥상이야. 까맣게 탄 내 얼굴은, 옥상에서 더욱 찌들고, 까매질 것이다. 일곱 시 삼십오 분. 파스타 집으로 간다. 유경이는? 오늘의 파티를 주선한 유경이는? 유경이는 없다. 대신 2층에선 페루에서 온 두 명의 아가씨가 음식을 준비한다. 잠깐 헷갈린다. 1층은 식당, 2층에서 또 음식. 잠깐, 잠깐. 이미 알고 있는 사실. 1층에서 저녁을 먹고, 2층에서 티타임, 3층에서 강연. 당황하는 이유는 유경이가 없다는 것. 그리고 1층이 이미 바쁜 식당이라는 것. 성신여대에서 제일 장사가 잘 되는 파스타 집인가? 나를 보러 온 사람들도, 그냥 온 손님들도 섞여서 밥을 주문한다. 혼자 온 손님들이 보인다. 소외감을 느껴선 안 된다. 나라도 이 분위기를 이끌어야지. 나의 오랜 독자들도 보인다. 모임 때마다 와 주는 사람들. 늘 고맙지만, 좀 소홀하다. 이해해 줄 걸 아니까. 모르는 이들에게, 나를 처음 본 이들에게 다가간다. 최고의 영업 사원이 되어 발랄하게 떠든다. 낮에 먹은 군산 안젤라 떡볶이가 명치에 머물고 있다. 답답하고, 고통스럽다. 내가 책임져야 할 분위기. 몰입의 순간은 그 어떤 감정도 없다. 좋다라든지, 싫다라든지. 이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손님이 갑자기 많아져서요. 좀 띄엄띄엄 올 줄 알았는데...


파스타 집 사장 역시 당황한다. 내가 메뉴판을 들고 주문을 받는다.


-9시 30분부터 강연 아닌가요?


그런가? 참석자들이 대충 식사를 마쳤다. 한숨 돌리고, 리소토를 먹는다. 오랜 독자이자, 큰 도움을 여러 번 준 한의원 원장이 약 봉투를 건넨다. 알약과 가루약. 가루약은 따뜻한 물에 탄다. 먹었더니 속이 편하다. 신기하다. 나는 이렇게 존재한다. 이래서 존재한다. 이제는 떠들어야 한다. 이들은 먹으러 온 게 아니야. 나를 보러 온 거야. 내 이야기를 들으러 온 거야. 몇몇은 며칠 전 모임에서도 봤다. 그들에겐 같은 이야기면 안 된다. 내가 용납을 못 하겠다. 모두에게 새로운 이야기여야 한다.


-아니, 왜 이렇게 말랐어요?


여기저기서 걱정의 말들. 나, 진짜 이렇게 말라가다가 죽는 걸까? 여러 번 들어도, 여러 번 철렁한다. 남들의 시선, 극도의 피로, 유경이는 어디 있지? 강연장은 옥상. 텐트가 있고, 스크린이 펼쳐져 있고, 노트북에선 하바나 나나나. 여름의 끝. 따뜻하고, 청량한 두 개의 바람. 나는 침을 삼킨다. 옹기종기 모인 서른 명의 손님을 향해 입을 연다.


-서로 어색할 때요. 어떻게 시작해야 하죠? 모르는 분들과 인사부터 할래요?


이런 말이 왜 나오는 걸까? 내 입은 늘 반전을 준비한다. 서로가 인사를 나눈다. 약간의 웃음소리.


-저는 여행자고요. 대비하지 않는 삶을 살아요. 대비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요. 최소한의 돈으로 다니고, 써요.


새벽 세 시쯤이었을까요? 이런 시간, 이런 음악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 나는 벼랑 끝에 몰려서 부드럽게 입수한다. 풍덩, 수영을 시직 한다. 물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문제일 뿐. 이제부터 물놀이다. 나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세다. 최고의 내가 된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극도로 다듬어졌다. 허툰 말은 하나도 없다. 꼭 해야 할 말들로, 돈암동 옥상을 쩌렁쩌렁 울린다. 내가 화자이고, 내가 청자다. 청자가 되어, 내가 한 말들에 하나씩 감탄한다. 정말 이상한 날이다. 이 먼 곳에서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듣겠다고, 여기까지 왔을까? 부산, 대구, 대전, 헤이리, 인천, 서울 사람들에 둘러싸여서는 기가 막힌 연주를 한다. 나의 혀와 목울대, 각성한 뇌와 두 개의 바람, 그리고 60 개의 눈동자. 유경이가 술과 등갈비, 나초와 샐러드, 상그리아와 칵테일로 가득한 테이블을 들고 온다. 돈가스집 사장이기도 한 유경이는 매장 일을 끝내고, 아래층에서 이 많은 음식을 뚝딱 해왔다. 나의 신들린 몰입이 끝나고, 여전히 내가 놀랍다. 피곤하지 않고, 두렵지 않다. 두근거리고, 또 안도한다. 어마어마한 해피엔딩이다. 이제 각자의 시간. 새벽 네 시까지 마신다. 내가 마신다. 내가 남아서 그들 속에서 마시고, 떠든다. 고장 나기 전 최고조의 몸이 된다. 곧 고장 날 것이다. 곧 앓아누울 것이다. 이 신비로움을 어쩌지? 이게 기적이란 건 아마 나만 알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밤이다. 말도 안 되게 황홀한 밤. 나는 나를 다 썼다.


PS 유경이는 이미 지인들을 통해 세팅을 끝내 놓은 상태더라고요. 처음의 혼잡은 식당에 손님이 몰리면서 일어난 잠깐의 무질서였어요. 유경이는 밤늦게까지 식당 일을 하고, 이런 어마어마한 파티까지 끝냈어요. 중계동에 정수제 돈까스. 꼭 한 번 가보세요. 전주에는 여러 지점이 성업 중이고요. 전국구 돈가스집이 될 겁니다. 1인당 3만 5천 원을 받아서요. 1층에서 만 오천 원 식사를 대접하고요. 2층에서 마카롱과 티타임, 3층에서 엄청난 술과 최고급 안주. 그리고 큰돈을 제게 강의료로 줘요. 누군가의 완벽한 희생이 있어야 가능한 밤이죠. 저는 평생 여행하고, 평생 다가가야 할 사람입니다. 이제, 잠 좀 자야겠어요.


PS 매일 일기를 써요. 저만의 오체투지 방식입니다. 왜 쓸까요? 가끔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게 지구 끝까지 닿는 작은 한 걸음이란 생각으로 써요. 동네 도서관에 박민우의 책이 없다면 추천해 주실래요? 더 많은 이들에게 읽혀야죠. 제 책이 좀 좋은 책이어야 말이죠.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란 책을 홍보 중이고요. 방콕 여행을 준비하신다면 최고의 책이 될 거예요.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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