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우리는 함께 꽃입니다.
-믹서기 가지고 가. 가지고 가면 다 써.
어머니가 블렌더를 제 트렁크에 넣고 계세요. 마늘도 갈고, 주스도 만들어 마시라고요. 어머니 말씀이 잘 안 들어와요. 뭘 또 사가야 하나? 아침잠이 안 달아나네요. 어머니가 보정 속옷을 사달라고 하는데요. 잘 안 찾아져요. 똥배가 쏙 들어가면서 자세 교정도 되는, 두르는 거 말고, 입는 걸로. 저녁엔 밥 약속이 있고요. 보험사에 핸드폰 액정 수리비도 청구해야 해요. 여행자 보험을 들어놨는데요. 보상이 된다지 뭡니까? 저에겐 좋은 일도 자주 일어난다고요. 뭘 빼먹었을 텐데요. 뭘 꼭 사가야 할 텐데요. 사흘 후에는 방콕으로 떠나는데요.
지금 여기는 단지 앞 작은 도서관이에요. 어제는 수원에서 강연이 있었어요. 수원시청역에서 내려서요. 여성비전센터로 가야 해요. 5분 거리. 가기 전에 카페부터 가요. 매일 쓰는 여행기를 끝마쳐야 해서요. 죠리퐁 셰이크를 시켜요. 5,500원. 죠리퐁을 우유와 갈겠구나. 그 위에 또 수북 죠리퐁이 쌓여있네요. 그건 좀 싫어요. 따로 알알 죠리퐁을 또 씹어야 하잖아요. 까칠하게 죠리퐁 셰이크를 쪽 빨면서 글을 써요. 오늘 모임은 크게 걱정은 안 돼요. 책 좋아하고, 여행 좋아하는 어머니들 모임이래요. 이야기꽃을 피우면 되겠군요.
당근이 많이 들어간 김밥, 쌀로 만든 케이크. 푸짐하게 차려놓고 저를 기다리시네요. 제가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한다는 걸 알고, 일부러 쌀 케이를 준비하셨다네요. 제 책을, 블로그를 다들 읽고 계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린 완전한 남은 아니죠. 제 글을 읽는 순간, 우린 강력히 연결되죠. 가난하고, 자유로운 제 삶이 부러운가 봐요. 대비 없는 삶이 신기한가 봐요. 저 계산적인 사람이에요. 저의 노후 대비는 여러분입니다. 저의 말 한마디가, 저의 글 한 줄이 콕콕 박히면요. 여러분을 날개 삼아 저의 글이, 말이 날죠. 민들레 홀씨처럼요. 날아서 친구에게, 가족에게 닿죠. 그런 생각 없이 매일 글을 쓸까 봐요? 아침부터 수원시청역까지 왔을까 봐요? 오늘따라 왜 이리 편한가 했더니요. 이미 저의 편이 되셨군요. 버선발로 기다리셨군요. 한껏 공감할 준비를 하고요. 뭘 말해야 할까? 노력할 필요 없죠. 애쓸 필요가 없어요. 한통속이 되어서 자유를 꿈꾸고, 호기심을 조장하죠. 살아있는 동안엔 궁리하며 살아야죠. 행복이 딱히 정답은 없어도요. 또 있기는 한 거니까요.
저녁에 일란이를 만났어요. 1만 시간 동안의 남미를 쓰고요. 독자들과 자주 만났어요. 그때 참 많은 분들이 저를 찾아주셨죠. 일란이도 초창기 멤버였죠. 완전 쪼꼬미였는데요. 이젠 복지센터에서 자폐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상담해 주는 어엿한 직장인이 됐죠. 밥까지 사주네요. 보세요. 저의 노후 대비라니까요. 차곡차곡 제 사람을 늘려가요. 어떤 이들은 떠나서 안 돌아오기도 하지만요. 어떤 이들은 이렇게 남아서 밥을 사주고, 약을 보내줘요. 그러니까요. 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들 제 글 좋아하시죠? 제 사람은 무럭무럭 늘어나고 있어요. 틀림없죠. 말도 안 되는 상상 중 하나가요. 제 모든 인내심이 닳았을 때요. 포기하고 싶을 때요. 하필 그때가 여행 중일 때요. 여행도 때려치우고요. 어쩌면 삶도 포기할까?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와요. 내렸더니요. 공항 활주로에요. 수만 명이 제 이름을 부르면서 환호해요.
-야, 이 눈치 없는 박민우야. 우리가 소리 소문 없이 팬질하는 거 몰랐지? 이제는 우리 정체를 좀 드러내야겠다. 답답해서 원.
그런 사람들이 끝도 없어서요. 저는 저를 잃고, 펑펑 울어요. 너무 추하게 울어서, 남은 사진은, 동영상은 다 불태우고 싶지만요. 일그러진 얼굴로 내내 울다가요. 집으로 돌아가는 공항버스에서 쿨쿨 곯아떨어지죠. 그런 상상은 너무 재미나요. 따뜻해져요. 보이지 않는 걸 봐야죠. 공항을 채울 사람들 숫자가 왜 안 되겠어요? 이미 넘쳐요. 넘침을 믿어요. 당연한 걸 굳이 상상까지 하다뇨? 그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글을 쓰니까요. 저의 아슬아슬함을 즐겨 주세요. 아슬아슬하게 피우는 꽃을 기다려 주세요. 우리의 연결이 모자이크처럼, 매스게임처럼 끝내 이해되는 거룩한 완성이 될 테니까요. 어머니가 차려주신 점심밥을 염치없이 먹으러요. 저는 일어섭니다. 어머니 보정 속옷을 좀 저 찾아봐야겠어요.
PS 매일 글을 써요. 제가 할 수 있는 오체투지입니다. 낮게, 약간은 고통스럽게 글로 세상을 새기고, 저를 새기죠. 지구 끝까지 제 글이 닿을 거예요. 지금 여러분이 동참해 주시니까요. 가까운 도서관에 박민우의 책이 있나요? 없다면 추천해 주실래요? 2019년은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로 오체투지 중입니다. 방콕이 너무 좋아져서 살고 싶어 지는 책입니다. 우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