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또 훌쩍 떠나네요
어제도 또 술판이었네요. 20년 넘게 지지고 볶고 했던 후배놈과, 옛 직장 후배와 미래의 톱스타랑 마셨어요. 딱히 접점이 없는 것 같은데, 인연이 되려면 또 인연이 되네요. 서로 일감도 물어다 주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비싼 밥을 얻어먹었어요. 청담동 헌와담이라는 곳이었는데요. 술도 안 마시고 고기만 먹었는데도요. 삼십만 원이 넘게 나왔죠. 고기는 입에서 녹더군요. 육즙을 꼭 가둔 다음에 입에서만 터지라고 했나 봐요. 이런 고기는 미디엄 레어로 먹어야죠. 보들보들, 육즙육즙은 미디엄 레어 아닌가요? 미디엄 웰던은 또 뭔가요? 어중간하게 굽되, 그중에서는 가장 바싹인가요? 안 그러면 피 냄새가 나? 고깃집을 오지 말든가. 하여간 이 새끼 취향은 결정적인 데서 갈린다니까요. 후배가 킵해 놓은 싱글 몰트 위스키 맥캘란이 있는 곳에서 한 잔 더해요. 살살 녹는 고깃집에서 몇 걸음 안 걸으니까 단골 술집이네요. 청담동이 자기 안방인가 봐요. 쿠바 씨가도 한 대 나눠 피고요. 무슨 씨가가 한 대에 4만 원이나 하나요? 입에만 연기를 물고 있다가 뱉으래요. 달콤쌉쌀한 향이 입안에 꽉 찬다나요? 자주 연락하고, 자주 보면 그래도 편해요. 어찌나 방콕에 자주 왔는지 몰라요. 이놈 부모님한테 제가 눈치가 보일 정도로요. 내 삶의 절반을 채운 인연이네요. 미디엄 웰던으로 먹는 근본 없는 새끼.
하아
또 연락을 못 드리고 가요.
일단 종건이 형
학교 선배면서, 이웃 8촌 정도? 멀리 살지도 않는데. 결국 또 쌩까고 마네요.
최석기 MBC 라디오 국장님
국장님, 국장님. 이를 어쩝니까?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왜 이리 경직되는지 몰라요. 같이 북한산을 오르고, 내린 것만 해도 얼마인가요? 그 막걸리 집, 그 감자전은 여전할까요?
이병률 작가님
작가님에 대한 빚이 있어요.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서평까지 근사하게 써주셨잖아요. 부탁할 때만 굽실굽실. 얼굴 한 번을 못 보다니요? 인사드리겠습니다. 허황된 약속만 너덜너덜 남았습니다. 저에겐 용기까지 필요하네요. 작가님이 늘 바쁘셔서, 제가 안중에도 없기를 바랍니다.
사촌 형과 매형
진짜 누구보다 제 연락을 기다린다는 거 알죠. 당연히 연락드려야지. 그래 놓고는 늘 이런 식이죠. 그래도 와인 세 병이 남았어요. 이게 네 병이어야 하는데 말이죠. 어쨌든 조지아 와인입니다. 부모님이 알아서 나누겠죠. 보는 자리에서 그냥 다 마셔버리세요. 추석날 모여서요. 추석 때 한국에 없는 저를 욕도 좀 하시면서요. 어제 조지아 와인을 풀었더니요. 딱히 좋은 얘기 못 들었어요. 싱겁다네요. 거칠고. 그나마 먹기 쉬운 와인이었는데도요.
영석아
너한테도 미안. 고등학교, 대학교 꼭 붙어 다녔던 단짝 친구잖아. 내가 한국에 있을 때를 기다렸다가 굳이 와서는 우리 부모님께 인사까지 드리고 갔잖아. 애 키우니까 더 어른스러워졌더라. 원래도 천사였지만. 우리 부모님이 늘 성화시다. 너네 부모님께도 인사드려야 한다고. 가 봐야지. 인사드려야지. 빈손으로는 또 못 가잖아. 너처럼 홍삼에 뭐에 바리바리 사들고 가야 하니까. 그러다 보면 또 다음을 기약하게 되더라. 에휴
류진영 씨
전 GO OUT 편집장이자, 따뜻한 글쟁이 씨. 코흘리개 때 만났잖아요. 초보 기자로 고민하고, 성장했죠. 참 오래 멀리서만 보네요. 멀리서 봐도, 늘 가깝단 생각이 들어요. 늘 봐야지. 아니, 보고 싶다. 살아온 이야기 듣고 싶다. 그런 생각을 늘 해요. 에효. 이런 이야기 안 하느니만 못하죠? 그죠?
한철이 형
네, 우리나라 최고 명가수 이한철. 한철이 형. 형이 절 그렇게 챙겼는데요. 이리 좋은 사람이 있을까 싶은 행님인데요. 그러니까 저는 늘 편하게 형 뭐해? 물을 수 있는데도요. 때를 놓치니 안부를 묻는 것조차 주저하게 되더란 말입니다. 형의 큰 마음 잘 알아서요. 저는 언제라도 뻔뻔하게 연락할 수 있어요. 그때 환하게 반겨주실 거라 믿어요.
93학번 친구들, 94학번 후배들. 탁재형 PD. 플럼북스 편집장, 독자로 시작된 끈끈한 인연들. 정화 누나, 재우, 준호. 얼마 전 안부를 전했던 혁준이. 제주도로 이사 간 수많은 인연들. 지금 당장 생각 안 난다고, 내 마음에도 없는 거 아닌 당신, 당신, 당신들. 아, 맞다. 지재우 촬영감독님.
일단 제가 너무 까매지고, 야위어서요. 보는 사람들마다 얼마나 걱정하는지 몰라요. 이 몰골로는 안 되겠어요. 특히 오래 못 본 이들에게 충격인가 봐요. 사람 꼴이 되어야, 만나도 만나죠. 밥을 얻어먹으면, 커피라도 사야죠. 수중에 돈도 좀 있어야겠고요. 연락이 끊긴 모든 친구들은 아마 저처럼 가난할 거예요. 마음이 더 야위었을 거예요. 당당하고 싶고, 해맑고 싶은데요. 옛날 그 모습이어야 하는데요. 그게 아니라서, 숨고 지내는 거죠. 그런 사람들이 그리워만 하면서, 불편한 곳에서 숨어 살아요. 더 지체되면, 더 멀어진다는 걸 명심할게요. 내가 놓지 않으면, 어떻게든 이어지겠죠? 놓지 않습니다. 기다려주세요. 방콕으로 떠나는 날이 이틀 남았네요.
이틀 동안 뭐를 해야 할까요?
PS 매일 글을 써요. 이 기분이 좋아요. 약간은 고통스럽고, 약간은 막막한 느낌. 그 마음으로 써요. 우리의 깨달음은 공짜여서는 안되죠. 그래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이 느낌이 소중해요. 혹시 도서관에 박민우의 책이 없다면 추천해 주세요. 더 많은 사람들이 제 책을 보겠죠? 많이 읽혀야 하는 좋은 책들이거든요. <입 짧은 여행작가의 방콕 한 끼> 이건 최근에 썼어요. 방콕 놀라가시는 분들, 꼭 업어가세요. 방콕이 인생 여행지가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