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가기 싫지만 그녀는 아름다워
나의 도수 치료 선생님
정형외과에서 도수 치료를 받은 지 3주가 넘어간다. 통증은 생각보다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목 통증을 먼저 느끼고, 몸을 일으키면 허리 통증이, 바닥에 발을 디디면 다리 통증이 있는 상태.
아프니까 다 짜증이 났다. 이런 마음으로 꾸역꾸역 병원에 다녔는데, 어느 날 도수 치료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다. "OO님 아프면 힘들고 짜증 나는 거 당연한데 그래도 웃으면서 치료해 봅시다!"
여자였으면 좋겠다는 단 하나의 조건으로 내게 선택된 그녀는 밝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구부정한 나를 세워놓고 밸런스를 지켜볼 때도, 나를 눕혀놓고 이곳저곳을 누르며 진단을 할 때도 전문가 포스를 강하게 풍겼는데 한 마디씩 던지는 말은 또 동네 언니 같았다. 아파서 끙끙거리다가도 피식 웃게 만든다고 해야 하나?
그녀에게는 뭔가 있었다. 그 뭔가를 다들 알아보는지 언제나 예약이 어려웠다. 처음엔 예약을 잡기 위해 취소된 자리가 있는지 수시로 전화해야 했다. 지금은 2월까지 그녀를 장악한 상태라 완전 행복하다.
갑자기 이런 얘길 쓰는 이유는 그날 때문이다.
보통의 나는 이런 서비스를 받을 때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친해지기 싫고 불편해지기 싫어서.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고 싶어서.
그런데 이 여성은 내가 그런 생각이든 말든 자기 얘기를 간간히 하고 질문도 던졌다. 그녀는 나보다 아홉 살이 많고, 3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스물아홉 살의 딸이 있으며, 그 딸은 엄마가 집 살 때 사천만 원이나 내놓는 효녀이자 그녀와 같은 물리 치료사라고 했다. 그 딸이 시아준수를 내 새끼라고 부르며 좋아한다는 말을 들을 때 내 새끼이자 애인이자 소울메이트인 방탄이들을 떠올리며 공감했다.
그렇게 그녀 얘기를 듣기만 하다가, 그날은 나도 은총이 얘기가 하고 싶어져서, "선생님도 딸 하나인 거에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다 잠시 뒤 사실은 아들이 더 있었는데 12년 전에 계곡에서 사고로 잃었다고 했다.
나는 당황했다. 짧은 순간에 놀랐다가 슬펐다가 마음이 널뛰었다. 담담한 그녀의 음성이 마음을 찔렀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녀는, 왜 OO님이 우냐며 내 눈물을 쓱 훔치고는 하던 치료를 계속했다. 그녀는 아들 얘기를 조금 더 했다. 아들과 좋았던 기억에 대한 얘기였다.
치료실을 나서면서 이 여자를 지켜주고 싶다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지금 내 몸뚱이를 지켜주는 건 그녀인데?
그날 저녁에 침대에 누워 지역 카페를 들여다보는데, 내가 다니는 그 병원 도수 치료 선생님을 추천해 달라는 글이 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댓글을 달았다. "그 병원에 한 명뿐인 여자 선생님을 추천합니다. 이런 거 얘기하면 예약하기 힘들까 걱정되지만, ..."
다음 예약일에 의사를 만나면 묻지 않아도 그녀의 도수 치료가 이렇고 저래서 좋다고 말할 예정이다. 그게 사실이니까 그녀의 상사인 의사가 알아야 한다.
그녀를 불쌍히 여겨서 이러는 걸까? 아니다. 언제부턴가 나는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들에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애처로움을 느낀다. 여자들에게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 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받게 해주고 싶다. 내가 뭐라고 이런 생각을 한다 요즘.
그녀가 일을 얼마나 잘하고 매력적인지 잘 설명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렇게 밖에 못써서 안타깝다.
퇴근 후 일주일에 세 번은 댄스 강사를 하면서 몸을 풀어야 잠이 잘 온다는 그녀의 얘기가 떠오른다. 그녀가 조금만 슬펐으면 좋겠다. 슬프다가도 금방 웃을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오늘도 저녁에 그녀를 만나러 간다. 이렇게 쓰고 나니 괜히 혼자 어색할 것 같다. 절대 절대 그녀가 좋아진 걸 들키지 말아야지. 새침하게 치료받고 올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