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가기 싫지만 나의 완벽한 비서는 볼 거야
이준혁 유죄 인간
연말에 우연히 '나의 완벽한 비서'라는 드라마의 예고편을 보게 됐다. 그런데 내용보다 OST가 귀에 확 꽂히는 거다.
멜론에 검색하니 아직 드라마가 방영하기 전이어서 올라온 게 없었다. 그렇게 OST 때문에 이 드라마의 시작을 기다렸다.
그러다 어젯밤에 보니 Test me라는 곡이 올라와 있었다. 어 그런데 가수가 폴 블랑코였다.
폴 블랑코는 한국계 캐나다인 래퍼인데, 방탄소년단 RM의 인디고라는 앨범에 참여한 적이 있어서 알고 있었다.
RM과 폴이 같이 부른 Closer를 들을 때는 내 마음이 RM에게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서 몰랐는데 음색이 예술인 거다.
곡을 재생하고 첫 소절을 듣는데 말랑 말랑하고 따뜻하고 다정한 얘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맞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었지.
나는 너무 오랫동안 그런 감정을 잊고 살았던 걸 깨달았다. 가족을 사랑하는 거 말고, 남자와 여자가 인간 대 인간으로 사랑하는 감정. 그걸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Feels like something is changing between us
갑작스럽겠지만
So just test me 나의 마음을
말해 줄게 널 향한 내 진심을
Test me - paul blanco
그렇게 순전히 폴 블랑코님 덕분에 1화를 봤다.
오피스 물은 (현실과 다름 이슈 때문에) 잘 보지 않는데, 이런 내 생각이 무색하게 드라마는 괜찮았다.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유능함을 발휘하며 심지 굳게 일했지만 정의가 승리하지 않아 해고되는 남주,
근데 잘생겼네, 근데 일곱 살짜리 딸이 있네, 어쩌다가 혼자 아이를 키우게 됐는지 궁금했다.
여주는 완벽해 보이는데 직원들 이름을 못 외우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대표가 내 이름을 매번 잘못 부르면 진짜 빡칠듯. 근데 남주 이름과 직급은 단박에 외우는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다. 역시 로맨스물은 항마력이 필요하다.
이런 여주가 대표로 있는 회사에 남주가 비서로 채용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여주에게는 아직 꺼내 놓지 않은 슬픈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여주와 남주가 같이 일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는 그런 구원 스토리 아니겠음?
이렇게 쓰고 보니 매우 뻔해 보인다. 그렇지만 내가 로맨스물을 본다면 그건 클리셰를 보려고 보는 거다.
부족한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어떤 역경이 닥쳐와도 이겨내고 '난 너만 바라봐' 하는 그런 거.
현실에 없는 거.
그래서 너무 환상적인 거.
산아는 뭔가를 너무 좋아하면 역시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불행해진다고. 나는 산아가 쓴 불행,이라는 무거운 단어가 신경 쓰였다.
"왜 사람들은 다 그렇게 너무 좋아하는 게 생겨버리는 걸까? 엄마도 돈이면 다 좋다고 하고 오빠는 게임만 하고. 이모도 그런 게 있어?"
나는 생각을 더듬었다. 좋아하는 상태를 더 심화시키는 '너무'라는 부사를 사용해 본 적이 있는지를.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최근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고 '너무'라는 부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덕질을 하면서 좋아하는 마음에 '너무' 한 방울을 떨어뜨려 마음이 흘러넘치는 경험을 해봤다. '나의 완벽한 비서'의 주인공들도 곧 서로를 너무 사랑하게 되겠지.
글쓰기 책에서는 부사를 적극적으로 빼라고 가르치지만, 각자의 드라마를 찍고 있는 분들은 용감하게 '너무'를 사용하며 사랑했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잘 안 생기니까.
그래서 '너무'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