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가기 싫지만 기적은 있어

우리 자체가 기적

by 모노

유럽 여행 중에 공황 증상을 겪은 뒤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는 신경 안정제를 밥 먹는 횟수만큼 복용하며 살고 있다.


정신과에서 불안은 내과 환자들이 열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의사에게 들었다. 내과에서 환자의 열을 떨어뜨리는 것을 첫 번째로 하듯이, 정신과에서는 불안을 낮추는 작업을 첫 번째로 한다고 한다.


정신과적으로 불안하기 전까지 내가 사용했던 '불안하다'는 표현은 정말 얕은 감정이었음을 느낀다. 겪어보니 병적으로 불안한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의미이다.


어떤 날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무너져 내리거나 소중한 누군가가 죽는 것 같은 큰일이 벌어질까 봐 불안하다.

어떤 날은 종이에 손이 베일까 봐 불안하고, 버스에서 내리지 못할까 봐 불안하고, 자다가 숨을 쉬지 않을까 봐 불안하다.


얼마 전엔 동네를 운전하면서 신호 대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심하게 불안해지면서 답답해져서 황급히 창문을 열고 겉옷 지퍼를 내리고 모자를 벗어던졌다. 심호흡을 하면서 얼마나 무서웠나 모른다. 이 사거리에서 브레이크를 밟지 못한다면? 오토홀드가 오작동하면 어쩌지.


내가 좋아하는 방탄소년단 RM의 앨범 제작기를 다큐로 찍은 영화가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되었다. 나는 부산까지 가는 KTX를 타는 것이 무서워 타기 직전까지 신경 안정제를 끊임없이 털어 넣어야 했다.


보고 싶었던 영화 위키드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를 예매하고, 입장문이 잠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직원에게 잠기는지 여부를 재차 확인했다. 약을 먹은 건 당연했고.


나는 이제 뭘 하려고 하면 일단 무섭다.


유럽은 갈 때마다 신났고 돌아올 때는 아쉬웠는데, 이제는 어디를 여행해도 설레지 않을 것 같다.


비행기는 타지 못할 것 같고 배도 마찬가지이다. 자동차도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 거리는 주저하게 된다.


불안하지 않은 삶이 얼마나 축복이었는지 불안할 때마다 깨닫는다.



있잖아요. 어쩌면 우리 삶도 기적으로 차 있을지도 몰라요. 그것이 기적인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요. 아무쪼록 이 책이 당신을 안녕하게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이 책이 당신의 삶에 숨겨진 기적을 깨닫게 했으면 해요. 그리하여 당신의 하루가 안녕하도록 말이에요.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이꽃님)



희망만을 말하는 것은 순진하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더 늦기 전에 내 삶이 기적으로 차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지도를 들고 유럽 여행을 하던 이십 대 시절부터 기적은 늘 내 옆에 있었다는 것을.


술에 취해 어두운 골목을 걸을 때도

비행기, 기차, 자동차, 배를 탈 때도

수만 명과 함께 콘서트장에서 노래를 부를 때도.


내 삶은 기적으로 차 있다.

신은 나를 지켜주고 계시다.


지금은 불안하고 쪼그라든 마음으로 살고 있지만,

언젠가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고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나는 네 곁으로 갈게.
네가 뭔가를 잘 해내면 바람이 돼서 네 머리를 쓰다듬고, 네가 속상한 날에는 눈물이 돼서 얼굴을 어루만져 줄게. 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에도, 시험을 잘 친 날에도, 친구랑 다툰 날에도. 슬프거나 기쁘거나 늘 네 곁에 있어 줄게.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이꽃님)



***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출근해서 일하는 우리 모두 대단하다.

이미 다 커버린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심지어 대견하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에게 대견한 일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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