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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 Dec 26. 2024

회사는 가기 싫지만 다정함은 장착했어

돌고 도는 다정함

회사 가기 싫어 타령을 하고 싶어서 발행한 브런치 북이긴 한데 오늘은 진정으로 회사가 싫어서, 정확히는 회사의 인간들이 싫어서 쓰는 글이다.


이 인간들을 싫어하면서 회사-집-회사-집 사이클을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출근길에 녹은 눈을 잘못 밟아서 바지와 신발이 온통 젖었다. 사무실로 들어와 젖은 신발을 닦으며 '오전만 버티면 마르겠지 뭐'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버팀이야 사소하지만 너무나 무기력한 내가 싫었다.


매일매일 그날 치의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하기까지 버티기는 계속된다. 회사를 다니기로 한 이상 무한 반복이다.


근 한 달을 바쁘게 시달려서 그런가. 일에게서, 문서에게서,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독침 같다. 매일 쏘임을 당했더니 마음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가슴이 멍든 것처럼 아프고 불안이 밀려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료들이 꼴도 보기 싫게 밉다.

나는 보통 멘탈이 흔들릴 때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 같다.


순서가 맞나 모르겠지만 멘탈이 흔들릴 때 꼭 누군가 나를 공격한다. 약해진 상태의 나는 공격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뒤돌아서 열받으며 마음속으로만 씩씩댄다.


어쩌면 공격이 아닌데 공격으로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너무 멍청해서 당하고만 사는 건지도 모르겠고.


오해당하고 말지 뭐.

내가 조금 더 하지 뭐.


이런 내 성격도 마음 병의 원인인 것 같다. 내가 뭐라고 희생하고 자빠졌지? 희생이 아니라 체념인가?


그런데 사소한 일까지 시시비비를 가리기 싫다. 상대방은 사소한 일까지 시시비비를 가려 본인이 옳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이 모양이니 맨날 질 수밖에.


아 정말...

회사 사람 대부분에게 일말의 애정도 남아 있지 않다.


평소의 나라면 '저 인간 왜 또 저러지?' 아니면 '뭐래?' 하면서 넘길 텐데 너덜너덜해진 지금의 나는 없는 힘을 쥐어짜서 남을 미워하고 앉아 있다. 아이고 나 자신아...


그저께 오후에 시작된 일로 삼 일째 화가 나서 오늘은 꼭 이 감정을 털고 일해야지 싶어 생각해 봤다.


나는 왜 미워할 만한 인간을 미워하면서도 죄책감이 들까.  다정해야 할까?


다정하기 싫다. 다정함을 건넴으로써 회사 사람 누군가와 끈끈하게 연결되는 기분이 싫다. 아마도 지금의 나는 인간에게 지쳤나 보다.




이렇게 가시를 세우며 살고 있는 와중에, 엄마 허리 보호대를 사려고 phiten이라는 매장에 갔다. 오십 대로 보이는 여자 직원분이 엄마를 의자에 앉히고 보호대를 착용시켜 드렸다.


엄마가 '이건 너무 길다', '이건 너무 쨍쨍하다', '이건 너무 짧다' 등등 약간 까다롭게 구셨음에도 직원분은 엄마의 요구에 부응하는 물건을 잘 찾아내 보여주셨다.


그 과정이 참 신속하고 정확했는데 무엇보다 직원분 태도가 뭐랄까... 너무 적절하게 따스해서 황당하게도 눈물이 났다. 인류애가 회복되는 기분이랄까.


김혼비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최근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와 '다정 소감'과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를 읽었다.


그 책들 속에서 참으로 유능하면서도 타인을 향한 따스한 마음까지 장착한 여성들을 만났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서는 서로를 향해 뼈 한 조각, 인대 한 가닥 다치지 말고 오랫동안 함께 뛰자고 말하는 여자를 봤고,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에서는 최선을 다하되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하지는 않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는데, 그것은 무언가를 함께 나눠서 하는 것이었다.


꼭 물리적인 나눔이 아니더라도 함께 일상을, 웃음을, 마음을 나누는 것이 그 방법이라고 알려주는 여자를 만났고,


'다정 소감'에서는 여성들도 소리 지르고 때리고 맞는 훈련을 함으로써 미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원초적 싸움의 세계를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알려주는 여자를 만났다.


나는 phiten 직원분과 김혼비 작가의 글을 보며, 내 주위가 내게 독침을 날리는 인간들로만 구성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다양한 다정함과 돌봄을 받으며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살아가는 법을 계속 배워야 하는 것 같다. 그 살아가는 법에는 괴롭고 부당한 세상 속에 다정한 마음 한 조각 떨어뜨리는 일이 포함될 것 같다.


그렇게 다정하게 살다 보면 좋은 어른이 될 수도 있고, 좋은 어른은 다른 어른을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품은 미움은 아마도 잘 사라지진 않을 것 같으니 회사에 두고 다녀야겠다. 이미 늙어가는 주제에 왠지 조금 자란 느낌이 든다.


내가 조금이라도 자랐다면,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으며 세상에 다정함을 나눠준 많은 사람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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