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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 Dec 16. 2024

회사는 가기 싫지만 점심시간은 소중해

외로운 도넛 인간

출근하자마자 집에 가고 싶고, 집에 가면 나오기 싫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두 달 반이나 남은 이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미처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 같은 아침에 아파트 단지를 나서면 내가 너무 혹사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나 일찍 일하러 나가는 게 맞아? (그러나 새벽은 아니고 아침 7시임).


퇴근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한밤중처럼 캄캄한 거리를 보며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퇴사하고 싶어 진다. 이렇게나 늦게까지 일하는 게 맞아? (그러나 오후 5시 30분임).


점심시간이 되면 상태는 더욱 나빠진다. 사람을 만나서 먹을 것을 정하고 밥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커피 한잔을 사 들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것까지 한 시간 안에 해내야 한다.


한 시간은 인간적으로 너무 짧지 않은가. 그렇다고 점심시간을 늘려달라는 건 아니고 퇴근 시간을 당겨주라.


나는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싫고, 좀 인간적인 식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도시락을 갖고 다니기 시작했다. 주먹밥이나 유부초밥이 주 메뉴이고, 안 싸는 날에는 간단히 빵으로 때운다. 밥을 먹고 남은 30분 가량의 시간엔 광화문 일대를 걷는다.


광화문에는 궁이 많으니까 궁 산책부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덕수궁 밖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지만 천 원을 내고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면 상대적으로 한산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시간이 다면 덕수궁 안에 있는 미술관에도 들르겠지만 시간 거지인 나는 무슨 전시가 하나 쓱 보기만 하고 지나친다.


어느 날엔 경희궁에 갔다. 겨울의 경희궁은 스산하고 한적해서 산책하기 더 좋다.


신입 사원 때 경희궁을 한 바퀴 돌다가 경희궁 뒤쪽으로 굉장히 으슥하지만 광화문의 밤 풍경이 잘 보이는 스폿을 알아내 데이트를 하곤 했는데, 지금도 누군가 거기서 시간을 보내려나? 보내겠지. 연인들은 으슥한 곳을 잘 찾아내니까.


아무튼 이젠 나와 상관없는 경희궁 뒤편 으슥한 곳을 스윽 지나서 한 바퀴 돌고 나면 30분이 금방 채워진다.


- 교보 문고에 가서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오기

- 해머링맨이 있는 흥국 생명 빌딩 지하 씨네 큐브에 가서 무슨 영화가 하나 두리번거리고 영화 브로셔를 만지작 거리다가 돌아오기

- 서울 시청 도서관에 가서 괜히 도서관증을 만들어 책 빌리기(우리 집 앞 도서관이 훨씬 가깝고 편한데).


그리고 정말 스트레스가 심한 날엔 음악을 크게 들으며 종로까지 걸어갔다가 온다.


이렇게 마치 어딘가 갈 곳이 있는 냥 걷다 보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데 좀머씨처럼 모두에게 말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처음엔 그저 걸었는데, 지금은 걸어야 한다. 남은 삼십 분을 소진하기 위해서, 아니면 뭔가를 잊기 위해서, 아니면 살기 위해서.


하지만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듯이 이런 모든 시도들은 회사 생활을 즐겁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회사를 다닐수록 느껴지는 공허함도 채워지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너무 오래 회사를 다녔고(내년이면 만으로 20년), 따라서 너무 지쳤으며(좀머씨처럼), 아프다(우울증, 간헐적 공황).


이 나이를 먹고도 자의식이 너무 강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는 다들 힘들고 아프고 고통받으며 살아가는데 엄살이 심할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느끼는 공허함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서 죽지만 않으면 괜찮다며 버텨왔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뜻밖의 결론에 다다랐다.



내 마음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무엇에든 빠져들었고 아파야만 한다면 기꺼이 아파했으며 이 생에서 다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 텅 빈 부분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그건 슬픈 말이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면서 나는 내가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빵집 아들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깨달음이었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나는 도넛이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내 정체를 결론짓고 나니 웃음이 났다. 텅 빈 가슴을 내놓고 사는 건 슬픈데, 그 모습이 도넛이라는 건 좀 귀엽기도 하고 말이다.


이렇게 자신을 귀여워하며 웃고 끝내고 싶다. 하지만 마음 한가운데에 뚫린 커다란 구멍이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나는, 쉽게 도넛 인간으로 살지도 못하려나 보다.


다들 본인의 정체를 알고 살아가나?

가끔씩 커지는 마음의 구멍은 무엇으로 채우며 살아가나.

정말 채우면 내가 아닌 게 되나?

나는 정말 도넛인가?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모르는 채로 그냥 살았다.


오늘의 출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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