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뭐 이틀 있다가 다시 출장을 가지만 그래도 반갑다.
오늘 남편은 인도를 방문한 지인과 함께 집에 왔다. 모 기관의 기자로 오랜 기간 일하고 계신 분이었다.
물국수와 김치를 대접하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기자님은 내게 요즘도 글을 쓰냐고 물었다.
나는 우물쭈물 이렇게 대답했다.
"매달 글을 쓰던 곳이 있었는데 요즘은 좀 쉬고 있어요. 글도 계속 쓰다 보니 뭔가 에너지가 다 빠져서 더 이상 쓸 수 없을 것처럼 될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충전한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맞아요. 정말 그럴 때가 있죠."
사실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계시는 분 앞에서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한다는 지인의 표정으로 공감해 주셔서 감사했다.
지인은 말했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적어 보는 건 어떠세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것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지 말이죠."
나는 지인의 말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사랑은 있지만 정작 글을 제대로 쓰고 그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누구에게 전해 줄 수 있는 그런 정보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하고.
"네. 그것도 좋네요. 요즘은 충천하면서 책을 읽고 있어요."
맞는 말이었다. 나는 요즘 글을 쓰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에 더 집중을 하고 있다. 글을 쓰는 것은 온몸의 힘을 다 빼는 일이라면 책을 읽는 것은 내 몸에 힘을 불어넣는 행동이니까.
하지만 이 역시 어떤 산출물을 기대하고 하는 것은 아니다. 독서라는 것이 책을 한 시간 읽는다고 다음 한 시간 동안의 글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니까. 꾸준하게 책을 읽고 나를 쌓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읽었던 책들 필사까지 했던 책들의 문장들도 머릿속에 남아있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삶이 결과에만 집중될 수는 없는 것이지 않는가. 비록 잘 기억나지 않더라도 읽고 또 읽으며 아주 조금씩이라도 내 삶에 내 마음에 변화를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기에.
지인과 남편이 나가고 나는 읽고 있던 책을 폈다.
류시화 작가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덤덤히 써가는 류시화 작가의 문체에는 웃음과 울음 그리고 인생의 철학이 녹여져 있다. 나는 책 몇 군데에 포스트잇을 붙여 가며 또 형광펜을 칠하며 중요한 페이지를 접어가며 책을 읽었다. 그러다 너무 좋은 문구들은 내 필사 공책에 적었다. '그래. 책은 이렇게 써야 해.' 여러 작가들의 문체가 있다. 어떤 작가들은 너무 아름다워 읽다가 또 돌아가서 읽게 되는 책들이 있고 어떤 작가들은 아주 딱딱한 문체들로 쓰여 있지만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들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어떤 책들은 섬세한 표현들로 상황을 표현해주기도 했다. 류시화 작가의 책에는 항상 웃음이 깃들어져 있다. 심각한 이야기 속에서도 사람에게 웃음을 주는 묘사들로 너무 가볍지도 않게 또 너무 무겁지도 않게 글을 써 놓은 것이다. 나는 류시화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책을 쓰리라.'
독서는 글을 쓰게 만든다. 읽다 보면 너무 좋은 문장들을 만나고 그런 문장들을 만나면 그것에 관한 나의 이야기들을 쓰게 된다. 또 독서를 하면서 나의 문체가 바뀌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따뜻한 책을 많이 읽을 때는 따듯한 문체로 글을 쓰게 되고 또 묘사를 잘하는 글들을 읽다 보면 내 삶에서도 묘사할 부분들을 찾는 나를 본다. 물론 딱딱한 정보를 많이 가진 책을 많이 읽다 보면 내 글도 어느새 딱딱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결국 많은 책들을 읽어가며 나의 문체를 찾아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몇 장이라도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며 조금 문학적인 척도 하고 글도 쓰고 또 마음에 위로도 받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