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 서평
만성질환,
명확한 진단명이 없는 병과 함께 하는 삶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작가에 의하면 그것은
뚜렷한 결말이 없는 이야기이자
반복되는 실존의 흔들림 가운데
환자가 어떻게든 자신 나름의
서사를 자아내는 지난한 과정이다.
치료자, 의료 서비스 종사자 그룹,
만성질환자 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 연약함의 문제로
고통받는 모두에게 공감이 될
의학 에세이 한 편을 소개한다.
아무도 내가 아프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내가 어찌 건강해질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 메건 오로크는 저널리스트이다. 여러 권의 시집과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20대 초반부터 원인불명의 다양한 증상에 시달려 왔다. 브레인 포그, 고열, 전기 충격과 같은 섬유 근육통, 부인과적 문제, 갑상선 샘 질환, 발진, 어지럼증, 쇠약함, 발작과 구토 및 경련... . 자가면역질환이라고 뭉뚱그리기에는 지은이의 고통과 증상이 처절했다. 메건은 황금기와 같은 성인 초기의 대부분 기간을 눕거나 진단명을 찾아 여러 의원을 전전하며 보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병명을, 도둑맞은 삶을 찾기를 바랬다. 회복될 수 없을망정 그녀의 질병이 적어도 '실재'함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10여 년간 투병하면서도 끈질기게 탐색한 결과가 [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이다. 그 세월 동안 메건은 수많은 전문의와 대체의학 전문가들을 만났고 종국에는 온갖 실험적 치료에 도전하였다. 그러나 각종 기록과 논문 섭렵, 분야별 대가와의 인터뷰와 그녀 개인의 투병 히스토리 그리고 작가로서의 역량이 합쳐 나온 결론은 과학적이거나 기능적이지 않다. 되려 인문학적이다. 그녀에 의하면 아픔은 그 무엇보다 사회적인 활동이며, 만성질환자의 고통은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결함이다. 결국 무명의 질병에 어떤 꼬리표를 붙일 것인지 메건 오로크는 '우리'에게 선택의 공을 넘기며 끝을 맺는다. 이웃들의 이야기를 "부디 경청해 주길." '그러면 언젠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정확한 진단을 치료의 시작점으로 두고 있는 현대 의료체계 내에서, 설명되지 않는 고통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전통적으로, 명확히 진단하기 어려운 환자의 고통은 심리적 문제로 여겨져 왔다. 신체화는 분명 존재하는 정신질환이기는 하지만, 그중에는 억울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특히 많은 만성질환자의 고통이 정신의학 영역의 문제로 치부되어 외면당해 왔다. 이 책의 지은이 역시 겉으로 티 나지 않는 고통으로 인해 그 자체로 "거의 죽을 뻔했다". 효율적 의료 시스템의 맹점이 만성질환 환자군에는 유독 치명적이다. 현대 의학의 진단체계가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름 없는 질병의 저장소인 만성질환자들의 몸은 설 곳이 없다.
작가 역시 가장 고통스러웠던 한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진료는 내 입안에 씁쓸한 맛을, 내가 내 편을 구할 자격이 없는 존재라는 감각을 남겼다. 나는 남들이 모르는 어떤 약점,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병을 품은 기묘한 존재였다(100p.)" 반면 한 의사가 자신의 병명과 원인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그녀에게 "당신이 아픈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던 순간, 구명줄을 붙든 듯했다. 적어도 그는 작가의 고통을 없는 셈 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성질환자 또는 이름 없는 병을 앓는 이에게 고통 자체가 인정받지 못하는 경험은 '실존'에의 위협과 다름이 없다. 작가인 메건 오로크의 "복잡한 내 병이 깃든 내 몸은 생물학적 요소뿐 아니라 생애적 요소로 구성된 장소(39p.)'라는 고백에 의하면 더욱 그렇다.
알 수 없는 것, 불확실함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불확실한 병명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만성질환자들은 때로 불치병이라도 좋으니 진단명이라도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더불어 세상의 사람들은 병을 극복한 이야기, 병으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에 환호하고 환자들에게 병을 통해 어떤 지혜를 얻었는지 듣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아픈 것은 절대로 아름답지 않다. "품위를 동반하는 병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379p.)"는 저자의 지적에 격하게 공감한다. 사회는 진단명이 없는 고통을 들어줘야 하는 불편함을 용납하지 못해 어떤 식으로든 교훈적이기를 기대하고 그러한 서사가 감동적일 수 있지만, 누구라도 아프지 않은 것이 더 좋다. 절망과 고통 없이 지혜를 깨달을 수 있다면 더 낫지 않겠는가.
오히려 수많은 환자들의 개인사에 얹힌 '지혜 서사'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존엄성과 품위만큼은 지켜내고자 했던 환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사회는 병을 극복한 기적의 이야기만 편애하고, 끝없이 고통만 이어지는 '혼돈 서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 가운데 환자들은 다시 한번 마음이 죽고, 비참함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꾸며야 할지 혼란스럽다. 자칫하면 스스로가 예민하기 짝이 없는 신경증 환자로 전락할까 주눅이 든다.
작가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었고 혼란스러웠다. 해결책으로 스스로의 병과 함게 한 날들을 기록했고, 그 결과가 이 책이다. 그녀는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이 겪는 현실의 존엄성을 품는 일. 바로 그래서 내 이야기를 전할 방법을 알고 싶었다. 내 언어를 찾아내려고 그토록 애썼다. '극복'에 실패한 상황을 병적으로 취급하는 문화 속에서 만성질환을 심리적 문제로 치부하면, 환자에게 품위 있게 병에 대처하라고 가르치면서 오히려 그들의 품위를 앗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241p.)"
만성질환의 대표 격인 자가면역질환은 자살로 빗대어 이해되곤 한다. 이는 언어가 부린 은유의 마법에 분명 영향을 받았다. 노벨상 수상자인 프랭크 맥팔레인 버넷은 면역계에 '자기의 관용'이라는 철학적 용어를 사용했는데 면역계와 자가면역의 개념 틀에, 인문학적인 단어 '자기(self)'가 사용되다니 흥미롭다. 작가는 이를 의미심장한 은유로 여겼다. 저자는 "자기와 비자기의 구별이 아마도 면역의 기본일 것이다"라는 버넷의 논문 구절을 예로 들며 자가면역질환이 자기 관용의 실패 즉 자살로 받아들여질 위험성을 지적한다. 자칫 이러한 맥락이 기독교적 가치관과 결합하여 '징벌'을 떠올리게 하고, 사회가 자가면역질환의 원인을 개인 차원으로 여기도록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자가면역은 자기 자신에 맞선 자기의 투쟁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화학물질과 바이러스, 트라우마, 오염이 축적된 먹이사슬을 표현하는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자가면역이란 자기관리에 실패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결함의 결과이다. 환자의 몸은 생애 기록의 저장소이자 사회활동의 장소이며 투병의 과정 역시 사회활동의 일부이다. 이들의 질병 기록을 응시하면 사회정치적 논쟁거리가 자리하고 있다. 화학물질 규제 실패, 식품 사막, 의료계 관료주의 폐해, 미국의 고질적인 의료보험 문제, 차별과 빈부격차, 구멍 난 사회적 안전망 따위 말이다. "개인의 면역계는 무엇보다도 그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결함 있는 사회의 시민으로 산 역사를 반영한다(227p)."
특히 문제는 시스템이다. 질병을 효과적으로 치료하고자 정착된 의료계의 효율적 체계 때문에 의사는 내원한 환자의 상태를 전체 스캔할 수 없다. 15분 아니 현실적으로는 몇 분 내외의 짧은 진료 시간, 과별로 조각 나 개별적으로 관리되는 정보처리 방식 탓에 '치료 통합'은 불가능하다. 결국 구조적 문제임을 작가는 꼬집고 있다. 고학력자에 경제력이 있는 상류층은 그나마 피해를 덜 입을 것이다. 흩어져 있는 정보를 취합해 도움이 될 만한 전문가를 찾아다닐 만한 집중력과 지성과 시간적 여유 그리고 경제력이 있을 테니. 저자 역시 상류층 지식인 백인 여성이었기에 유리한 부분이 많았으리라. 아, 물론 그녀 역시 죽음 이상의 고통과 스트레스로 점철된 세월을 헤쳐 나온 것만은 분명하다.
스트레스! 혹자는 스트레스를 모든 것의 범인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실상은 애매하다.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일까. 지은이 역시 병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고 스트레스로 인해 더 아팠다. 되려 그녀는 '스트레스를 둘러싼 몸의 되먹임 회로를 이해하고 나니, 미국의 사회 안전망 부재와 긴 역사를 지닌 구조적 인종차별이 인간을 더 아프게 만든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226p.)'고 회상한다. 그녀가 미국을 이야기했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크게 다를까.
코로나 후유증으로 인해 의학계는 보이지 않는 병, 만성질환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후 많은 의료 전문가가 코로나 후유증을 앓으며 만성질환을 이제는 질병 패러다임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의료계는 지금껏 이 분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인정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태도의 전환은 라임병, 코로나 후유증, 근육통성 뇌 척수염, 만성피로증후군, 자가면역질환 등을 앓고 있는 환자군에게 좋은 소식이다. 근래의 의학계에서는 환자의 복지와 의사소통 기술 훈련, 통합적 접근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녀는 백인 상류층 지식인 여성으로서 동양 의술에 대해서도 관심을 언급했는데, 정작 한국 독자라면 침술이나 한의학에 대한 그녀의 호기심 또는 호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싶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시바 종합병원 자가면역질환센터를 예로 소개한다. 이곳은 기능 의학적이고 통합적인 치료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는 앨러게니 헬스 네트워크 자가면역연구소가 2018년 개소 이래 동일한 맥락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마운트 시나이 병원은 병뿐 아니라 '사람을' 치료하는 일에 눈길을 돌렸다. "완전한 회복"이라는 마법은 온갖 증후군들, 만성질환에 있어서는 허상임을 인정한 의학계는 "병과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해 이제 막 궁리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의료계가 기계적이고 효율적인 의료 행위로 다만 소임의 절반만을 제공해 왔으며 이제는 나머지 절반의 역할에도 최선을 다할 것을 이야기한다. 바로 전인적인 통합 치료, 구조적 개혁과 헌신적 연구 말이다.
질병과 고통에 관한 이 기록의 끝에서 저자는 '공동체'와 '실존'이라는 핵심에 다다랐으며, 모든 것이 인간의 존엄성, 품위의 문제임을 고백한다. 모두에게 요구되는 책임 말이다. 자신이 얼마나 아는 것이 적은지 통감하기에 냉철하고 겸손하게 연구하고 치료에 임할 전문가의 품위, 자신의 고통을 그럴듯한 이야기로 치장하여 외면하지 않고 진솔하게 도움을 청할 환자의 용기와 품위, 각종 증후군의 원인이 개인의 방종한 선택에 있지 않으며 우리 모두의 선택의 결과임을 인정할 공동체의 품위.
결국 [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은 특정한 혈통의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서사를 담은 책이다. 이 스토리는 누군가는 이미 견디어 내는 중이며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도 있을, '연약함을 안고 가는 삶'에 대한 것이기에.
*이 서평은 부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고 성실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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