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흑백요리사> (별 4개 반, 강추!)
요리는 '예술'일까?
예술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너무 심오하고, 정의하기 몹시 어렵지만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요리가 예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흑백요리사 스포일러 없을 무. 흑백요리사 프로그램을 보고 느낀 생각들을 쓴 글입니다.
나는 예술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예술하면 나는 우선 전통적인 예체능이 떠오르는데 보통 예체능은 음, 미, 체로 나뉜다. 물론 예술의 범주는 이보다 폭넓겠지만 편의를 위해 이 3가지를 얘기하고 싶다.
나는 여기서 음, 미와 체(스포츠)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이것을 나누기 위해서 나는 수렴과 발산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체육은 뭔가 음악, 미술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정해진 기준을 도달하는 것에 '수렴'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달리기는 정해진 거리를 누가 떠 빨리 들어오는지의 절대적인 기준 하에 이루어지고, 축구, 농구 같은 스포츠 역시 정해진 시간 동안 상대의 골대에 더 많은 공을 넣은 팀을 더 훌륭한 성취로 본다.
당연히 예외는 있다 피겨스케이팅, 싱크로나이즈 스위밍 (물론 이것들은 음악과의 교집합이 커 보이긴 하지만) 같은 절대적 기준보다는 주관적 기준의 심사가 섞인 스포츠도 있고, 나는 메시의 축구를 보면 수렴보다는 발산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
이 글을 쓰기 조금 전까지도 스포츠는 예술은 아닌 걸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예술을 자기표현의 형태로 보는 나의 관점을 유지한다면 스포츠 역시 예술이다.
스포츠 선수들은 하루하루 대장장이가 칼을 담그고 두드리듯이 자신의 신체의 모든 감각과 균형, 힘과 민첩성을 최대치로 갈고닦는다.
정해진 루틴을 어기면 순식간에 성적 하락으로 침체를 겪는다.
자신의 모든 신경세포 뉴런을 하나로 수렴하는 것이다.
팀 스포츠에서는 팀 전체가 하나의 극점을 향해 모두의 뉴런을 수렴한다.
이것 또한 나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한 가지 형태라고 생각한다.
요리에는 이러한 '수렴'이 존재한다.
시즌 1의 트리플 스타의 정교한 칼질을 보며 모든 셰프들이 혀를 내두르고
심사위원 안성재는 채소의 익힘 정도를 초 단위로 정확하게 맞추는 것을 요리사들에게 요구한다.
정확한 염도와 당도의 밸런스는 말할 것도 없다.
시즌 2에서 어떤 미션에서 시작할 때 재료를 보고 서로 다른 팀이 같은 요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어떤 셰프는 다른 셰프가 가져가는 재료 몇 가지만 보고도 그 사람이 무슨 요리를 할지 바로 맞춘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아 요리에도 정답지 (수렴 지점)라는 게 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츠와 다른 음악, 미술의 특징은 발산이다.
음악이나 미술은 스포츠처럼 100m 달리기(스포츠 중에서도 수렴의 극한이라고 생각한다)가 아니다.
장대 높이 뛰기가 추구하는 예술로서의 목적성과 피카소의 추상화가 추구하는 목적성은 누가 봐도 다르다.
물론 예외는 존재한다... 상대적으로 정해진 틀에서 겨루는 입시미술 입시음악이 있고, 기존의 쇼팽, 모차르트의 곡을 그대로 연주하는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물론 그 사이에 또 예외가 존재해서 연주자마다 디테일이...! 조성진의 연주는...!) 등등...
결국 이렇게 주절주절 예외에 대해서 늘어놓은 것은 예술이란 수렴과 발산의 균형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예전에 피카소 박물관에 갔던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본 피카소의 학창 시절 그림은 매우 잘(...) 그린 그림이었던 것이 놀라웠다. 입시 미술적으로, 고전미술풍으로 잘 그리는 그림을 피카소는 그릴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피카소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수렴의 틀을 깨고 마음껏 발산하는 길을 택했고, 많은 이들은 그의 자기표현을 보며 경탄하였다.
다시 돌아와서 요리는 예술일까?
<흑백요리사>에서 내가 꼽는 최고의 명대사는 안성재의 '저는 의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거덩요~'이다.
사실 그 한마디 말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이끌었다고까지 생각한다.
안성재라는 미슐랭 3 스타 오너 셰프가 보여주는 발산의 매력과 백종원이라는 한국에서 요식업으로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 중 한 명이 보여주는 수렴의 매력이 만나 흑백 요리사의 성공을 이끌었다.
안성재의 데뷔였던 흑백요리사 시즌 1의 1화에서 '의도'를 중요시한다는 안성재의 이야기는 이러한 스토리텔링과 발산의 미학을 시청자에게 제대로 각인시켰다.
흑백요리사에서 모든 셰프는 매 화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요리로 녹여 담는다.
셰프 에드워드리는 '비빔 인간'이라는 밈을 만들어내며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요리로 표현하였다.
시즌 2에서 프렌치 파파 같은 요리사는 가족을 향한 메시지를 요리에 담기도 한다.
선재 스님이나 삐딱한 천재 같은 캐릭터의 등장은 이러한 요리의 발산을 전형적으로 보여준 케이스였다.
결국 예술은 발산과 수렴의 충돌과 조화에서 오는 감동인 것이다.
발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틀을 깨고 나를 보여주는 일은 언제나 무서운 일이고 두렵다.
남들 앞에서 벌거벗은 내 모습을 보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구리다'라며 혹평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수렴에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매일매일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모든 감각과 신경을 정결하게 만드는 일을 훌륭하게 수행해 내어야만 같은 기준을 향해 달려가는 수렴의 경쟁에서 이기고,
남들에게 자기 자신을 표현하며 진정한 예술의 감동을 전할 수 있다.
반짝 성공하고 어느새 사라지는 원 히트 원더 예술가들을 많이 보게 된다.
보통은 용기, 성실함 중 하나가 없어서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
용기가 부족해서 더 이상 발산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해서 진부한 모습만 보이다가 대중에게 잊히거나,
성실함이 부족해서 스스로를 잘 벼려내는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무뎌지며 후발주자에게 따라 잡히고 만다.
오늘도 용기와 성실함이 부족한 나는 조용히 개똥철학 글을 쓰며 장렬하게 흑도 백도 아닌 회백색으로 산화한다...
평점: 4.5/5
이유: 요리라는 장르 자체를 새롭게 바라봐 주게 한 신선함! 악마의 편집 없이 비교적 따뜻하게 요리사들을 조명해 주면서도 긴장감을 놓지 않는 연출의 미학!
시즌 1, 2중에 우열을 가리기는 쉽지 않은 듯 보인다.
근데 3에서는 심사위원 바꿔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