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별 4개 반, 강추)
정신과 의사들은 MBTI를 싫어할까?
선악의 경계는 무엇일까? 무엇이 선한 행동이고, 무엇이 악한 행동일까?
미지의 존재는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
눈앞에 있는 동굴 속에 있는 게 야생 불곰이라면 도망 쳐야 할 터이고, 누군가 숨겨 둔 식량이 잔뜩 쌓여 있거나 금은보화가 숨겨져 있으면 누구보다 빠르게 얼른 동굴에 들어 가야 할 터이다.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미지의 존재를 분명하게 구분짓고 싶어한다.
- 너 혹시 T발놈이니?
- F는 연애상대로 믿거입니다~
최근 우리나라를 가장 뜨겁게 달군 심리 관련 키워드는 단연 MBTI다.
이제는 MBTI가 너무너무 유명해서 MBTI에 대한 비판론 마저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대표적인 MBTI에 대한 비판론 2가지를 이야기해보자면
1. 서로가 대극(對極, 반대의 극)이 아니다.
즉 S가 높다고 N이 낮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E, I는 다소 대극의 성질은 있지만 그 외에 3가지는 잘 생각해보면 대극이 아니다.
둘 다 높거나 둘 다 낮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2. 이건 정신과 한정이자 1로 인해 이어지는 문제점인데 통계적인 가치를 지니기 어렵다.
대극이 아니기에 과학적인 귀무가설을 설정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F가 높으면 안정적인 연애를 할 수 없다' 와 같은 가설 설정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MBTI를 좋아한다.
나도 수줍게, 조심스레 고백해보자면 MBTI...꽤나 좋아할지도?
우리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동굴에 랜턴을 달아서 불곰인지 금덩이인지 알아야만 한다.
상대방을 A,B,AB,O의 4가지로 나누면 편해지고, MBTI의 16가지 유형중 하나로 넣어두면 편해진다.
하지만 오랫동안 인간이 그래왔듯이, 흑인과 백인을 나누고 나서 자행한 일들처럼, 이러한 구분론은 혐오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ㅆ프피, T발놈 등등 자신의 혐오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위험이 있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좁히는 경우가 생기기에 경계가 필요하다.
(물론 MBTI 과몰입론자와 인종차별주의자를 같은 선 상에 둘 생각은 없다...)
MBTI 이야기는 이쯤하고, 사회와 법질서의 오랜 딜레마 선악의 경계는 있는걸까?
T, F를 나누듯 우리는 선악의 경계를 나눌 수 있을까?
유죄면 악, 무죄면 선일까?
* 아래부터는 영화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의 주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복싱은 주먹으로 상대방을 때려서 쓰러뜨리는 스포츠이다.
본작의 주인공 주드 신부는 복서였다.
복싱 경기 도중 상대를 죽였다.
사람이 주먹으로 사람을 때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복싱이 스포츠가 된 지는 인류 역사에서 짧은 기간일테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간은 다른 인간을 최소 쓰러뜨리거나 최대 죽이기 위해 주먹을 휘둘렀으리라.
주드 신부는 복싱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복싱 경기장'에서 주먹을 휘둘렀고, 상대가 죽었다.
그렇다면 주드 신부는 악일까?
어디서부터 악일까?
다른 사람을 마음속으로 미워하면 악일까?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품으면 그때부터 악일까?
제퍼슨 윅스가 죽었을 때 주드는 기분이 좋았다.
상대가 미웠고, 어쩌면 마음 속에 성당의 암덩어리인 윅스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품었기에 비록 자신이 죽인게 아닐지라도, 아니 자신이 죽인게 아니기에, 그가 죽은 것이 기뻤다.
그렇다면 주드는 늑대의 머리를 한, 뿔이 돋은 악마인걸까?
수도원을 관리하는 마사는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성당의 권위를 바닥에 내리 꽂으려는 윅스를 죽이려는 계획을 짰다.
하지만 직접 손으로 윅스를 죽이진 않았다.
그렇다면 좋은 의도로,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시행한 일이기에 그녀는 면죄부를 받고 선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주드에서 마사까지 온다면 상대적으로 마사는 지은 죄에 대한 무게가 가볍진 않다.)
독이 든 커피를 만들어 마사를 죽이려는 의사 냇에게 커피를 바꿔치기해서 냇이 죽도록 유도한 마사는 결과적으로 사람을 죽게 만든 것이기에 악한 것일까?
윅스가 죽고 나서 그와 관련된 내용의 소설로 성공한 로스, 그와 관련된 유튜브로 성공한 싸이는 결과적으로 성공했고 많은 돈을 벌었으니 잘 된 일인걸까?
인류의 원죄를 저지른 이브는 에덴 동산에서 뱀의 속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낙원에서 쫓겨났다.
이브는 악일까?
본작에서 등장하는 핑크 다이아, 이브의 사과를 본 인물들은 유혹에 흔들리고 의사 냇은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 샘슨을 죽였다.
마사 역시 핑크 다이아를 본 순간 자기 스스로도 유혹에 자유롭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죽는다.
권선징악은 많은 스토리에서 차용하는 주요 주제의식이다.
개인적으로 소년만화나 전래동화 만큼 권선징악을 선명하게 내세우는 장르가 없지만 성인이 된 사람들에게 권선징악을 가장 선명하게 전달하는 방법 중 하나는 추리물이 아닌가 싶다.
추리물은 결국 범죄 혹은 살인을 소재로 하여 작가가 어떠한 자신의 의도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장르이다.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 1편과 2편에서는 선한 의도는 언젠가 보상받고 악은 결국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전달하였다.
3편 웨이크 업 데드 맨은 이를 심화, 확장하는 주제의식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주드는 복싱을 하다 사람을 죽였다.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었고, 실수로, 아니 아주 어쩌면 고의로 상대를 죽였으나 벌을 받지 않은 주드는 괴로운 마음에 신부가 되었다.
그리고 매 순간 조금씩 노력해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는 신부가 되었지만 여전히 동료 사제의 턱을 돌려 버리고, 자신을 손가락질 하는 마사의 손가락에 바로 펀치를 날려 버리며 순간적인 분노와 충동을 참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그는 매 순간 노력한다.
다급하고 중요한 순간,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줄 지도 모르는 증인의 고통을 듣고는 이를 외면하지 못하고 그의 고해성사를 들어준다.
자신의 신부 생활이 꼬일 것을 알면서도 비열하게 행동하는 윅스를 막고 고발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노력은 하나님의 품속으로 이브의 사과를 돌려드리며, 우리에게 선명한 빛을 발하며 결말을 맺는다.
우리 모두는 완벽할 수 없다.
미지의 동굴 속 빛을 환하게 밝힐 수가 없다.
때로는 상대방이 너무 밉고,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품기도 하고, 나의 탐욕을 조절하지 못하고 쉽게 넘어간다.
나 또한 항상 그렇다. 유혹에 흔들리고, 화가 나기도 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품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와 다른 누군가를 선, 악으로 나누려 하고 T,F로 나누려 하고 ESTJ, INFP로 나눈뒤에 잠시나마 마음을 내려놓으려 한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어제 동료 사제의 턱을 돌렸을 지라도, 오늘은 한 번 참아보려 노력하고
60년 전에 내가 너무나도 미워하고 깔봤던, 창녀라고 무시했던 누군가를 죽기 전에 이해해 보려 노력하고
T와 F는 대극이 아니기에 그 회색지대 속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진정한 선은 하루하루 그렇게 나무를 베어 십자가를 만들고, 다이아의 유혹을 견디고, 매일 같이 어제와는 조금 다른 내가 되기 위한 노력 속에 있을 것이다.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맨 별점: 4.5/5
이유: 이제 이 시리즈는 그냥 믿고 봐도 될 것 같다. 러닝타임이 긴 줄도 모르고 순식간에 몰입해서 봤다. 지루할 틈을 안 주는 타이트한 전개에 깊이 있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이전작에서 나아가 발전하는 주제의식이라니... 너무너무 훌륭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