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삶은 뭘까? 삶은 계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별점: 5개 만점. 인생 드라마)

by 리뷰왕정리뷰

어릴 때 유행하던 썰렁~개그였다.

삶이 무엇이냐는 답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 결국 삶의 답은 계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나 뭐라나.


나는 어릴 때 그 유머가 싫었다.

나는 뭔가 삶의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만 같고, 수많은 고민들 속에서 경험을 쌓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누군가는 그냥 '삶은 계란! 하하하!' 한다는 사실이 나의 작은 아집에 상처를 입혔었나 보다.


하지만 어느덧 인생의 작다면 작은, 크다면 클 수도 있는 한 토막을 살아내고,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는 직업을 갖게 되고, 삶에 대한 수많은 시각들, 어쩔 때는 서로 상반되는 시각들이 통합되는 모습들을 보았고,

나도 이제는 '삶은 계란이었구나!'하고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환자들이 자주 하는 얘기 들은 이런 게 있다.

- 비트코인 망해서 빚만 X억이에요. 제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죽을 거예요.

- 저는 어차피 고졸이고, 200 따리 인생이라 망했어요. 아무 의미 없는 내 인생. 죽는 게 낫겠죠?

- 제 부모는 어릴 때 저를 버렸고, 저는 열심히 노력해서 어느 정도 일궈 냈어요. 하지만 제 마음속 공허함은 결코 채워지지 않아요. 영원히 채울 수 없는 이 공허함을 가지고 살아갈 바에야 죽을래요.


인생을 평가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쌓아온 돈? 타인의 인정, 명예? 누군가에게 받는 사랑?

만약 내 인생이 월급 200만 원짜리 인생이라 망한 거라면, 1950년대를 살며 한 달에 월급 10만 원을 받던 그 시절 우리 부모님 인생은 나의 1/20짜리 인생인가?

이런 논리는 궤변이라는 거 안다.

하지만 나의 인생 드라마가 된 <폭싹 속았수다>를 본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대해 좀 더 다채로운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아래부터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아직 안 본 사람 없으시쥬~?




애순이의 유년기~청년기 삶은 비극으로 잔뜩 얼룩져있다.

어린 시절 고아가 되고, 친척들에게는 버림받았으며, 막내 아들은 사고로 죽었다.

아무리 관식 버프를 감안한다고 해도 40대 무렵까지의 삶은 일반적으로 '괜찮았다'라고 얘기하기 아주 어려운 삶이리라.


하지만 이 드라마를 다 본 사람이라면 쉽사리 애순이의 삶에 점수를 매기기 어려울 것이다.

애순이는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살아갔다.

그저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마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친척이 부산에 있는 공장으로 버리려 할 때는 아마 세상이 나를 억까해도 이렇게 억까할 수가 있나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셋째 아들이 사고로 죽었을 때는 아마 가슴에 사무치는 아픔을 껴안고 하루하루 눈을 뜨는 것조차 버거웠을 터이다.

실제로 자식을 잃고 사별의 아픔으로 진료실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은 많은 경우 진료 시작부터 끝까지 제대로 말을 이어가지 못하신다. 나 또한 그런 분들 앞에서는 한 마디도 입을 떼기가 어렵다.


애순이의 삶은 드라마 버프 덕에 관식이 버프와 말년에 초대박 버프가 터지긴 한다.

물론 애순이처럼 삶의 초기에 억까를 심하게 당하는 경우도 많진 않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관식이 같은 좋은 남편, 초대박 횟집과 시인 데뷔 같은 성취를 이루는 사람도 많지 않다. 드라마 각색 정도는 봐주자.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이라면 양관식 버프와 초대박 횟집 결말 버프를 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인생들이 주위에 손가락으로 다 세기 어려울 정도로 널려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여기서 살짝 흐름을 잘못 타면 '그땐 다 그렇게 살았어 인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여기에서 애순이의 딸 양금명의 삶을 보여준다.

양금명은 '그땐 다 그랬다'는 메시지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게 싫은 자녀세대를 대변한다.

특히 양은명은 직접 그 말을 입에 담아서 아버지 양관식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한다.


'저는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고요. 그렇게 살기 싫어요.'

'그렇게 산다'는 건 어떻게 산다는 것일까? 200 따리의 삶? 20 따리의 삶?

가족애라는 무적방패 치트키를 빼더라도 양금명, 양은명의 삶의 가치는 남들이 메겨서 가치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오애순의 삶의 가치 또한 주위 사람들이 측정하는 것이 아닐 터이다.


그리고 이 생각을 잘 확장해 본다면 우리는 어떤 삶의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각자의 성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한국 사람들만의 정서와 철학이 있다.

최근 유행하는 쇼펜하이머, 니체 같은 철학자들의 말도 좋지만 우리에게는 제주도 해녀의 철학, 개천에서 난 용의 철학, 철없는 아들의 길거리 장사 철학 같은 것들이 더 깊게 와닿는다.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너무 뻔하고 선명하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삶을 버텨낸 오애순은 복을 받는다.

유니콘급 애처가이자 좋은 아버지인 양관식은 하늘도 무심하시지 단명하지만 그의 노력은 가족들의 마음속에 남아 영원히 함께한다.

돈은 많아도 안하무인으로 살던 학씨 아저씨는 벌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단순하고 담백한 철학들 속에서 우리는 나의 모습, 부모의 모습, 세상의 모습을 다시 한번 가슴 깊게 새길 수 있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특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청춘이던 애순이와 관식이가 서로 이야기한다.

우리는 세상 모든 곳을 다 여행하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고.

애순이와 관식이의 인생의 시작과 끝을 쭉 지켜본 관객으로서 이 말을 듣고 '결국 그렇게 못했쥬? 망했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단연코 없으리라.

그들은 비록 원하는 삶을 다 이루진 못했지만 그래도 분명히 행복했으리라, 아니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평가할 순 없기에 쉽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고 싶다.

삶은 무엇인가요? 삶의 의미는 뭔가요?

그래, 삶은 계란이다.

아니, 삶은 계란이 아니다.

감자다. 깔깔깔 (^_^)v


<폭싹 속았수다> 별점: 5/5

인생 드라마.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하다고 생각하다.

당연히 호불호는 있기에 비판하는 글도 몇 개 봤는데, 개인적으로 신파가 심했다는 글에는 동감하기 조금은 어렵다. 억지 눈물을 유도하는 것이 신파의 정의인데, 신파가 없었다고는 못하겠지만 이 드라마는 애당초 줄거리만 살짝 봐도 눈물을 짜내려는 의도가 너무 보인다.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감정의 흐름이 다른 신파물들에 비해 그렇게까지 억지라고 느끼진 못했다. 이 드라마를 보고 신파가 심하다고 하는 건 액션 영화를 틀어놓고서 총소리가 너무 나서 시끄럽다고 짜증 내는 격처럼 느껴진다.

억지라고? 아 몰라 폭싹 속았수다 절대 지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