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세리코르디아> (별: 3.5, 추천)
가끔 나도 모르게 번뜩 드는 생각들 중 어디서 도저히 말 할 수가 없는 끔찍한 생각들이 있다.
'아 저놈 진짜 너무 화나는데 ****해서 ****해버리고 싶네.'
' 저 사람 ***인데 ***하면 진짜 ***하겠다.'
나는 용기가 없어서 이런 익명의 글에서도 *처리해서 표현하는 이런 생각들...
프로이트는 이러한 욕망의 존재를 이드(id)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상에 널리 알렸고, 현재는 이렇게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리를 조종하는 무의식적 욕망의 존재는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지는 개념이되었다.
이렇게 세상에 내놓기는 어렵지만 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들끓어 오르는 욕망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부정하며 없는 셈 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다른 사람 탓을 하거나 핑계를 댄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그대로 표현하고... 감옥에 간다.
사실 강박 장애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환자들을 보다 보면 이러한 욕망, 이드와 이것을 강하게 억누르는 초자아, super-ego의 충돌을 분명하게 목격한다.
'선생님 갑자기 지나가는 여자를 보면 야한 생각이 떠올라서 너무 괴로워요. 그럴 때면 손가락을 3번 왼쪽으로 꺾어야만 해요.'
분명 환자의 성적 욕망은 무언가 뒤틀려서 발현되었고, 이것을 적절하게 조율해 줘야 할 자아, ego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초자아는 이러한 욕망을 지나치게 채찍질하며 자아는 더더욱 갈 곳을 잃어버린다.
마치 강박장애의 핵심 병리가 정신분석적 접근에 있는 것처럼 썼지만, 놀랍게도 최근 연구에서 대부분의 정신 질환 중 가장 생물학적인 기전이 확실한 질환 중 하나로 이야기되는 것이 강박장애다. 메타분석에서는 강박장애가 플라시보 약물의 효과가 가장 낮은 정신질환으로 나타났다... 정말 정신과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영화 <미세리코르디아>는 이런 관점에서 흥미로운 표현법과 재미난 시선들을 보여준다.
물론 이 영화는 수필보다는 시에 가까운 영화이기에, 즉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은유와 비유로 가득한 영화이기에, '정답'으로 떨어지는 해석은 없겠지만 내 나름대로의 감상평을 써보려 한다.
※아래부터는 <미세리코르디아> 스포일러 포함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막장 드라마 그 자체이다.
인물 간의 관계도가 너무 황당하게 꺾이고 뒤틀린다.
다 보고 나서 내가 제일 처음 한 이야기는 '내가 대체 뭘 본거지?'였다.
근데 영화 해설들을 찾다 보니 이 영화가 감독 알랭 기로디의 순하고 대중적인 영화라고 하더라,,,
영화는 공간의 분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현실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를 나눠서 표현한다.
정확하게는 무의식의 세계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게 정제 내지 변형되어 나타나는 '꿈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안개로 뒤덮인 숲속에서 우리는 버섯을 찾아 헤맨다는 설정은 문학적 감수성이 떨어지는 내가 보기에도 꿈속에서, 무의식 속에서 나의 성(姓)적 욕동을 찾아 헤맨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그렇게 마치 꿈처럼, 논리적 흐름보다는 의식의 흐름으로 전개되는 영화. 내게 이 영화는 큰 소리로 자신의 이드, 욕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용기 없는 내가 글의 서두에 *처리하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드를 어쩌면 이 작품에서는 영화의 형태로 거침없이 발산하고 있었다.
표현하기에 부끄러운, 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욕망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정신분석을 공부하며 마주한 답 중 하나는 '충분히 욕망을 이해한 다음, 건강하게 배설한다.' 인 것 같다.
마치 자연보호 활동가들이 이야기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처럼 '지속 가능한 해소'를 해야 하고 이러한 해소법, 소위 이야기하는 방어 기제로써 건강한, 고차원의 방어기제의 대표주자는 '승화'(sublimation)라는 개념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욕망을 승화하는 방법은 역시 예술로 발산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예체능의 가치의 정수는 이것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대단한 승화는 나의 욕망 해소를 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는 표현을 정제한다. 애초에 영화는 정제의 미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실 세계를 카메라로 담는데, 편집한다. 이것이 영화의 기본 아니겠는가.
편집. 거기에 영화의 정수가 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그렇게 정제할 때 가장 먼저 편집당하는 것이 무엇일까?
얼른 건져내야 할 막걸리의 불순물 누룩 같은 것이 바로 욕망, id의 원초적인 표현 아닐까?
대부분의 오락 영화, 상업 영화에서 우리는 멋진 슈퍼히어로가 욕망을 드러내는 악당을 때려잡고, 연인이 서로의 일시적인 욕망으로 인해 잠시 혼란을 겪다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스토리를 쉽게 만난다.
하지만 어떤 감독이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내 욕망, 나의 자질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겠어!
근데 그렇다고 영화가 폭력, 강간, 방화, 욕설, 권위 훼손 등으로 얼룩진다면 어떨까... 적절한 타협점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때 적절한 타협점 속에서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 승화로 나타나며 우리 마음에 울림을 줄 것이다.
이 영화는 욕망을 거리낌 없이 발산하면서도 우리를 마냥 불편하게만 하지 않고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준다.
그 이유가 뭘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목사님 '필리프'의 존재가 메시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필리프와 주인공의 2번의 대화는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첫 번째로 고해성사 실에서의 대화.
주인공이 묻는다. '어떻게 평생을 견디죠?'
이에 대한 대답은 '살인자를 매일 보는 낙으로'
사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아니 불편함을 느끼는 나를 또다시 불편하게 만든다.
목사님이 남자를, 자기보다 어린 남자를 사랑해서 하는 대화가 위의 대화다.
어쩌면 관습, 도덕, 나아가 초자아에 묶여있는 우리는 바로 '엥?' 소리를 하게 된다.
기독교, 동성애 같은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고, 영화는 이런 지점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한편으로 불편한 내가 불편하게 되는 상황까지 몰고 간다.
영화에서 필리프는 결국 주인공을 진심으로 돕고, 위하고, 사랑한다.
여러 묘사로 이러한 점을 보여주는데, 그중에 하나로 영화에서는 남자의 버섯이 두 번 나온다.
한 번은 주인공의 서 있지 않은 버섯. 두 번째는 필리프의 서 있는 버섯. 두 번 모두 갑자기 나타나는 장면이라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생각을 해보면 첫 번째 버섯이 향하는 대상과, 두 번째 버섯이 향하는 대상이 어떤 것들이었나, 그리고 버섯이 서 있다는 것이 욕망의 진실성, 버섯이 욕망을 담는 그릇 중 하나라는 점과 맞물릴 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었다.
두 번째(영화 순서상 두 번째가 아닌 내가 인상 깊은 두 번째) 대화는 절벽에서의 대화다.
(여기서부터는 이동진 님 리뷰도 참고함)
주인공이 자살을 하려고 할 때 필리프는 철학적인 이유, 사회적인 이유들을 들면서 주인공을 설득한다.
하지만 이후 필리프는 '내가 당신을 사랑해요. 그러니 살아줘요.'라고 설득한다. 그렇게 주인공은 절벽에서 내려온다.
이러한 필리프의 절절한 외침은 매일 진료실에서 환자들과 자살 얘기로 씨름하는 내 모습을 조금은 반추해 보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초자아의 옷을 입은 나는 환자들에게 이런 사랑 고백을 할 리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욕망, 초자아 모두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어떤 사랑은 지나치게 욕망을 배제한다. 상대의 조건만을 사랑하거나 등등...
또 반대로 어떤 사랑은 지나치게 욕망만을 탐닉한다. 사실 나는 그런 건 '사랑'이라는 단어로 담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랑은 욕망과 조화를 이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누군가에게 닿을 때 그곳에는 기적이 일어난다. 이러한 기적과 같은 사랑을 위해 우리는 '자비 Miséricorde' 미세리코르디아를 베풀어야 한다.
우리의 욕망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러한 따뜻한 균형 속에 욕망은 승화된다.
별점: 3.5/5
나는 '평론가'가 아니다. '방구석' 평론가다. 이 둘의 차이는 나의 평론은 어떠한 사회적 영향력도 없다는 뜻이다. 즉 나는 내 *대로 별점을 준다. 내 취향에 맞으면 최고! 아니면 *. 이 영화는 보다가 잘 뻔했다.
내게는 이 영화에서 오는 '재미'라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다 보고 나서도 거의 이해 못 했다.
이동진 선생님의 심층 리뷰 영상이 아니었으면 이러한 글이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실 영화 자체도 이동진 선생님 덕에 본 것이었다...
내 취향 점수로 만 하면 사실 3점도 못 받는 영화인데, 이 정도로 내가 개똥철학을 늘어놓을 생각의 여지를 준 영화이기에 3.5점으로 올렸다.
갑자기 내 블로그가 대박 나고 이동진 선생님만큼 유명한 평론가가 된다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5점으로 별점을 올리겠다.
크크
다 쓰고 나서 글을 다시 읽고 깨달았다.
방구석 평론가인 나의 개똥철학이 갖는 이해받고 싶은 욕망은 이 글을 통해 승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