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별: 3.5, 추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책을 다 읽고 작품 해설을 보니 '브람스'는 프랑스 사람들이 굉장히 싫어하는 작곡가라고 한다.
일종의 국민 비호감 밈 같은 거라고 생각했을 때, 우리나라로 치면 책 제목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유승준을 좋아하세요...', '문희준을 좋아하세요...' 정도로 바꾸면 될까...
즉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묻는 건 상대의 마음을 떠보는 고도의 질문인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싫어하는 취미이지만, 나와 함께할 의향이 있냐는 것이다.
사랑의 시작은 그런게 아닐까.
나의 파편을 쪼개서 상대에게 넘겨주고, 상대의 쪼개진 파편을 받아내는 것.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시작한다.
사랑이 뭘까?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해본 사람은 반드시 이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프랑수아즈 사강은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사랑은 찰나에 불과하고, 순간의 감정에 불과하다고.
* 아래 부터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내용을 포함합니다. 스포일러는 최소화 하였으나, 예민하신 분들은 작품을 감상한 뒤에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줄거리만 놓고 봤을 때 우리가 흔하게, 어쩌면 가장 많이 보는 전형적인 플롯의 뜨뜻한 국밥 같은 연애스토리다.
근데 이제 삼각관계와 바람을 곁들인...
여자 주인공 폴, 그리고 남자 주인공 로제와 시몽. 서로 대비되는 남성인 로제와 시몽을 통해 작가는 사랑의 존재에 대한 회의론적 질문을 던진다.
처음 시몽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묻는 질문에 폴은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인생에서 잊고 있던, 외면하던 질문에 직면한 것이다.
자신 의외의 것을 좋아하는 열정이 있었는가.
즉 내가 하는 로제와의 사랑은 진정 사랑인가.
열정 없는 사랑, 성욕 없는 사랑이 사랑인가?
다시 처음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사랑은 뭘까?
내가 아주아주아주아주 좋아하는 책인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저자는 이야기한다.
사랑은 시간을 쌓아나가며 갈고 닦는 기술이라고.
운 좋게 잘생긴, 능력좋은, 성격좋은, 집안좋은 사람을 만나서 대박이 나야만 이루어지는 불꽃 같은 파편이 아닌 차근 차근 서로를 알아 나가고 추억을 쌓아 나가고 시간을 통해 만들어내는 삶의 방파제가 사랑이라고.
사랑은 로또 복권이 아니라 하루하루 조금씩 섬세하게 방망이를 깎는 노인네인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은 물론 사람마다 정의가 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불꽃튀는 순간적인 생물학적인 욕정을 사랑이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현실적인 조건을 최적으로 맞춰서 부의 추월차선을 빠르게 넘기 위한 양쪽 가문의 집중 투자가 사랑이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어린 시절 소꿉장난하며 만난 첫사랑 소녀를 잊지 못한 채 한평생 마음에 간직하고 늙어가는 좋게 말하면 로맨티스트 나쁘게 말하면 집착남을 사랑이라고 할 지도 모른다.
나는 물론 욕정, 현실, 집착 여러가지가 모두 사랑에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의 코어, 사랑의 가장 중심이 되는 무언가를 이야기해보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것이 시간이라고 믿는다.
'시간이라고 정의한다'가 아닌 '시간이라고 믿는다' 이다.
그렇게 믿는 것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아직까지는 그래 왔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건 "열정"이에요. 그 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의 수명은 딱 2년입니다. 장담해요. 좋아요 3년으로 하죠. ("사랑"을 믿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을 받고)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사랑을 믿지 않으면 삶은 없다.
나는 이전 글에서는 한차례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사랑이 없어서 생기는것 같다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https://brunch.co.kr/@modure/16)
욕정은 짧으면 몇 시간, 길면 3년 아니 2년 정도의 유효기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믿는 사랑은 유효기간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조금 더 나은 사랑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쓴 글에서 삶의 모순은 전두엽과 변연계의 충돌을 견디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https://brunch.co.kr/@modure/13)
변연계에서 한번씩 짜릿하게 치고 올라오는 도파민은 우리에게 삶의 원동력을 주고, 싫어하는 브람스를 좋아하게 만들고, 음악을 들으며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고, 소설의 주인공 멋쟁이 시몽과의 새로운 만남에 흥분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전두엽은 그러한 욕망을 조율하고, 통제하고, 계획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믿고 추구하는지를 따라 움직이게 만들어준다.
내가 무슨 대단한 성인군자처럼 밑도 끝도 없이 '성욕은 반드시 통제해야 합니다 떼잉 쯧쯧'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믿음은 욕망의 조율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서 오는 미덕 속에서 꽃을 피운다.
책을 다 읽고 찾아본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작가의 삶은 거대한 불꽃이었다.
마약, 술, 섹스, 두 번의 이혼, 활발한 정치참여와 소통, 상대적으로 단명한 삶.
프랑수아즈 사강은 인터뷰에서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아직까지 내가 읽어본 작가의 책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유일하지만 작가는 일평생 사랑에 대한 책을 1년~2년 간격으로 숱하게 써낸 듯 보인다.
도파민에 찌든 방탕한 삶을 사는 사람이 왠만한 도파민 컨트롤 없이는 하기 힘든 다독(엄청난 책벌레였다고 한다), 다작을 했다는 것이 놀랍다.
굉장한 리스펙이 들기도 한다.
내가 만나본 사람이 아니라 당연히 알 수는 없지만, 혹시 프랑수아즈 사강은 누구보다 사랑을 찾아 헤매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사랑 찾아~인생을 찾아~~
평점: 3.5/5
이유: 나는 책의 문학적 가치, 감수성 같은걸 평가하는 평론가가 아니라 방구석 평론가이다. 평점은 그냥 내가 재밌었는지, 나에게 깊은 사유를 제공했는지에 의존한다. 요새는 도파민 회로가 아작났는지 집중도 잘 안되고 이상하게 번역서를 읽으면 잘 읽히질 않는다. 워낙 술술 읽히게 썼지만 그래도 뭔가 재미가 없었다. 사강씨는 내 취향이 아닌가보다... 그래도 결말부는 상당히 재밌었고, 나름 여러가지 생각을 정리해보는 계기를 주기도 했다. 추천할만한 책!
추가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사유적 측면에서는 5점, 재미 측면에서는 2점이라 3.5점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먹구구식 별점
주변에도 함부로 추천을 못할 정도로 너무 재미가 없다 ㅋㅋㅋㅋ
왜인지 갑자기 종교철학 얘기를 막 하는데 그 부분에서는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함부로 읽지 말고 그냥 요약 유튜브를 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