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에서 그림으로 봤던 천국은 사자와 양이 같이 있는 풍경이었다. 하늘에는 참새가 독수리와 친구 되어 날아다니고 나무와 꽃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었다.자연 시간에 배운 약육강식, 생태 피라미드가 사라진 곳, 사람도 있었다. 다양한 피부색, 여성과 남성, 노인과 아이. 천국은성별, 인종, 계급, 나이의 구분이 없는 곳이었다.주일학교 선생님이 천국에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환하게 웃을 때지금사자와 놀 수 있다는데 먹는 게대순가 하던 어린것은 나이 들어 의식주가 해결되는 천국 복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았다.
영화 <아바타>를 처음 봤을 때 나는 행성 판도라가 인간이 과학으로 상상할 수 있는 천국이라 생각했다. 하반신이 마비돼도 자유로울 수 있는 곳, 서로 다른 종이 교감하는 곳, 호모 사피엔스가 최상위 포식자가 아닌 곳, 누군가가 의식주를 해결해주진 않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 잉여의 개념이 없는 곳. 예의의 가치를 아는 곳. 아, 저곳이 천국이구나 했다.
아바타2는 작년 연말 부부모임 뒤풀이로 봤다. 12월 24일 밤 10시 30분에 보기 적절했단 생각이 든다. 아바타 2는 주제가 가족으로 좁혀지면서 1편에서 구축한 세계관이 다소 축소된 느낌이지만인간의 자만심과 탐욕을 상기시키기에충분했다. 나와 타자, 인간과 자연의 연결을 끊어 자신과 외부를 구분하고 착취와 규정으로 통제하려는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잔인한가다시금 깨달았다.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놀란 건 영화의 기술력이 어디까지 발전했는가였지만 놀랍게 정교하고 현란한 장면들내면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치들이 담겨 있었다.
영화에서 나를 가장 강하게 끌어당긴 대목은 툴쿤의 이야기였다.툴쿤은 바다에 사는 생물로 외형은 지구의 고래를 닮았다. 툴쿤은인간을 능가하는 지능과 고유의 언어, 개별 이름을 가지고 있고폭력을 금기하는 종족적 신념까지 지닌지적 생명체다.멧카이나 부족은 툴쿤과 영적관계를 맺는다.인간이 돈벌이를 위해 새끼를 이용하는 잔혹한 방법으로툴쿤 로이를 사냥했을 때 죽은 로이를 부둥켜안고 차이크 로날이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는다. '그녀는 내 자매였다.'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집에 두고온 내 강아지가 떠올랐다.나는 진심으로 로날의 통곡을 이해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강아지가 보고 싶었다. 내 강아지에게로 돌아가고 싶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같이 보내지 못하고 두고 나온 일이 후회됐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따뜻하고 보드라운 존재. 강아지를만나고 천국을 상상하는 일이 쉬워졌다. 훨씬 더 구체적이 됐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이미 작은 천국을 내 안으로 들여왔는지 모른다.
돌아갔을 때 강아지가 뛰어 마중 나왔다. 고작 몇 시간 떨어져 있었는데 한 달 만에 만난 듯 반가워했다. 꼬리를 쉴 새 없이 흔들고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나는 문 앞에 그대로 주저앉아 녀석이 무릎에 뛰어들어 머리를 비비고 고개 들어 눈을 맞추고 사랑스럽게 할짝 얼굴을 핥게 내버려 뒀다.품을 파고드는 녀석을 살며시 안았을 때 따뜻하고 평안했다.천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