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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Nov 06. 2023

백일 만에 도착한 엽서

딸에게




지난여름 여행은 기록 없이 다녔다. 어떤 작가가 말하길 글 쓰는 사람은 사돈의 팔촌도 소재로 써먹는댔는데 여행만큼 풍성한 글감이 어디 있겠니. 쓰려면 정을 적어겠지만 남을 글로 쓸 작정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여름산 간 이유는 비움이었 리보 몸을 더 사용하로 했 말보 침묵리라 다짐했 때문이다. 


목적 없는 여행 때론 더 정확히 어딘가에 이르게 한다. 돌아와 익숙한 방에 누웠을 때 며칠의 흔적이 내 안에 남은 걸 깨달았. 흔적들은 산만설명하기 어렵고 하나로 엮지 않지만 득 적고 싶다. 특별한 날  일기처럼 이야. 두지 않았으니 마음에만 의지해야 했다. 한 달 사이 잊힐만한 건 잊 어느새 낙엽이 된 마음을 긁어모았다. 여름의 일은 가을이 되어서야 쓰였다. 마음이 언어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해남은 책으로 배운 고장이다. 황석영이 소설 쓰고 김지하가 숨어든 곳, 황지우, 고정희, 김남주의 시 역시 해남겹친다. 육지 사람에겐 땅끝이고 섬사람에겐 시작 되, 반대 단어가 같은 의미로 순례하는 곳, 그래, 먼 곳. 떠나기 일주일 전 다영이 이모가 들르고 싶은 곳이 있으면 말라더라. 너도 알다시피 나는 관광소질이 없잖니. 별생각 없었는데 이틀 지나 그곳에 있다는 문학관에 가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확한 이름은 '땅끝순례문학관'이다.





이틀 오후 들릴 예정이었다.  점심공양으로 나온 우엉깜짝 놀랄 만큼 맛있어  더 가져다 먹었다. 절밥 맛있단 소린 들었을 테지만 정말 그렇더라. 우엉 크고 어슷하게 썰어 찹쌀을 묻 튀긴  양념장에 조린 듯했다. 쫀득하게 씹히면서 끝까지 아삭거리고 적당히 달콤 짭짤한 맛이 일품이었다. 돌아와 따라 해 봤는데 그 맛이  리가 있. 빈약한 솜씨를 탓하다 아마도 그날의 맛 오전 산행 덕도 있었으리라 위로. 산은 입맛을 돋우고 미각을 자극하는 특유의 비법이 있니까.





문학관 가는 길은 어란길과 겹쳤다. 차 타고 가는 내내 황지우의 <연혁>이 떠올랐다. <연혁>을 처음 읽었을 때 충격을 말 적이 있었나. 스무 살, 그 시는 처절하고 아찔 닿을 수 없는 높은 언어였. 그저 거기 나온 솔섬이 보고 싶었을 뿐었지. 소나무만 사는 작은 무인도를 솔섬이라 하는데 해남에 가보니 소나무가 많다는 걸 알았다. 구부러진 해안을 따라 달리는데 갯벌이 도로와 가깝고 처처 소나무였다. 솔숲 유명한 해수욕장도 지나쳤다. 해남을 고구마와 무화과로만 알던 지식에 솔향이 묻었다.





문학관 가는 길에 있는 고산 윤선도 박물관은 공사 중이라 들어가지 못했다. 휴관이라 적힌 입구에서 목을 빼고 안을 보니 정원과 고택이 아름다웠다. 복이 이모가  앞 넓은 밭이 고구마밭이라 하래 어릴 적 너랑 같이 갔던 고구마 캐기 체험날이 생각났다. 욕심 많아 온몸에 흙 묻히며 잔뜩 캐던 너와 그걸 놀라워하던 내가 기억났다. 거기서 문학관까지는 걸어가도 될 만큼 가까웠다. 주차장은 2층 입구와 연결되어 있는데 30도 웃 날씨였지만 일부러 1층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외관을 구경했다.





도서관에는 자리를 지키는 사서 한 명뿐이었다. 1층 너른 책상 위에 '오늘의 시 뽑기'가 있었다. 다영이 이모와 복이 이모를 불러 하나씩 뽑았는데 저마다의 시가 제게 맞는 문장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는 문 같은 언어라 열어보면 각각 빗댈 수 있는 여러 삶이 들어 있다. 문학관 시설이 좋았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화면에 떠오르는 고정희 시 몇 편을 읽고 나니 시가 공간이 되어 몸 채 그 안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한참을 구경하다 빨간 우체통을 발견했다. 네게 엽서를 썼다.




문학관에 비치된 엽서를 집어들고 무어라 적을까 고민했다. 엽서는  달에 한번 모아 보내준다니 빠르면 8월 늦어도 9월엔 도착하겠구나 짐작했는데 9월다 가도록 받았단 말이 없 혹시 우편함을 확인하지 않나란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기대 없이 받는 기쁨을 주려 말하지 않았는데 결국 물었너는 그날부터 날마다 우편함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했다.




드디어 엽서가 왔다고 했을 때 "해남이 멀긴 먼가 봐." 하며 너는 었다. 들킨 선물이 시시해진 나는 "걸어왔나 봐."라고 했다. 네가 온 것이 엽서가 아니라 마치 시간 같다고 했을 때 나는 마음이 언어가 되어 딘가에 닿기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했다.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어렵고 전달하는 건 더 힘든 일일 수 있다. 그날 나는 엽서 앞에서 고심하고 머뭇거렸다. 시 속에 머문 기분을 말하기엔 글이 부족했고 보고 싶단 말은 상투적이더라.


백일동안 우리는 엽서에 많은 이야기를 덧입혔다. 왜 오지 않을까 탐정놀이를 하고 어디쯤 있을까 수다로 위치추적을 시도했다. 네가 작년 재작년 여행하며 보냈던 엽서를 소환하고 내가 그걸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다시 말했다. 너는 그때로 돌아가 몇 가지 추억을 들려줬다. 여행지에서 누군가에게 엽서를 보내는 마음에 대해 삭이고 종종 여행자보다 늦게 도착하는 편지와 그런 사연이 등장하는 영화와 소설을 내봤다.





늦더라도 모자라도 쓰기 잘했단 생각이 든다. 언어로 사랑을 시도하는 일이 무모하게 여겨지고 마음은 제대로 적히지 않았지만 엽서라고 불리는 직사각형 공간에 너를 떠올린 시간이 백일동안 마음을 잔뜩 껴입고 부풀어 올랐다. 우리에게 백일묵은 추억 한 장이 추가됐다. 너는 분명히 적지 못한 내 맘을 알아챘을 것이다. 엽서 한 장으로 받는 너도 쓴 나도 이렇게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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