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함께 있는, 홀로이다. 그러므로 하나 속의 둘이다. 반면 외로움 속에서 나는 모든 타인들에 의해 버려진 그야말로 하나다.'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읽고 그간 고독과 외로움을 혼용했단 생각이 들었다.
7.12
구조가 폭력적일 때 그 구조의 온순한 구성원으로 살아온 사람은 결국 구조적 가해자다.밑줄.
7.13
음악 선물. 이무진의 '비와 당신'을 듣는다. 귀가 많이 망가졌구나 실감한다. 노래와 반주가 제 음보다 반음 낮게 들려 음치가 부르는 노래같다. 어느 높이 이상의 음은 들리지 않는 걸까. 가사를 읽는 것으로 대신했지만 그도 좋았다.비의 추억을 뒤적였다.
7.15
친구와 차를 마셨다. 지난 번 봤을 때 엄마와 싸웠다 해서 화해는 했는지 물었다. 식구답게 초복에 삼계탕 먹으러 가 화를 풀었는데 냉동실에 한 접이나 빻아 얼린 마늘을 보고 또 싸웠다 한다. 두 식구 사는데 왜 마늘을 한 접씩이나 사는지 알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옛날엔 다 그랬지. 나는 엄마가 매해 쟁여둔 천일염을 7년이나 먹었다. 그렇게 한참 옛날 얘기를 했다.
중복이 있으니 화해할 수 있을거라 말해줬다. 복잡한 냉동실 정리 비법도 전수했다. 일주일쯤 고장나면 한 접 마늘이 사라질거라고. 여름엔 복날이 있어 싸운 식구들이 화해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초복 중복 말복 삼세판까진 가능하다.
7.16
아침에 눈을 뜨기 힘들었다. 더위에 지친 건지 비에 눅눅해진 건지. 장군이가 곁을 지켰다. 장이 아침을 줘도 먹으러 가지 않았다. 장군이 밥 먹이려 억지로 일어났다. 밥 그릇을 내밀고 쭈그리고 앉으니 발등에 얼굴을 부빈다. 바라본다. 걱정해주는걸까. 괜찮아 라는 말을 알아 들을까. 쪼끄만게 자꾸 나를 내 영혼을 지킨다.
요즘엔 강아지 자랑하려면 만 원 내야 한다던데, 장군이는 너무 사랑스럽다.
핸드폰을 오래하면 오른손을 못 쓰게 한다. 알았어. 그만할게.
뒤에 있는 선풍기는 신일 선풍기인데 얼마나 튼튼했는지 십오년 넘게 고장없이 썼다.
흑백사진첩을 뒤지다 사진을 찾았다. 선풍기 앞에 앉은 아기는 나고 아마 18개월쯤 됐을 것이다. 사글세 살 때였는데 내가 주인 집 선풍기 버튼을 꼭꼭 눌러 주인 아줌마가 고장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야단을 쳤다 한다. 당시 선풍기가 귀했다. 있는 집이 많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가 분해 2년 할부로 신일 선풍기를 샀다. 그때는 지로도 없어 할부금을 직접 내러 가서나 받으러 왔다. 홧김에 사놓고 전기세 무서워 얼마 안틀었을 것이다. 가난한 집 보물 1호로 오래 자리매김했다. 얼마나 튼튼한지 15년 넘게 고장 한 번 안났다. 여러 번 이사 중에 낡아 버렸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골동품으로 남겨 뒀을텐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