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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Jul 15. 2023

자기 계발서 가스라이팅

Photo by Fan ho





이건 모두 걔 때문이다. 삼사 십 대 주야장천 읽어댔던 자기 계발서. 나를 응원하고 독려다 믿었던 가치가 나를 세뇌시켰다. 나는 자기 계발서에 가스라이팅 당했다.



십 년은 안 됐을 것이다. 두통과 눈의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검사 후 의사가 스트레스성이라 진단했을 때 내 반응은 심드렁했다. '스트레스성'   병명이라기보 의학의 무능 돌려 한 표현 같았다. 아직 인간의 치료기술이 닿지 못 미지의 세계. 표정에 마음이 드러났는지 의사가 말했다.



"스트레스 가볍게 보시면 안 됩니다. 평소에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나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많이' 얼마큼일까. 스트레스를 계측할 방법이 있는지 궁금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글쎄요. 그렇게  받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데요." 



의사 질문했다. 잠은 몇 시간 자는지. 식사는 규칙적으로 하는지. 출근 퇴근시간을 묻고 휴가는 언제 다녀왔는지 휴일엔 뭘 하는지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인지 캐물었다. '러다 호구조사까지 하겠 걸'이라 생각할 때 의사가 말했다.



"스트레스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스트레스가 없다고 할 땐 실제 없다기보단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 많습니다. 정신력이 강하다고 자부하거나 강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은데 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인지하지 못하는 게 더 위험합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무조건 나쁘다 할 수도 없습니다. 스트레스를 인지하면 본능적으로 벗어날 방법을 찾게 되거든요. 하지만 인지하지 못하면 하지도 못하고 받은 걸 풀지도 않습니다.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  방법을 찾지 않는 거죠. 풀지 못한 스트레스는 결국 이나 정신으로 타격이 옵니다."



어릴 적 위인전을 즐겨 읽었다. 창작된 동화보다 영웅소설에 가깝더라도 현실의 위인 이야기가 와닿았다. 멋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고난을 극복한 훌륭한 의지를 닮고 싶었다. 위인전을 들이민 부모의 마음속에도 읽고 자란 내 안에도 그런 생각의 씨가 뿌려졌을 것이다. 경을 탓해선 안된다고. 다 핑계라고 말이다.

성인이 되어선 위인전 대신 자기 계발서를 펼쳤다. 위인은 글렀지만 회가 일컫는 성공한 삶을 살고 싶었. 가진 것이 적은 나는 자기 계발서가 자본주의 안내서였다.



자기 계발서를 관통하는 규칙은 1859년 새뮤얼 스마일즈가 쓴 자기 계발서 원조 '자조론' 이후 비슷하다. 성공한 사람은 성실하고 인내심이 많고 끈기 있으며 쉬지 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좌절은 성공의 어머니이니 포기하지 말아라. 자신을 준비시켜기회를 놓치 않는. 매일 결심을 다지고 끝까지 버면 꿈은 이루어진다. 

자기 계발서는 이런 몇 가지 규칙만 따르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확언한다. 그러니 성공요인은 전적으로 나한테 달려있고 실패 역시 그렇다.



자기 계발서 옆구리에 처럼 차고 방패 삼아 이십 년 넘게 살았다. 자기 계발서를 딛고 '아슬아슬하게 아름답다'는 세상에서 오되지 않으려 애썼다. 업을 시작하고 몇 년은 자기 계발서만 읽다. 안 그랬다간 감정의 수문이 열려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자기 계발서는 생존 코치였다.

내일을 위해 희생되어야 마땅하다 여겼던 시간들, 눌던 마음들. 자기 계발서에 적힌 대로 살아야 제대로 사는 거 같았다. 아니라면 실패로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홍길동도 아니건만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라 부르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한센병은 특정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생기는 병이다. 감염된 부위는 신경이 부풀어 올랐다 딱지 아래 짓눌려 죽는다. 신경이 없는 신체 부위도 살아 있긴 하지만 감각을 느낄 수 없는 곳은 보호받기 어렵다. 한센병에 걸리면 각막이 다쳐도 알아채지 못한다. 손을 데어도 발가락이 곪아도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신체는 소외된다. 결국 절단해야 할 만큼 썩어 문들어진다. 몸의 고통이 기본적인 자기 보호 시스템이라면 마음의 통증도 그렇지 않을까.



자기 계발서를 덮었다. 마음의 신경을 죽이려 스스로 허용했던 가스라이팅을 끊어내기로 했다. 도움받은 적도 많았는데라고 하다 이것조차 자기 계발서의 가스라이팅일까 라는 생각에 흠칫했다. 

세상이 날 힘들게 한 줄 알았는데 내가 나한테 제일 못되게 굴었다. 악덕자아였다. 나를 훈련시키고 조교처럼 행세했다. 힘들단 말도 못 하게 항상 괜찮습니다 는 대답만 요구했다.



자기 계발서를 끊고 깨달은 사실이 있다. 자기 계발서는 인간을 성공과 실패로 나눈다. 인생은 성공과 실패로 이분화될 수 없으며 은행잔고와 집 평수로 평가받아서도 안된다.

자기 계발서는 계급 법칙을 숨긴다. 실제 성공과 실패는 우주가 아닌 현실의 법칙이 적용다. 취업이 어렵  련이 힘든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에서 이기려 하기보단 경쟁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세대를 절망으로 밀어 넣는 상황을 개인화하지 말고 사회에서 찾아야 한다.  누구는 쉽고 누구는 불가능한가.



어떤 이가 말했 아프리카 저생산국에서 스티브잡스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개인의 노력 부족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 않는다. 돕도록 예정되어 있는 자만 돕는다. 사회는 불공평하고 이것을 직시할 때 사회가 구분한 성공과 실패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 하늘이 돕는다는 사유의 관습과 이별할 때 특권은 독점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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